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왜' 그리고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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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왜' 그리고 '어떻게'
'기본소득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 주제로 국회 토론회 열려
  • 2020.02.10 13:08
  • by 노윤정 기자
▲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기본소득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라이프인

시민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의 현금을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제.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특히 오는 4월 제21대 국회의원선거(총선)가 다가오면서 기본소득제는 정치권에서 주요한 의제 중 하나로 다뤄지고 있다.

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도 '기본소득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날 토론회는 유승희·김세연·채이배 국회의원, 랩(LAB)2050이 주최했으며 이원재 랩2050 대표가 좌장을 맡고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윤형중 랩2050 정책팀장이 주제발표,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서정희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유영성 경기연구원 기본소득연구단 단장·조준상 바른미래연구원 연구위원·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이 토론에 참여해 기본소득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이어갔다.

기본소득제, 왜 필요한가

▲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라이프인

기본소득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빈곤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노동과 삶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점차 높아져 왔다. 우리 사회의 경제 규모 자체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2018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3,400달러를 돌파했으니, 2006년 2만 달러를 돌파한(20,795달러) 이후 12년 만에 3만 달러를 넘긴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소득·기본생활 보장이 중요한 화두다. 특히 점차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이에 따라 '노동 없는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유급노동을 기초로 설계된 현행 사회정책의 사각지대가 점차 넓어지면서, 기본소득은 복지 사각지대를 좁힐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첫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역시 기본소득 논의가 나오게 된 이유를 "<햄릿>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대가 탈구'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존 복지국가의 위기와 약화,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불평등 심화,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 파괴적 기술의 진전과 노동의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안 상임이사는 기본소득이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현실 정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동시에, 그동안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많은 실험과 정치적 캠페인이 이루어졌지만 제대로 실현된 것이 없다는 데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제도로 정착되지 못한 이유를 ▲의미 있는 지지층의 미형성 ▲정책 실현 능력의 결여 혹은 부족 ▲정치 연합의 미형성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했다. 이어 안 상임이사는 기본소득제가 부상한 또 다른 이유를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기본소득이 해결책이 아니라 하나의 징후이자 필요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필요성'에 의해 기본소득 제도화를 위한 정치 연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본소득, 재정적 실현 가능성부터 이야기해야

▲ 윤형중 랩(LAB)2050 정책팀장. ⓒ라이프인

기본소득, 대체 무슨 돈으로 지급할 것인가.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현실적으로 제도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은 결국 재원 조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윤형중 랩2050 정책팀장은 두 번째 주제발표를 통해 바로 이런 재원 확보 문제를 다루었다.

특히 윤 팀장은 기본소득제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접근법을 효율적 재분배(누진적 세제)와 재정환상 해소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봤다. 소득세제의 누진성을 회복해 공적이전소득을 늘리는 동시에, 손익계산기 등의 장치를 이용하여 증세로 만들어지는 혜택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재정환상 감소)이다.

또한 윤 팀장은 우리 사회가 기본소득을 지급할 능력이 되는가 하는 질문에 "지금보다 사회복지 지출규모를 10%가량만 늘려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출 수준은 국내총생산(GDP)의 11.2%로 OECD 회원국 평균(22.0%)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만약 사회복지 지출규모를 OECD 평균만큼 늘린다면, 2018년 GDP(1,893조 원)로 계산했을 때 약 204조 원의 재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모든 국민에게 매월 33만 원씩 지급할 수 있는 액수다. 각 국가가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니 단순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OECD 회원국이 한국보다 큰 사회복지 지출규모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제를 논의할 때 충분히 고려할 만한 선례가 된다.

윤 팀장은 최근 국내외에서 소개된 기본소득 재정 모형을 언급하며 "각자가 생각하는 기본소득 재정 모형안을 가지고 더 나아간 논의로 만드는 것이 기본소득제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일일 것이다"고 말했으며, "논의가 심도 있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 차원의 국가기본소득위원회를 설립하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끝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사회적 공감과 연대가 중요한 이유

▲ '기본소득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 국회 토론회에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서정희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유영성 경기연구원 기본소득연구단 단장, 조준상 바른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라이프인

이어진 토론에서도 기본소득제의 재원 조달 문제를 포함하여 정치적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기본소득이 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법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치 연합의 중요성이 여러 번 강조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는 "정치의 역할은 시대의 보편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운을 떼며 "(보편에 공백이 생긴) 지금 이 시점에서 세대를 구성하는 보편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다양하고 다른 '우리'를 가로지를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공동체 내에서 가부장의 경제력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여성들, 노동할 수 없는 몸이라고 하여 시설에 수용되어 있어야 하는 장애인들 등 다양한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되고 있는 이들을 변화를 만들어낼 주체로서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기본소득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용 대표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선거를 치르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 하여 그것을 비현실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며 기본소득제 역시 신뢰에 기반한 사회적 합의와 연대가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유영성 경기연구원 기본소득연구단 단장 역시 '지지층의 형성과 연합'을 기본소득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포인트로 짚으면서, 청년기본소득과 지역화폐를 연계한 경기도의 사례를 들어 "경기도 기본소득은 청년과 지역 소상공인의 연합을 도모한다. 저변을 넓힐 필요가 있다. 농민이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화폐 결합 방식의 기본소득제는 지지세력을 형성하는 데 의미 있는 전략일 수 있고, 이렇게 영역을 넓혀 나가야 정치적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기본소득 논의는 이제 아이디어의 차원을 넘어 제도권 정치 안에서 실현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단계로 들어선 듯 보인다. '모두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지급한다'는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 관련 논의는 복잡하다. 재정적 실현 가능성을 포함하여 기본소득의 무조건성·보편성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쟁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정책 기능이 약화되어 있고 기본소득이 가져올 효과가 대안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기본소득의 가치와 실현 가능성, 행정적 시행 등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와 실험을 진행하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치적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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