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인정 쉬워야 일터가 안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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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인정 쉬워야 일터가 안전해진다
[라이프人 인터뷰] 삼성반도체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 인터뷰 -국정감사에서 못다 한 뒷이야기
  • 2017.10.16 18:23
  • by 공정경 기자

10월 12일 2017년 국정감사 첫날,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반올림 공유정옥 활동가가 참고인 자격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캐나다 온타리오주 산재판정 프로토콜과 8월 29일 대법원 판결문을 읽은 후 참고인에게 이번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질병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가 사업주나 정부 때문이라면, 증거제시를 못 하는 사실 자체를 신청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판결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0년 정도 반올림에서 산재인정을 도와왔는데, 확실한 인과관계 증거를 내놓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다. 증거가 없거나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 알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다. 사업주가 조사과정에서 마구잡이 개입을 해왔기 때문에 산재 노동자들은 질병의 고통뿐 아니라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억울함, 왜 인정받지 못하는지조차도 제대로 해명 받지 못해서 정부를 더 원망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이번 판결을 통해서 앞으로는 지금같이 정부가 사업주에게 휘둘리면서 '증거가 없으니까 산재 아니야, 네가 입증하지 못하면 너는 보상받을 권리 없어'라는 기존의 행태가 바뀌기를 간절히 바란다. 2007년 고용노동부를 찾아갔었다. 삼성을 만날 수도 없었고 문을 두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삼성의 영업비밀이라며 자료를 주지 않았다. 그 이후 피해제보자, 피해자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산재 인정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피해자들의 진술이나 피해자들이 확보한 자료들이 정부의 산재 인정과정에서 묵살당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이 제출한 자료에 따라 불리한 증거가 승인된 경우가 많았다.

영업비밀이라는 명목으로 삼성이 은폐한 자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종합진단보고서>를 이번에 고용노동부가 전향적으로 공개했다.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동안 정부의 자료 제출 거부로 직접 피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이렇게 늦어진 것에 대해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꼭 하기 바란다. 이런 자료들이 제출되지 않아서 산재 인정이 지연되고 산재 인정을 받기 전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참고인 공유정옥 활동가는 발언대에 나가는 순간까지 발언 분량을 수백 번 고쳐 썼다. 1분짜리, 2분짜리, 3분짜리. 국회의원과 참고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7분. 실질적으로 참고인에게 몇 분의 시간이 주어질지 알 수 없다. 몇 분이 될지 모르는 짧은 시간 안에 하고 싶은 말을 담아야 한다. 국회의원과 질의응답이 오간 후 보통 마무리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번에는 주어지지 않았다. 마무리 발언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김기철 씨에 대해 꼭 얘기하고 싶었는데... 사진까지 준비했는데...

정부세종청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 동행하여 국정감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반올림 공유정옥 활동가가 오랜 시간 동안 정부의 자료 제출 거부로 직접 피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정부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산재 인정만 됐어도 굴욕감까지 느끼며 삼성에 보상신청 할 필요 없었다

공정경 기자(이하 기자) : 아까 마무리 발언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못 하셔서 무척 아쉽겠다.

공유정옥 활동가(이하 정옥) : 김기철 씨 얘기를 하려고 했었는데...생각할수록 속상하다. 삼성작업장 안전진단보고서가 몇 개 있는데 2017년 1월 14일 돌아가신 김기철 씨는 보고서 비공개 때문에 직접 피해를 당한 분이다. 고용노동부에 화성공장 안전진단보고서가 있었는데 그 보고서를 보면 대략적으로라도 작업현장을 볼 수 있고 무슨 화학물질에 노출됐는지 추정이 가능하다. 그 보고서만 있었어도 산재 인정은 됐을 거다.

김기철 씨는 삼성전자 화성공장 사내협력업체에서 설비보수 업무를 담당했다.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일하다 보니 자기 옆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무슨 화학물질을 쓰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입사한 지 6년만인 2012년 9월경 혈액이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 아주대병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도 김기철 씨의 업무내용을 듣고 진단서에 '질병과 직업과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썼다.

85년생, 당시 27살인 김기철 씨가 2012년 산재신청을 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2013년 산재 불승인에 대해 행정소송을 걸었지만 2년 가까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고용노동부에 작업환경보고서를 계속 요청했지만 삼성의 영업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하고, 삼성에 자료제출 요청을 했지만 1년 6개월 동안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1년 6개월 동안 소송 진행이 안 되니까, 당시 판사가 삼성에 자료제출 명령서를 발부하겠다고 했다. 삼성은 그제야 관련 자료가 예전에 폐기됐거나, 영업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1년 6개월 전에 그 답을 하던지.

