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라는 재난 시대, 할머니를 불러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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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라는 재난 시대, 할머니를 불러오라
소셜뮤지엄 최소연 대표 , 김문경 상임이사, 장문경 감사 인터뷰
  • 2020.12.09 10:52
  • by 전윤서 기자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운영하는 스페이스 살림은 여성혁신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가족과 시민이 함께 즐기는 여성가족복합공간이다. 혁신적인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여성 기업, 젠더 관점으로 미래 세대를 성장시키는 기업 또는 친환경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스페이스 살림에 입주해 있다. 여타 스타트업 입주 센터와는 달리 스페이스 살림에는 사무실, 매장, 스튜디오, 시간제 돌봄, 아동동반 공유 사무실, 젠더 관점의 투자 등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갖추었다. 

또한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 카페, 마을부엌, 옥상텃밭, 옥상정원, 옥상공연장, 마을 서재 등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이 마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 이끄는 기업, 아이를 돌보는 남성. 고정되어 있지 않은 성 역할을 보여주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연스럽게 성 평등을 배워가는 공간'이다. 라이프인은 스페이스 살림의 입주기업을 찾아가 기업의 고유한 가치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올해 설립된 소셜뮤지엄은 '예술 또는 문화가 하나의 공동지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바람에서 출발한 네트워크 형태의 예술 공동체이다. 올해 설립되었지만 소셜뮤지엄에 참여하는 멤버들의 내공이나 경험은 얇지 않다. 미술가, 시인, 영화감독, 전시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그간 독자적으로 진행했던 활동들을 씨앗 삼아 앞으로의 예술 활동을 소셜뮤지엄의 이름으로 뜻을 모아 보자며 합심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셜뮤지엄은 발기인 3명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난 문화예술인, 할머니학교를 수료한 할머니, 다양한 예술 활동을 응원하는 일반 시민 등 회원 100명이 참여하고 있다.

순수미술 활동을 이어온 최소연 대표와 시인이자 영화 제작자로 활동한 김문경, 법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NPO 지원센터에서 근무한 장문경. 다른 이력을 가진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경험을 토대로 이제는 '소셜뮤지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통해 예술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발기인 3명이 입을 모아 말하는 예술은 바로 공공성을 지닌 예술이었다. 그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소셜뮤지엄'이라는 이름이기도 하다. 김문경 상임이사는 "'소셜(social)'이라는 것. 사람, 그리고 할머니들과 예술을 매개로 소셜적인 것을 펼친다는 것. 그것 자체가 한 사람의 개별자로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으면서 살아남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 명, 한 명이 살아있는 하나의 책, 문화유산이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소셜뮤지엄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최 대표는 "2020년, 우리는 코로나 이후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 세계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재난 상황을 맞이했다. 그런데도 문화나 예술은 공동지대를 만들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 할머니학교 진행 모습. (左)최소연 대표 ⓒ소셜뮤지엄
▲ 할머니학교 진행 모습. (左)최소연 대표 ⓒ소셜뮤지엄

■ "우리가 할머니를 호명한 적이 있었나?"
최 대표는 라이프인과의 인터뷰에서 "할머니는 히든카드 같았다. 심리적으로 힘들고 지쳤을 때 할머니 무릎에 누웠던 기억이 있다. 언제나 우리가 필요하면 달려갔던 존재이다. 그런데 제대로 할머니를 호명해본 적이 있나? 겸손한 마음으로 할머니 정체성 연구를 시작했다"라며 할머니학교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관해 설명했다.

지난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0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가 인구의 15.7%를 차지한다. 고령 인구는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해 2025년에는 20%를 웃돌 전망이다. 점점 늘어나는 고령 인구. 소셜뮤지엄은 고령화 사회에서 할머니라는 히든카드를 꺼내 들었다. 소셜뮤지엄의 대표 문화예술프로그램 할머니학교는 독산동 동장의 기발한 상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장은 할머니들을 다시 학교로 보내면 어떨까 상상했고 65세 이상 할머니를 대상으로 취학통지서를 보내려 준비단을 꾸렸다. 이때 프로젝트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최 대표는 할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보고 할머니 정체성 연구를 맡아 동시에 할머니학교 설계ㆍ운영ㆍ총괄을 진행했다. 최 대표는 "오늘날을 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 재난과도 같은 상황이다. 고령화 사회라고 하면 복지에 방점을 찍어 지원 정책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당사자인 어르신들이 사회적 난제를 풀어가도록 하는 교육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난 당사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교육공동체로 할머니학교가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 할머니학교에 참여한 할머니들과 연구노트 中 발췌 ⓒ소셜뮤지엄
▲ 할머니학교에 참여한 할머니들과 연구노트 中 발췌 ⓒ소셜뮤지엄

