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役없는세상①] 쎈 언니들, 왜 아직도 특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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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役없는세상①] 쎈 언니들, 왜 아직도 특별한가요?
여전히 고착된 성역할, 미래를 위해 필요한 혁신
  • 2020.11.05 12:27
  • by 김정란 기자

문재인 정부의 현직 여성 장관 6명(2020년 11월 현재), 여성 WTO 사무총장 후보 배출 등, 고위직에서 많은 여성이 등장하고, 여성가족부 2021년 예산안은, 전년 대비 5.3% 증액된 1조 1,789억 원이 편성되는 등 해마다 늘고 있다. 2018년 여성 창업자 지원에 100억 원이 배정되는 등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위한 정책들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여성들은 여전히 이런 변화를 체감하기 힘들고, 사회활동에 여전히 많은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일부 남성들은 반대로 '역차별'을 주장한다. 여성들에 대한 지원책이 많아지면서 남성들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남성 역시 '남성성'이란 이름으로 강요받는 성격, 역할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이런 대결적인 사회 분위기는 젠더 갈등을 불러온다. 최근 몇 년 사이 특정 사이트에서 남성과 여성의 대결 양상의 설전이 오가는 등, 남녀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모든 이가 평등한 사회, 민주주의 국가가 된 지 70년이 넘어서고 있지만, 가부장적 성 역할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고, 우리가 깨지 못한 편견은 결국 갈등이 된다. 라이프인은 고착된 성 역할이 젠더 갈등의 원인을 넘어 우리 사회의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라고 보고, 이에 대한 대안을 실천하고 있는 사례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MBC 놀면뭐하니에 출연하는 '환불원정대'. 온라인 화면 갈무리
▲ MBC 놀면뭐하니에 출연하는 '환불원정대'. 온라인 화면 갈무리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뭐하니'를 통해 탄생한 가수 '환불원정대'는 '센 언니들의 귀환'이 컨셉이다. '저 언니들이 가면 환불을 잘 해줄것 같다'는 뜻에서 출발한 이름이니, 그룹 이름부터 그들의 이미지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이 언니들'이 화제인 것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여성다움'을 벗어난 이들의 캐릭터가 2020년에도 여전히 특별하기 때문에 이들은 화제성을 갖는다. 우리가 생각하던 '여성다움'은 무엇일까?

■ 밥 짓는 엄마, 돈 벌어오는 아빠...우리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그림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고착된 성 역할'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고색창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익숙한 그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고위직까지 올라간 여성, 야성적인 모습을 가진 여성들이 여전히 특별해 보이는 것이 그를 증명한다. 특히 공익광고나 교과서 속에서도 고착된 성 역할을 깨지 못하는 부분이 자주 발견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 초·중등 교과서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인권위가 제시한 사례 중 하나인 고등학교의 한 통합사회 교과서를 보면, 청년 세대의 고민을 다룬 부분에서 남성은 "일자리가 부족해서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여성은 "취업을 해도 집을 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남성은 결혼하면 가정을 책임지고, 여성은 육아를 하는 역할로 보이게 한다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남성에 대한 부정적 표현도 문제였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폭력적인 인물이 남성으로 묘사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 중학교의 한 도덕 교과서는 '밤길에 사고를 내고 도망가는 뺑소니 운전자', '식당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모두 남자로 묘사했다. 은연중 남성성과 여성성을 고착화시킬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높은 지위에 있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남자라는 편견도 자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맨스플레인'(man+explain, 어느 분야에 대해 여성들은 잘 모를 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가진 남성들이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려고 하는 행위)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요즘 남자 일, 여자 일이 어디 있어?"라고 말은 하지만,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아직 전통적 성 역할이 우리 머릿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 우리나라는 양성평등 교육을 통해 고착된 성 역할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 우리나라는 양성평등 교육을 통해 고착된 성 역할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 고착된 성 역할, 어느 쪽도 행복하지 않다

리더로 활동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시선의 변화 속도는 여전히 여성 리더들의 증가 속도보다 느리다. 여성 사업가, 워킹맘들은 능력이 있어도 여러 가지 편견에 시달릴 때가 많다. 직장인 C씨(48) 는 "일이 잘되고, 승진할 때마다 '엄마가 능력이 있어서 아이들이 엄마 얼굴 볼 시간이 없겠다'는 말을 듣거나, '남편이 기죽어 살겠다'는 말을 농담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런데 직위가 올라갈수록 이런 일로 공감을 나눌 고위직 기혼 여성 숫자는 줄어들어 털어놓기도 쉽지 않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회적기업 대표로 재직 중인 A씨(35)는 "'여성이 대표인 기업에는 투자를 잘 안 한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도 있다"며 황당해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성별 때문에 투자를 안 한다니 뭔가 싶으면서도, 아직 이만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 그의 푸념이었다.