기자 : 1년 6개월을 시간 끌기로...

정옥 : 산재 인정도 못 받고 소송은 2년 동안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2015년 연말 김기철 씨는 어쩔 수 없이 삼성보상위원회에 보상 신청을 했다. 당시 대상자가 협력업체도 다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원래 협력업체는 안 해줘도 되는데 우리가 좋은 회사라 해주는 거다"라며 생색을 냈고, 김기철 씨와 가족은 자존심이 무척 상하고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생계문제가 걸려있고 복귀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2016년 다시 재발했다. 삼성보상위원회 보상에는 향후 치료비까지 보상한다고 했었는데, 김기철 씨는 재발은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었다.

기자 : 참, 속이 얼마나 상하셨을까.

정옥 : 행정소송이 제대로 진행이 안 돼서 우리가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인정만 했어도 재발비용과 연금이 나왔을 것이고, 삼성에 굴욕감까지 느끼며 보상신청을 할 필요도 없었을 거다. 임종을 보지는 못했지만 치료기간 함께 했던지라 고인이 어떤 심정으로 돌아가셨을지 보인다.

젊은 피해자들이 산재 인정을 꼭 받아야겠다고 하면서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게 있다. 부모님 잘 모시려고 취직했는데, 나 때문에 있는 재산 다 까먹고 빚지고 내가 죄인이라고 말한다. 매일매일 죽음을 눈앞에 둔 당사자인데 부모님에게 미안하고 정부가 원망스럽고 이런 모든 게 억울하고.

정부가 이번에 보고서를 공개했지만, 피해자들에게 정말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 질병으로 받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보상을 지연시키면서 주는 고통은 일부러 주는 고통이다. 그 죄질이 더 무겁다. 왜 이런 자료를 진작 보여주지 않았는지...그 원한을 어떻게 풀 것인가.

기자 : 이번 판결의 의미를 쉽게 설명하면?

정옥 : 이번 판결은 너무 중요하다. 기업이나 정부에서 증거가 없다고 하면 신청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주는 거다. 예를 들어, 기업이 작업장 발암물질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발암물질 있는 거로 할게'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현행법의 취지를 살리는 판결이다. 정보공개요청을 안 해도, 노동자가 정보를 모르더라도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판단을 하면 기업은 자기에게 유리할 게 없으니까 정보를 숨기지 않을 것이고 해당부처 또한 기업의 횡포에 놀아날 이유가 없다.

2015년인지 16년인지, 삼성이 산재 보험료 감면받은 금액이 1000억이다. 일 년에 1000억은 아니더라도 10년 동안 감면받은 금액이 얼마인가. 노동자에게 '산재 인정 받고 싶으면 증거를 가져와라'하는 것도 억울한데, 삼성은 산재 인정받지 않은 덕에 그동안 부당이익까지 취해왔다. 남의 권리를 박탈해서 자기가 돈을 버는 거다. 이건 정의의 문제다.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산재 인정이 보편적으로 돼야 재해가 없어질 수 있다

기자 : 산재보험제도 자체가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옥 : 우리나라는 산재보험제도가 굉장히 왜곡돼 있다. 뭔 사회보장제도가 이렇게 인정받기 어렵고, 게다가 남들이 방해해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인지...말이 안 된다. 다른 사회보장제도는 산재보험 받기만큼 이렇게 어렵지는 않다. 건강보험, 국민연금처럼 산재 보상받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맹장 수술을 했는데 "저 사람은 얼마 지원받고 본인 부담으로 얼마 냈데. 저 사람 대단하다" 이렇지 않다. 건강보험처럼 산재신청도 한 번씩은 다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투약이건 통원치료건 입원이건 치료기간이 4일 이상 필요하고 일과 관련된 경우면 다 산재보상이 된다.

기자 : 4일 이상 치료가 필요하면? 뺨만 맞아도 전치 2주인데?

