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현장] 에이드런,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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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현장] 에이드런,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에이드런, 디자인에 담은 아이들의 이야기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소셜 디자인 브랜드' 에이드런(a'dren)
  • 2020.05.04 12:18
  • by 노윤정 기자
▲ 최재은 에이드런 공동대표. ⓒ라이프인
▲ 최재은 에이드런 공동대표. ⓒ라이프인

 

"야외 수업 때 아이들에게 도화지를 주고 그리고 싶은 걸 그리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공룡을 그렸어요. 그림이 정말 귀여워서 '이거 디자인으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아이가 낙엽을 주워 오더니 그걸 그림 위에 덮듯이 테이프로 붙이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보니까 아이가 '공룡이 춥고 무서워해서 낙엽 속에 꽁꽁 숨겨준 거예요'라고 말했어요."

 

공룡이 춥고 무서운 밤을 보내지 않도록 낙엽을 덮어준 아이의 이야기. 이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낙엽 속 꽁꽁'이라는 이름의 디자인이 되었다. 이처럼 예비 사회적기업 에이드런(a'dren)에서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상상력이 곧 디자인이 되고, 디자인은 핸드백과 에코백, 지갑, 키링 등의 제품이 된다. 이렇게 탄생한 디자인 상품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동시에 또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 에이드런이 '소셜 디자인 브랜드'라고 자칭하는 이유다.

■ 아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선순환'

ⓒ에이드런
ⓒ에이드런

"시작은 보육원 아이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는 취지를 담은 프로젝트였다. 보육원 아이들이 동정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아야 할 존재가 아니고, 충분히 밝고 행복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에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주고 인식 개선의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이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일. 에이드런 최재은 공동대표는 봉사활동으로 시작한 일을 사업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아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서울 소재 한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봉사와 기부를 연계한 펀딩을 준비했다. 2015년 여름 진행한 첫 번째 펀딩은 아이들의 그림을 담은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 해당 수익금을 우간다 아이들에게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사람이 펀딩의 취지에 공감했고, 펀딩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프로젝트의 효과를 확인한 후에는 프로젝트 취지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사업화를 진행했다. 특히 최 대표는 봉사의 개념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업으로 발전시킨 것에 대해 "'확장'을 고려하다 보니까 사업화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보육원 한 곳에서 봉사활동 하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직장인이 봉사활동 하면서 규모를 늘려가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나. 특히 '지속성'을 따져봤을 때도, 아이만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아이를 필요로 하는 모델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에이드런은 사업이 '선순환구조'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초기부터 공을 들였다. 보육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교육 봉사를 진행하고, 아이들의 그림이나 이야기에서 얻은 영감으로 패턴을 만들고 상품화하여 판매한다. 그리고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교육을 진행한 보육원에 기부하고, 남은 수익금은 또 다른 보육원 아이들에게 미술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투자금으로 활용하는 구조다. 이를 최 대표는 "'수익의 일정 비율은 무조건 기부해야 해, 수익이 나면 무조건 (함께 하는 시설을 늘리는 방식으로) 확장해야 해, 우리의 디자인은 아이들을 만나지 않으면 나오지 못해', 이렇게 우리만의 규칙을 정했다"고 표현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자연히 제품을 더 많이 팔고 수익을 더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제품을 많이 팔았을 때 자연스럽게 사회적 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일종의 장치를 만든 것이다. 최 대표는 "제품을 더 많이 만들어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하는 시설을 늘리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첫 번째가 기부, 두 번째가 확장, 세 번째가 더 많은 상품 개발이다"고 밝혔다.

또한 에이드런은 이런 구조를 통해서 '아이가 아이를 돕는다'는 초기의 취지를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든 제품으로 펀딩을 진행하고 그 수익금을 다른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아이들이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돕고 있다'고 보여주진 못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제품으로 수익을 내고, 그걸 다른 시설의 아이들을 위한 미술교육에 사용함으로써 취지를 이어가는 것이다. 최 대표는 향후 다시 봉사와 기부를 연계한 펀딩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 에이드런의 미션, "모든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함께하다"

ⓒ에이드런
ⓒ에이드런

'낙엽 속 꽁꽁', '파도맛', '동굴에 별', '행복한 설탕', '소풍 가는 개미씨'. 저절로 눈길이 갈 만큼 재미있고, 무심코 파도 맛은 무엇일지, 소풍 가는 개미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게 하는 이름들이다. 이처럼 아이들의 이야기로 만든 제품들은 이름에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아이들의 '이야기'로 디자인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을까? 아이들의 '그림'을 디자인으로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지만, '이야기'를 패턴화한다는 발상은 독특하고 신선했다.