성 역할이 고착되면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여성들뿐만은 아니다. 남자들도 뿌리 깊은 '남자는 능력' 우선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올해 만 3살의 아이를 키우는 C(37) 씨는 "남성 육아휴직을 쓰는 주변인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나도 생각해봤지만, 아직 내 스스로 남자가 돈을 벌어와야 한다는 벽을 못 깬 것 같다. 휴가 기간 중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때 종종 할머니나 다른 엄마들이 '사업하시나 보다, 휴직 중이시냐' 물어볼 때가 있는데 진짜 내가 회사를 그만둔 상태라면 아주 신경 쓰일 것 같다"라고 털어놓았다.

지난 10월 잡코리아가 직장인 1,57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남성 직장인 10명 중 9명에 가까운 사람들(87.3%)이 남편이 아내 대신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38.4%의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로는 '남성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는 회사 분위기 때문'이라는 답이 40.6%로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전보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남성이 '돌봄'을 맡는다는 데 대한 편견이 바뀌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경제활동을 중단한 고령층 남성에게서도 이런 문제는 자주 나타난다. 5년 전 퇴직한 K씨는 "아내가 전에 하던 잔소리를 해도 '내가 돈을 못 벌어와서 나를 무시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어 화를 낼 때가 있다"고 말했다. '돈 못 번다'고 무시를 당했다며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도 잊을만하면 일어난다. 고착된 성 역할은 때로 가정의 건강한 관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 변화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관심이 필요한 때

▲ 교육부는 남녀평등교육심의회 출범을 통해 성평등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 교육부는 남녀평등교육심의회 출범을 통해 성평등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5~49세 유배우자 여성 1만630명을 대상으로 '부부의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을 물었을 때 '남편이 할 일은 돈을 버는 것이고 아내가 할 일은 가정과 가족을 돌보는 것이다'는 질문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한 쪽은 무려 73.9%에 이른다. 우리는 머리로는 "고정된 성 역할은 없어"라는 것을 이미 받아들였고, 이제는 현실에서  편견을 깨는 이들을 직접 맞닥뜨리는 상황에 살고 있는 것이다.

더딘 발걸음이지만, 고착된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 계속해서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우리 머릿 속을 지배하고 있는 무의식의 영역을 바꾸려는 노력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미디어 속 고착된 성 역할을 바꾸려는 노력은 계속 진행 중이다.

영국은 지난해부터 영국 광고표준위원회(ASA : The 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는 성별 고정관념을 심어 줄 수 있는 광고를 규제하고 있다. 실제로 남성이 육아를 잘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광고 TV방영을 금지했고, 남성은 역동적인 모습으로, 여성은 얌전한 모습으로 묘사한 폭스바겐의 자동차 광고를 금지했다. ASA는 지난해 연구에서 "성 고정관념이 있는 광고를 볼 경우 어린이·청소년 등이 자신의 선택이나 기회를 제한해 불평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부 국가는 교과서 삽화에 여러 인물이 등장해 역할을 나누어야 할 경우 성별을 알 수 없는 동물을 등장시키는 대안을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에서 성평등과 이주민에 대한 허위조작정보나 혐오표현과 관련된 유튜브 게시물을 모니터한 결과 등을 내놓고 있다. 학교에서는 '성평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07 개정교육과정부터 범교과학습으로 양성평등교육을 명시해왔다. 여성가족부는 2018년 교과서의 성차별적 표현 개선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는 온라인 국민참여 공모 '바꾸면 쓸모 있는 성평등 교과서'를 진행했고, 교육부는 지난해 '남녀평등교육심의회' 출범으로 양성평등교육정책 추진기반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자꾸 보이고, 문제가 된다는 것은,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고, 이전에 남성이 혹은 여성이 보이지 않았던 영역에서 서로가 자꾸 보이면서 없던 질서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제도적, 시민사회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에 적응하려는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제도적 변화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가고 있는지, 개인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점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고착된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깨고 혁신 사례가 되고 있는 '남과 여'의 사례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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