정옥 : 법에 나와 있는 치료기간이 4일 이상이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그러면서 묻는다. "그러면 개나 소나 다 산재 게?", "응, 개나 소나 다 산재야."라고 답한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일하다가 기름에 손을 데었다. 데어도 일은 할 수 있으니까 휴업급여는 안 나올 거고, 진찰받고 연고 바르고... 산재 보험료가 한 3~4만원 정도 나올 것이다. 그런 거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산재 보험료를 받는 게 특별한 경우가 된다는 사실이 기형이다. 보편복지로서의 시스템이 아니다. 건수도 훨씬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일하면서 무엇 때문에 다치는지가 보인다.

기자 : 맞다. 그래야 각 작업장에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면밀히 드러날 수 있다.

정옥 : 기름 한 방울 튀어서 화상 입은 게 산재처리야 돼야 나중에 기름이 쏟아져서 죽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산재 인정이 보편적으로 돼야 재해가 없어질 수 있다.

기자 : 산재 발생률이 낮으면 보험료를 감면해주는 것도 문제다.

정옥 : 산재 발생률이 낮으면 보험료를 감면해주는 인센티브를 써왔는데 이게 산재를 예방하는 게 아니라 산재 은폐를 조장하는 방향으로 간다. 기본 컨셉이 잘못됐다. 산재 예방은 정말 어렵다. 최선을 다해서 해도 생길 수 있는 거고. '산재가 왜 생겼느냐'를 잘 분석해서 과실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 엄격하게 처벌하고 과실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지도해서 예방하도록 해야 한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잘 가르쳐서 공부를 잘할 수 있게 하고 공부를 좋아하게 하는 건 힘이 든다. 하지만 때려서 성적 올리는 건 쉽다. 때리면 다음 시험에서 컨닝을 해서라도 점수를 올리니까. 정부의 접근법이 딱 이런 거다. 잘 지도하고 예방한다는 것은 단속만이 아니라 캠페인, 인식변화, 인프라 구축 등 여러 가지 조처들을 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잘 지도해서 예방해야 하는데 그런 건 티가 안 나니까 당장 단속하고 야단치는 식으로 접근한다. 그러다 보니 사업주는 산재를 은폐하는 거다.

우리나라는 산재 발생률이 낮다. 업무상 질병은 엄청나게 낮고 업무상 사고 발생률도 엄청나게 낮다.

기자 : 그런데 일하다 죽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고. 일 년에 2400명이 넘으니.

정옥 :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다. 추정해보면 적어도 10배 정도는 산재처리가 돼야 한다. 엄청나게 많이 감춰져 있는 거다. 산재 사망률이 영국보다 십여 배가 높다. 산재 사고로 10배 이상이 더 죽는다는 것은 이 나라 시스템에 뭔가가 에러가 있다는 거다. 얼마 전에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무너지는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이런 식으로 대형 사고가 몇 달에 한 번씩 일어난다. 그런 사회니까 삼성반도체 문제가 이렇게 안 풀리는 거다.

삼성은 정말 못됐다. 그런데 삼성이 못되게 굴 수 있게 만드는 이 시스템 자체가 문제다. 드라마 '송곳'에서도 나오지 않나. 프랑스인 점장에게 프랑스에서는 노동권 다 인정하면서 왜 여기서는 노조탄압 하냐고 했더니...

기자 : "여기니까. 여긴 그래도 되니까."

정옥 : 15년 전쯤 스웨덴에 간 시민단체 활동가가 물었다. 스웨덴은 추락사가 몇 건이나 되냐고. 당시 한국은 건설노동자가 하루 평균 2명이 죽었다. 하루에 몇 명, 한 달에 몇 명, 분기에 몇 명이라고 답할 거라 예상했는데, 돌아오는 답이 "왜 추락해요?"였다.

기자 : 너무 멋진 말이다. 일부러 뛰어 내리려고 해도 추락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하는 게 상식인데.

정옥 : 그게 얼마나 큰 차이인가. 김기철 씨의 죽음은 협력업체에게 위험 떠넘기기, 산재 인정 못 받는 제도의 문제, 정부와 기업 짬짜미 등 다 얽혀있다. 한 사람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 입법, 행정, 사법부가 다 연결된 문제라는 것을 반올림하면서 정말 많이 실감한다. '어느 하나도 따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10년의 노력 끝에 이제 하나의 보고서가 열렸다. '비밀은 위험하다'라는 시민단체의 캠페인처럼, 기업의 비밀주의는 위험하다. 억울하게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없도록 정부와 기업은 필요한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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