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 2023 라이프인 키워드 '컷(CUT)'...예산도 조직도 없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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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기획] 2023 라이프인 키워드 '컷(CUT)'...예산도 조직도 없어졌다고?
2023 라이프인이 선정한 올해의 키워드 'CUT'
  • 2023.12.22 18:00
  • by 이새벽 기자

올해 한국 사회적경제 상황은 한껏 얼어붙었다. 국제연합(이하 UN)이 지난 4월 제77차 정기총회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결의안(이하 UN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국제사회에서는 사회적경제(사회연대경제)의 불씨를 더 지피는 반면, 국내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작년보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냉대가 더 가속화됐다. 

대대적인 예산 삭감과 지원사업 폐지, 조직 통폐합, 인원 축소 등을 보면 현 尹정부는 사회적경제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왜곡된 시선이 있다고 느껴진다. 사회적경제는 더 이상 우리 일이 아니라는 듯 선을 긋는 듯하다.  

라이프인은 올해 소셜섹터를 돌아보는 키워드로 'CUT(자르다, 빼다, 줄이다)'을 제시한다. CUT은 Crisis(위기), Union(연합), Turn around(반전)의 영어 머리글자를 딴 것. 사회적경제(사회연대경제)의 위기 속에서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자립·자조할 수 있는 기반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CRISIS: 예산 삭감, 조직 및 인원 축소 등 사회적경제가 마주한 '위기'

사회적경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尹정부의 무관심은 사회적경제 박람회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전 정부 때에는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고 불참 시 축하영상을 보내왔는데,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현장에서 대통령을 볼 수 없었다. 박람회에 참석한 최고위급은 작년엔 기획재정부 조정실장, 올해엔 고용노동부 통합고용정책국장, 기획재정부 지속가능경제과장이었다.  

작년 말 기획재정부는 조직개편으로 장기전략국 산하의 협동조합과와 사회적경제과를 미래전략국 지속가능경제과로 통폐합했다. 기획재정부가 협동조합 활성화와 반대로 후퇴하는 행보를 보이자 현장에서는 사회적경제 존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9월 尹정부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 예산을 대폭 삭감한 2024년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협동조합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2024년 협동조합활성화사업 예산을 7억 8천만 원으로 잡았다. '23년 예산(75억 8백만 원) 대비 90% 이상 삭감한 것이다.

사회적기업 담당부서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사회적기업육성 예산안은 전년대비 반 토막이다. ▲일반 '23년 938억 8천만 원에서 '24년 285억 8천9백만 원(70%)으로 ▲지역개발특별회계 '23년 1033억 7천7백만 원에서 ‘24년 476억 6천5백만 원(54%)으로 ▲지역개발특별회계 제주 ‘23년 49억 3천7백만 원에서 '24년 23억 7천만 원(52%)으로 삭감했다. 

마을기업 담당부서 행정안전부도 마을기업육성사업 예산을 '23년 69억 6천5백만 원에서 26억 9천5백만 원으로 61% 삭감했다. 

이외에도 예산을 100% 삭감 및 삭제한 곳도 있다. ▲[금융위] ①신용보증기금 사회적경제 보증사업, ②서민금융진흥원 사회적경제 대출지원, ③사회투자펀드 조성 및 운영 ▲[교육부] ④학교협동조합 활성화 ▲[행안부] ⑤사회적경제 협업체계 구축사업 ▲[문체부] ⑥스포츠산업 예비초기 창업지원 ▲[농식품부] ⑦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 ⑧농업농촌 사회적경제 지원센터, ⑨농촌 사회적경제 서비스공급 기반조성 ▲[산림청] ⑩산림형 사회적기업 발굴·육성, ⑪산림일자리발전소 운영, ⑫신품종 생명자원 활용 공동체 활성화 ▲[중기부] ⑬소셜벤처 육성 ▲[환경부] ⑭환경분야 사회적경제 육성 ▲[여가부] ⑮여성가족형 예비사회적기업 활성화지원 등 총 15곳이다. 

예산 삭감에 이어 관련 공간을 철거하고 조직 및 인원도 축소했다. 

사회적경제를 '세금 뽑아 먹는 ATM'이라고 발언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7월 서울혁신파크를 철거하고 대규모 문화복합시설을 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철거로 인해 서울혁신파크 사업이 완전히 종료되면서 그 안에 있던 중간지원조직은 물론이고 입주기업도 쫓겨났다. 시민 또한 자유롭게 발 들일 수 없게 됐다.
 