에이드런도 처음에는 아이들의 그림만으로 디자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일단 그림만을 활용한 방식으로는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림을 디자인으로 활용하려고 하다 보니, 수업 때 아이들이 그린 결과물만을 보게 됐다. "우리가 아이들과 하고 싶었던 건 함께 놀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 시간을 보내는 것인데, 그냥 그림만 그리는 시간이 된 듯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바와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최 대표는 "아이들이 영감을 주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가장 처음 아이의 이야기를 디자인화했던 작품은 한지 염색 수업 때 나온 이야기로 만든 '차가운 꽃이 핀 것 같아요'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에 대해 알려주고 물감으로 한지를 마음껏 염색하게 하는 수업이었다. 파란색 계열이 차가운 색이란 걸 배운 아이가 한지 위에 파란색 물감이 튀어 점들이 생긴 걸 보고 '차가운 꽃이 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사실 결과물만 보면 그냥 한지에 파란색 물감이 튄 거다. 하지만 아이의 상상력과 이야기가 담김으로써 그림이 더욱 의미 있어 졌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값진 변화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디자인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 아이들과 더 많이 대화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처럼 에이드런이 제공하는 미술수업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보다도 대화와 소통에 더 집중한다. 그렇기에 에이드런이 개발한 30회차 커리큘럼은 미술에 조예가 깊거나 경험이 많은 예술강사가 아니더라도 미술교육 봉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최 대표는 "미술교육 봉사를 3년 정도 했을 때까지도 어찌 보면 주먹구구식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 방식은 지속성이 없다고 판단돼서 자체 커리큘럼을 짜 보기로 했다. 그때까지 쌓은 경험과 전문가 자문을 토대로 30회차 콘텐츠를 만들었고, 거기에 맞춰 교재와 교안도 만들었다. 우리는 기존에 봉사활동의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만들었던 평가 툴(Tool)들을 가지고 있기에 수업 후 체계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도 가능했다"며 "이 콘텐츠가 꽤 잘 짜인 30회차 커리큘럼으로 평가를 받아서, 해당 콘텐츠를 활용한 외부 교육 제안도 많이 받았다. 이를 통해 콘텐츠 사업의 가능성을 봤다. 현재 에이드런 미술교육 사업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그 콘텐츠를 기반으로 강사들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즉, 미술교육 사업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으니 사업화가 된 경우"다.

ⓒ에이드런
ⓒ에이드런

그렇다면 사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최 대표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어떤 언어로 전해야 하는지를 늘 고심한다고 말했다. 자칫 그 안에 시혜적이거나 차별적인 시선이 담기지 않을지 경계하고, 그런 시선을 어떻게 배제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최 대표는 "우리라고 해서 만나는 아이들에 대해 100% 알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어떤 언어와 어떤 톤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해야 할지, 정말 조심스럽고 어렵다"고 고충을 드러냈다. 또한 "사업을 설명할 때도 굳이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라고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냥 '아이들을 위해'라고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보육원 아이들만을 돕기 위해 시작한 활동은 아니었다. 모든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고,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취약한 곳에 있는 아이들부터 돕기 시작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고민과 맥을 같이 하여, 에이드런은 다양한 배경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에이드런의 미션은 바로 '모든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함께하는 것'. 최 대표는 "보육원 아이들을 5년째 만나고 있다. 그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에만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다른 배경의 아이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이주배경가정 아이들이나 한부모 가정 아이들, 사회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내부적으로 머리 맞대며 논의하고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 최 대표는 "어린이들이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실수해도 '괜찮아, 앞으로 안 그러면 돼'라고 말해주는 분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아이들이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지지해주고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분위기가 부족한 사회를 안타까워했다. 에이드런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제품을 통해 세상에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에이드런이 전하는 이야기가 하나씩 모이고 그를 통해 만들어진 변화가 쌓이다 보면, 에이드런이 꿈꾸는 대로 모든 아이가 행복한 세상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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