[性役없는세상②] 보이지 않던 곳에서 발견되는 서로,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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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役없는세상②] 보이지 않던 곳에서 발견되는 서로,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성역(性役) 넘어 함께하는 남성들
  • 2020.11.11 16:51
  • by 김정란 기자

문재인 정부의 현직 여성 장관 6명(2020년 11월 현재), 여성 WTO 사무총장 후보 배출 등, 고위직에서 많은 여성이 등장하고, 여성가족부 2021년 예산안은, 전년 대비 5.3% 증액된 1조 1,789억 원이 편성되는 등 해마다 늘고 있다. 2018년 여성 창업자 지원에 100억 원이 배정되는 등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위한 정책들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여성들은 여전히 이런 변화를 체감하기 힘들고, 사회활동에 여전히 많은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일부 남성들은 반대로 '역차별'을 주장한다. 여성들에 대한 지원책이 많아지면서 남성들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남성 역시 '남성성'이란 이름으로 강요받는 성격, 역할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이런 대결적인 사회 분위기는 젠더 갈등을 불러온다. 최근 몇 년 사이 특정 사이트에서 남성과 여성의 대결 양상의 설전이 오가는 등, 남녀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모든 이가 평등한 사회, 민주주의 국가가 된 지 70년이 넘어서고 있지만, 가부장적 성 역할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고, 우리가 깨지 못한 편견은 결국 갈등이 된다. 라이프인은 고착된 성 역할이 젠더 갈등의 원인을 넘어 우리 사회의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라고 보고, 이에 대한 대안을 실천하고 있는 사례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고착된 성 역할을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성과 여성의 대립보다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연대는 정말 어렵다. 연대는 상호 간에 이뤄지는 행위인데, 상대적인 강자는 연대에 아쉬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에 상대적 강자였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전통적 성 역할을 넘고, 연대에 도전하는 남자들이 있다. 이들은 왜 고착된 성 역할 깨기에 도전할까?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을까?

이번 기사에서는 여성의 노동으로 일컬어졌던 '돌봄' 영역에서 실제 일하고 있는 남성들의 목소리와 여성들의 권익 찾기를 위해 연대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고착된 성 역할을 깨기 위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살펴본다.

■ 돌봄이 여성의 영역이라고? 그게 아니라...

'돌봄'은 여성의 영역이라고 치부됐던 가장 대표적인 분야다. 하지만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돌봄이 개인, 가정의 일을 넘어 사회의 몫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영역은 숙련이 필요한 전문 영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임윤옥 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은 지난 10월 NPO 국제컨퍼런스에서 "사람은 돌봄 의존적 존재다. 돌봄노동은 신뢰와 호혜를 기반으로 해야하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해야 한다. 아무나 하지 않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 노동"이라며, "돌봄은 여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숙련 필요 없는 단순 노동으로 평가됐지만 숙련이 필요한 전문 노동"이라고 말했다. 

'집안일' 중 하나로 치부됐던 '돌봄'은 이제 남성도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인식이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벽이 높다. 특히 노동으로서의 '돌봄'영역에는 여성종사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돌봄 종사자의 70%가 여성이다.

중년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사업을 운영하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는 '남성돌봄전문가 입문과정'을 운영한 바 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15명 정도가 정원이었는데 6명 정도가 지원했다"며 아직 이 분야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전했다. 실제 참여자들도 대부분 이 일을 업으로 참여하기보다는 가족을 돌보면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덧붙였다.

▲ 스마일시니어 문연걸 대표는 남성돌봄전문가로 남성들의 이 분야 종사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스마일시니어
▲ 스마일시니어 문연걸 대표는 남성돌봄전문가로 남성들의 이 분야 종사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스마일시니어