 ▲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신규 민간위탁 예산 및 정원 대폭 삭감 반대 기자회견에 참석한 공웅재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성과연구실장. ⓒ라이프인
 ▲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신규 민간위탁 예산 및 정원 대폭 삭감 반대 기자회견에 참석한 공웅재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성과연구실장. ⓒ라이프인

서울혁신파크에서 쫓겨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협동조합지원센터는 두 센터를 통합한다는 서울시 방침에 따라 직원 대다수가 일자리도 잃게 됐다. 현원 80% 이상 고용을 유지하라는 고용규정(서울시 민간위탁관리지침)과 총원을 20명으로 결정한 동의안(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운영 사무의 민간위탁 동의안)이 있음에도 서울시는 현원을 25%(6명)만 남긴다고 통보했다.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도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국회 제19대부터 21대까지 발의됐다. 햇수로는 10년 이상이다. 내년 5월 29일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또 국회 임기 만료 사유로 폐기된다. 국제사회에서 통용하는 '사회연대경제'로 이름을 바꾸면 정책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할 수 있을까. 라이프인은 사회적경제의 용어 변경을 제안하면서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응답자 83.8%는 용어변경에 찬성했다. 
  
UNION: 난국일수록 사회적경제 강점 '연대'와 '협력' 발휘해

정부가 9월 사회적경제 예산을 대폭 삭감한 2024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사회적경제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꾸려졌고 10월 출범식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렸다. 사회적경제 88개 단체(연합체 62개, 개별 단체 26개) 및 사회적경제인 400명과 국회의원 6명(더불어민주당의 홍익표·진선미·김영배·민형배, 정의당의 강은미, 기본소득당의 용혜인)이 참석해 '사회적경제 예산 원상 복구'를 연거푸 외쳤다. 
 

▲ 사회적경제인과 국회위원들이 '사회적경제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사회적경제 예산 원상 복구하라"고 외치고 있다. ⓒ라이프인
▲ 사회적경제인과 국회위원들이 '사회적경제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사회적경제 예산 원상 복구하라"고 외치고 있다. ⓒ라이프인

공대위는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와 전국협동조합협의회(이하 전국협)를 주축으로 전국 사회적경제 관련 단체가 대거 참여해 정부 정책에 대항·투쟁한 첫 번째 사례다. 

공대위는 출범이전부터 연대회의차원에서 사회적경제 관련 정책을 감시하고 예산 편성 계획에 대해 문의·확인해 왔다. 전국협은 여러 의원실의 도움을 받으며 예산 승인 절차를 밟아왔다. 이에 따라 경제재정소위에서 기재부가 협동조합 교육과 판로지원 관련 20억 증액 의견을 제출했고, 중간지원조직 운영 예산 복구 관련 의견은 예결특위에 전달했다. 진선미 의원실의 구슬기 보좌관은 국정감사와 상임위원회에 대응해 움직였다. 대전, 강원, 전북, 전남, 광주, 충북 등에서도 지역 활동을 전개했다.  

공대위는 ▲사회적기업 성장지원 사업 등과 관련해 고용노동부 환경노동위원회에 870억 6천2백만 원 ▲협동조합 활성화사업과 관련해 기획재정부 기획재정위원회에 59억 4천6백만 원 ▲마을기업 육성사업과 관련해 행정안전부 행정안전위원회에 42억 7천만 원 증액을 요구했다.

21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 2024년 예산안에는 협동조합 관련 예산은 총 8억 원, 사회적기업 관련 예산은 총 44억 원 증액됐다.  
 

▲ '공공의 공간으로서 서울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서울혁신파크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뜻으로 서울혁신파크 피아노숲 잔디밭에 눕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라이프인
▲ '공공의 공간으로서 서울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서울혁신파크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뜻으로 서울혁신파크 피아노숲 잔디밭에 눕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라이프인

서울시가 7월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협동조합지원센터가 위치한 서울혁신파크에 대규모 문화복합시설을 들이겠다며 부지 재개발을 발표했을 때, 서울혁신파크를 자유롭게 드나들던 시민들은 이곳을 공공의 공간으로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어린이를 포함한 지역주민, 시민사회단체, 사회혁신기업, 정치인들이 모여 '공공의 공간으로 서울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이하)'을 결성하고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외에도 협동조합이 가진 연대와 협력으로 자생력을 갖추려 노력한 사례도 있다.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협동조합들이 운영·재정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김상현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장은 연합회 차원에서 협동조합들의 공통적인 필요와 열망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사업을 직접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적경제 상호거래 플랫폼 구축을 제안했다. 이렇게 '더쎈몰[The Cen(Cooperative Economic Network) Mall]'이 3월에 나타났다.  

