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되는 연구 ⑧] 무엇이 의료사협을 움직이게 하는가
상태바
[힘이되는 연구 ⑧] 무엇이 의료사협을 움직이게 하는가
  • 2021.06.04 09:00
  • by 오춘희(성공회대학교 협동조합경영학과 박사과정, 건강플러스협동연구소협동조합 정책연구원)

사회적경제를 주제로 한 논문은 올해 2월 기준으로 '사회적기업'이 들어간 논문 2,280건, '협동조합' 593건, '사회혁신' 278건으로 검색된다. 사회적경제 영역의 실천 현장과 연구 현장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지만, 연구 결과물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읽히는 것이 현실. 사회적 경제 연구자들과 왜 이러한 연구를 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조금은 쉬운 언어로 전달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중요한 쟁점에 대한 논의를 확산해 사회적 경제 연구와 현장의 접점을 넓혀 서로의 지식, 지혜를 교환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협동조합을 포함하여 사회적경제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경영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경영의 문제에 골몰하다 보면 다시 만나게 되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협동조합을 하고 있는가? 꼭 협동조합이어야 하는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이 이루고자 하는 가치와 현실 속 경영은 나란히 갈 수 있긴 한 것인가?

명쾌한 한방의 해답을 찾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 질문에 답을 찾고자 협동조합경영 공부를 시작했었다. 현장활동가가 아닌 경영 전문가로서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고, 우리의 현장을 우리를 잘 모르는 외부 연구자의 시선에 맡기지 않고 내부자의 시선으로 더욱 풍부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논문을 쓰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어디까지 깊이 들어가야 하는지, 현장 경험이 몇 년인데 이 정도로 마무리해도 되는지, 욕심의 끝은 늘 부담이었던 것 같다. 여튼 그런 과정을 거쳐 성과로 '협동조합의 제도실천행위, 의료사협의 제도변화'라는 논문을 쓰면서 경험한 부분, 고민을 나눠보고자 한다. 

사업체 운영과 가치라는 양 날개, 경영의 돌파구 등 헤어나오기 힘든 블랙홀 같은 질문의 꼬리 속에서 그럼 어디서부터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면 좋을까 원점에서 고민해보았다. 그때 떠오른 질문은 '무엇이 의료사협을 움직이게 할까?'였다.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의료사협이 지역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풀고자 하는 숙제의 실마리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의료사협 조직을 바라봄에 있어 조직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두었다. 여기서 개인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인이며 조직의 효과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 그 자체로 인식된다. 1990년대 이후에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제도실천행위라는 이론이 등장하였다. 제도실천행위는 제도가 개인의 자율행위에 의해 재생산된다고 보는 관점으로, 조직의 행위자는 제도적인 제약에 의해 지배를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의도한 결과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사이에서 성찰을 통해 목표를 재설정하고 행동을 변화시켜가는 능동적 주체로 인식된다.

의료사협의 제도화 과정에서 능동적인 행위자의 역할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기에 제도실천행위는 의료사협을 설명하는데 매우 의미 있는 관점이라고 보았다. 의료사협이 어떻게 스스로를 정의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하였고, 의도하지 않은 유사의료생협이라는 결과와 마주하며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변화 시켜 가는지, 또 협동조합기본법이라는 환경의 변곡점에서 어떤 변화를 겪고 새로운 성장의 토대를 만들었는지 <표 1>과 같이 제도실천행위를 중심으로 의료사협의 제도변화를 분석하였다.

▲ 의료사협의 제도변화와 제도실천행위  
▲ 의료사협의 제도변화와 제도실천행위  

의료사협은 1989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한국의 보건의료체계가 가지는 불평등 구조와 의료의 높은 전문성으로 인한 정보 비대칭 등 기존 보건의료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한 의료인 그룹에서 출발하였다. 전문가 중심의 의료에 대해 비판적이었음에도 여전히 의료인 중심의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 초기 그룹에 어떻게 이용자 중심으로 고민을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적 고민은 큰 숙제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 일본 의료생협의 연수과정을 통해 주민 중심의 조직운영 방식과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을 경험하고 조직적 모방이 이뤄지게 된다. 이후 생협법 제정을 통해 단순히 객체로서의 의료이용자가 아니라 조직을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주체로서의 법적 근거를 세우고 의료생협이라는 법인격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서울, 대전, 원주 등에서 의료생협의 설립도 속도를 내게 된다. 이것이 의료생협이 정체성을 형성하고 제도로서 첫발을 내딛는 과정이다.