그럼에도 실제 남성 돌봄전문가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남성돌봄 전문가 문연걸 스마일시니어 대표도 그중 하나다. 그는 "2020년 09월 기준 65세 이상 노인인구 약 840만 명 중 남성 노인 인구가 363만여 명(약 43.26%)이다. 여성돌봄자(여성요양보호사)가 남성 대상자를 케어시 체력 및 체격적인 한계로 인해 서로가 부상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성적인 문제 등의 우려를 고려해볼 때 남성 돌봄자가 이러한 문제들을 대처하고 해결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그는 "스마일시니어의 남성돌봄자는 5~10% 정도"라며, "아직까지도 남성돌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하고 거부감이 드는 직업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적 영향도 있고 그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그에 따른 케어의 필요성과 그 역할은 누군가가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남성이 남성을 케어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회적 현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가치를 두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성의 직업으로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직업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남들의 시선이나 주변의 반응을 인식하며 그것을 중시하면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 기준을 달리하여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내 남은 삶을 위한 보람된 시간을 위해 도전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 또한 멋있는 인생이지 않을까"라며 새로운 직종에 대한 남성들의 동참을 독려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돌봄 노동 종사자들을 '핵심인력'으로 칭하는 것이 국제적인 흐름이다. 영국은 돌봄 의료 종사자들을 '키워커(keyworker)'라고 부르고, 우리나라도 올해 서울 성동구가 처음으로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조례를 만드는 등 돌봄 노동을 전문 분야로 보는 시각은 날로 짙어지고 있다. 남성과 여성을 넘는 많은 사람의 동참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하지만 남성이 필요하고 오히려 장점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남성 돌봄전문가 수급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여전히 여성종사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은, 돌봄이 여성의 일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외에도 반드시 짚어봐야 하는 원인이 있다. 처우 문제다. 돌봄 노동자 평균 임금은 취업자 전체의 60%에도 이르지 못할 정도(57.3%)로 저임금 직종이다.

2019년 돌봄노동자가 110만 1000명(한국여성정책연구원, <코로나19를 계기로 돌아본 돌봄노동의 현주소>)이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돌아본 돌봄노동의 현주소>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남성 돌봄노동자는 3만3천 명 증가했고, 여성취업자는 48만5천 명 증가했다. 늘어난 남성취업자 중 돌봄노동자는 2.0%에 불과했다. 이 보고서는 돌봄노동은 학력이 높아지거나 근속연수가 높아져도, 다른 직종에 비해 임금 상승 속도가 현저하게 느렸다. 핵심인력으로서의 돌봄노동에, 성별을 넘은 동참이 이루어지려면, 벽을 넘으려는 개인의 노력보다는, 제대로 된 처우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는 현실도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 여성과의 연대를 꿈꾸는 남성 페미니스트들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남성과 남성성을 의제로 활동한다.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남성과 남성성을 의제로 활동한다.

'여성의 주체성과 권리를 확장하고 강화한다는 이론 및 운동'이 페미니즘의 사전적 정의다. 여성이 아니지만, 여성들의 권리 찾기에 함께 발맞추고 있는 남성들이 있다.

여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게 된 한 기점이었던 지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에 함께해 화제가 됐던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성들은, 여성이라서 공격받는 범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여 눈길을 끌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도 여성들의 권리찾기, 여성 혐오 중단 등을 위해 연대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2017년 독서모임으로 시작해 페미니즘에 관한 학습과 연대를 계속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7명의 운영위원이 운영하는 오픈채팅방에는 80~90명의 인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남성'과 '남성성'이라는 의제 중심 페미니즘 활동 단체라고 소개한다. '남성' 운영위원인 이한(28) 씨에게 "왜 페미니즘이냐"고 물었다. 그에게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이 고착된 남성성의 변화에도 도움이 되는 등 이롭기도 하지만, 이롭지 않다면 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문제들이 만연해있고, 텔레그램 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등 남성의 일부지만, 그 남성들이 미친 영향에 대해 계속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이 그에 일조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바꾸려면 남성들도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고 있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젠더갈등이 수면 위로 많이 올라온 지금, 이런 활동을 드러내놓고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위원은 "남성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성차별적 문화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이라며 "어려움이 있다면, 여성들이 많은 운동이라는 인식이 많다 보니 동료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 있고, 그래서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분들이 있다. 이들을 연결해서 더 나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단체는 올겨울 남녀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모은 자료집도 발간할 예정이다.

여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남성들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신필식 박사는 올해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여성협동과정을 마치고, 첫 남성 '여성학박사'가 됐다. 신 박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여성학을 배운다고 말하면 '여자를 더 잘 꼬시기 위한 학문이냐', '연애 잘하려고 배우는 거냐' 묻는 사람도 있었다"(중앙일보 10월 24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는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돕는 책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무의식의 영역에서 가둬 둔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각자가 서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특징을 넘는 '진짜'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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