같은 달,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새(SE)로운 공동행동 출발 선언식을 열었다. '새(SE)로운 공동행동'은 작년에 발간한 <2022년 사회적경제 정체성 보고서>에서 '사회적경제는 연대의 실천을 통해 우리시대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경제활동'이라는 정의에 의거해 기획됐다. 연대를 통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략적인 공동행동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첫 번째로 제시한 공동행동은 한겨레두레협동조합 가입 및 장례서비스 이용하기였다.    

Turn Around: 사회적경제에 주목하는 세계, 한국도 이에 따라 '반전' 이루길 

"겨울이 다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 난세가 되어야 훌륭한 사람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는 뜻의 속담이다. 노순호 동구밭 대표는 '모두의 사회적경제 x ESG 콘퍼런스' 개막행사에서 이 속담을 인용하면서 사회적경제의 현 상황과 사회적기업을 겨울과 소나무로 비유하고 사회적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기원했다. 

노 대표 말처럼 국내 사회적경제의 계절은 겨울이다. 정부 내 사회적경제 관련 부서는 통폐합됐고, 2024년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10년 묵은 사회적경제기본법안에 대해선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사회적경제를 대하는 모습은 국내와 사뭇 다르다. 해가 갈수록 사회적경제를 중요시하고 있다. 

UN 산하 국제노동기구(이하ILO)는 작년 6월 '양질의 일자리와 사회연대경제에 관한 결의안(Resolution concerning decent work and the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이하 ILO 결의안)'을 채택했다. ILO 결의안에서는 사회연대경제의 보편적 정의를 제시하고, 사회연대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 양질의 일자리, 환경 문제 해결 등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올해 4월 ILO 결의안을 초석으로 삼아 채택한 UN 결의안에서는 사회연대경제가 지속가능한 사회 경제적 구조를 만드는 것과 불평등 해소, 인권 증진 등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며 사회연대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책·금융 등의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 국제연합 'UNGA 78 President Opening Remarks to 39th Plenary Meeting of the General Assembly'. 온라인 화면 갈무리.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국제연합 'UNGA 78 President Opening Remarks to 39th Plenary Meeting of the General Assembly'. 온라인 화면 갈무리.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이어, UN은 11월 제78차 정기총회에서 후년 2025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특히 이번 결의안에서는 UN 회원국들에게 협동조합이 사회문제 해결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성장 지원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자본 관련 제도 개선 또는 신설 등 기존 법제 검토도 권고하고 있다.  

UN회원국인 우리나라도 국제사회 걸음에 발맞춰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상황을 돌아보면서 미비한 법과 제도를 개선해 나갈까? 

지난 14일 열렸던 '제5회 지방자치단체 사회적경제 정책평가 시상식'에서 임영미 고용노동부 통합고용정책국장은 "'사회적기업을 포기한 것 아니냐, 사회적기업의 가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고용노동부는 한 번도 그렇다고 답한 적이 없다. 여전히 고용노동부는 사회적기업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반드시 사회적기업과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예산삭감이 아니라 반대로 지원했어야 하지 않는가?

사회적경제 예산 및 정책 지원은 '퍼주기'가 아니라 사회적경제 역할에 대한 '인정(認定)'이다. 그간 사회적경제는 일자리 창출 및 취약계층 고용, 기후위기 및 불평등 대응 활동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왔고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정부 지원 또한 뒷받침되어 왔던 것이다.

기업은 물론 스스로 잘해야 하지만 사회적경제 기업은 일반 기업처럼 재무성과만 추구하지 않는다. 사회적경제 기업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재무성과뿐 아니라 사회성과까지 잘 거둘 수 있으려면 둘 다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우선 만들어줘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경제 제도 개선과 생태계 활성화 등 기반부터 탄탄히 하고 나서 자생력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사회적경제기본법부터 제정해야 하지 않을까? '법대로 하라'는 말로 사회적경제가 살 수 있게 말이다.  

사회적경제가 맞은 이번 시련의 시기 동안 정부지원에 의존해 왔던 사회적경제 기업은 경영방식을 재정비해 내실을 다지고, 정부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맞게 사회적경제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해 현장의 요구를 청취하며 성장의 발판을 내어준다면, 사회적경제는 공공의 손이 미처 미치지 못했던 곳곳에서 그 공백을 메꿔 나갈 것이다. 정부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먼저 채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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