생협법 근거로 의료생협을 설립하는 것은 의료인이 아니면 개설 자체가 어려운 의료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결국 이를 악용하는 유사의료생협이 등장하게 되었다. 유사의료생협은 사무장병원으로 일컬어지며, 겉으로 생협의 조직요건을 갖춘 것처럼 위장하고 실제 돈이 있는 몇 사람이 병원을 내고 의료인을 채용하여 운영하는 형태로 이는 의료를 자신들의 이익추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무분별한 환자유인행위 등 부당청구로 이어지면서 사회적인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의료생협은 존립 자체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료생협은 정체성에 대한 재고민과 의료의 공공적 성격에 맞는 접근으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지역사회 건강불평등 해소를 위한 노력과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전후에 지역사회 돌봄의 새로운 모델을 선도하며, 초기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게 된 것이다. 의료생협의 조직적 틀과 네트워크를 넘어 사회적경제 전반의 새로운 네트워크의 중심에 참여하면서 내적으로는 회원 의료생협의 조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전국단위 연합회를 출범시켜 의료생협의 제도를 건실하게 하는 노력을 이어갔다.

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 이후 의료생협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 의료인 중심에서 의료이용자 중심으로 옮겨온 조직의 중심축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옮기면서 스스로의 위치를 재설정하게 되었다. 이제 의료사협은 보편적 건강의 중심에서 보건의료와 사회적경제, 그리고 복지영역을 아우르며 새로운 제도실천을 도입해가고 있다. 

▲ 필자가 활동했던 행복한마을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2012년 9월 '의료생협'으로 창립하고, 5개월 후인 2013년 2월에 전환 및 창립총회를 거쳐 전국에서 두 번째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인가를 받았다.
▲ 필자가 활동했던 행복한마을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2012년 9월 '의료생협'으로 창립하고, 5개월 후인 2013년 2월에 전환 및 창립총회를 거쳐 전국에서 두 번째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인가를 받았다.

어려움이 크게 다가올수록 우리가 왜 의료사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며 조직의 존재 의미를 체화시켜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어떤 조직은 위기가 닥치면 갈등이 발생하고, 결국 그 갈등으로 인해 조직이 와해 되는 과정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의료사협도 과거에나 지금에나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은 일방적으로 무시되거나 하지 않으며 그 속에서 다시 조직을 끌어가는 에너지, 새로운 행위자의 실천들로 채워지고 있다. 섣부른 봉합보다는 조직적 진통을 감내하며 더딘 걸음이지만 함께 가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료사협의 제도화과정 하나하나를 정리하는 과정은 '논문'이라는 개인의 과제 이전에 의료사협 활동가로서 지난 활동에 대한 위로의 시간이자 가슴 뛰는 벅찬 과정이기도 하였다. 의료사협 선배 활동가들의 고민과 열정이 녹아든 회의록을 하나하나 들춰보며 감정이 북받쳐 올라 한참 울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옛날 선배에게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더랬다. 어느 것 하나 그냥 얻어진 것이 없고,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어느 누구 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임을 새삼 느끼는 그 순간, 마냥 겸손해지고 싶어졌다. 

우리가 고민하는 경영은 우리의 조직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는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지금은 어디쯤 와 있는지 성찰의 과정을 거쳐야 현실의 문제와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경영에 대한 명쾌한 한 방을 기대하며 시작한 공부의 마무리 논문이었지만, 조직을 이해하고 조직을 움직이는 원동력을 확인한 것에 만족한다. 이것이 의료사협이 가지는 경쟁우위라 믿고 있다. 


※ 관련 논문은 한국협동조합연구(http://www.kcoops.or.kr)에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제도변화"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춘희(성공회대학교 협동조합경영학과 박사과정, 건강플러스협동연구소협동조합 정책연구원)
오춘희(성공회대학교 협동조합경영학과 박사과정, 건강플러스협동연구소협동조합 정책연구원)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4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