■ 허(her)스토리, 도시역사와 대한민국을 보여주다
장문경 감사는 "여유로운 노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여유로운 노년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노년이 아니라 뭔가를 할 수 있는 노년이 진정 여유로운 노년이었다"고 밝혔다. 소셜뮤지엄은 평균나이 75세 할머니들이 학생인 할머니학교를 운영하면서 할머니들을 자기 삶의 주체자로 끌어냈으며 문화생산자의 역할을 하게 했다. 할머니들은 세상을 보는 눈을 알아갔다. 자연스럽게 할머니들의 단조로운 삶도 변화했다. 성경을 필사하던 책상은 자신을 연구하는 노트가 놓인 책상으로 바뀌었고, 지루했던 마을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마을 지도를 그렸다. 2017년 할머니 선반 '자신을 드러내는 사물들을 연구' , 2018년 생기 공동체 '생기를 잃어가는 노년의 삶에 대한 연구', 2019년 미투 등 할머니학교는 매해 한가지의 주제를 정해 할머니들과 함께 고령화 사회를 연구했다. 2019년 주제는 괴물이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괴물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괴물을 발견해내는 방법을 알아가면서 할머니들은 내면의 괴물을 한 겹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나는 수다를 참 많이 해, 나는 수다 괴물이야."
혼밥 혼술 괴물, 허리아픈 괴물, 붉은색 살 괴물, 집착괴물, 옥상 바닥에 누워 우는 여인, (...)

할머니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개인의 기억은 "아주 사회적인 것"이었다. 최 대표는 "머리카락 떼어내듯 힐머니에게 괴물을 한 겹 벗어내면 할머니의 것이 아니라 도시의 것이 된다"라며, "할머니들의 개인적인 기억을 표현한 것이지만 우리가 본 것은 도시의 역사였고, 한국의 근대사였다"라고 말했다. 할머니학교를 진행하면서 발견한 것은 할머니들이 직접 발견한 주체적인 삶도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했던 허(her)스토리가 발견되었다. 소셜뮤지엄은 할머니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동화책으로 발간하고, 전시, 포럼 등을 진행해 할머니라는 문화 자산을 공공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12일까지 서울NPO지원센터 1층에서 진행했던 '할머니에게 학교를!' 전시 전경 ⓒ소셜뮤지엄
▲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12일까지 서울NPO지원센터 1층에서 진행했던 '할머니에게 학교를!' 전시 전경 ⓒ소셜뮤지엄

이밖에 소셜뮤지엄은 ▲구로구 어르신들이 현재의 마음을 담아 시를 쓰고 이를 책, 무용 대본, 시로 엮어내는 자서전무용단 ▲서울과 제주를 중심으로 일어난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지역별 재난 예술을 펼쳐가는 재난 학교 ▲서대문에 있는 30년 이상 된 슈퍼 사장님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도시생태계의 문화 다양성과 공동체성을 보여주는 생활 역사 아카이브 ▲제주를 떠나지 못하는 예멘인들과 함께 이동식 도서관 '다우알가말(달빛)'을 열어 순회 워크숍 및 전시 개최하는 등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전시, 기획, 교육,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담을 수 있는 형태로 변모하고자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법인화를 준비 중이다. 최 대표는 "새로운 이름 소셜뮤지엄 덕분에 새로운 가능성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동굴 벽화가 탄생했을 때 인류의 기록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동굴벽화를 보면서 공동체의 힘 또한 알 수 있다. 캄캄한 동굴에서 무엇을 그릴지 논의하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릴 도구를 만들고, 누군가는 횃불을 켜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소셜뮤지엄은 이 그림 그리는 인류를 부활 시켜 예술과 시민들의 접점을 늘려나갈 계획"이라 밝혔다. 이로써 개인이 엮어진 공동체를 공고히 하고 이들의 역사를 공공화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문화예술과 시민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소셜뮤지엄. 이들이 고령화 사회라는 재난을 풀어가는 방식은 재난의 당사자인 할머니들을 불러와 무언가 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을 주목할 힘을 주는 방식이다. 앞으로 이들이 문화예술로 발견해 나갈 소외되었던 개인의 역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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