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복지, 기본소득 실험으로 새로운 길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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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복지, 기본소득 실험으로 새로운 길을 열자
LAB2050 이원재 대표 인터뷰
  • 2019.02.21 13:06
  • by 공정경 기자

2019년,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정책실험이 준비 중이다. 청년 기본소득 정책실험이다. 기본소득이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액수의 현금을 조건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별적, 규칙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핀란드가 2017년 1월 최초로 시행했고, 캐나다, 미국,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인도, 브라질, 우간다, 나미비아가 실험 중이다.

서울시는 청년 기본소득 정책실험을 검토 중이다. 조건 없는 청년 기본소득을 전제로 소규모로 우선 지급하고 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을 검토한다. 경기도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청년 기본소득 시행을 준비 중이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만 24세 청년 17만 5천명에게 연 100만원을 분기별로 지급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구직 청년 중 가구소득이 낮은 이들이 대상이다. 고용노동부는 구직활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 동안 지원한다. 역시 구직자와 소득 조건이 걸려 있다. 기본소득은 이런 조건을 모두 거둬내고 보편화, 단순화한 제도다.

민간정책연구소인 LAB2050이 지난 1월 23일 국회 남인순, 김세연, 서형수, 채이배, 기동민 의원과 공동주최한 '대한민국 전환의 전략: 청년수당 2.0 정책실험' 토론회에서 제안한 '청년 기본소득 정책실험'은 이런 기본소득의 조건에 최대한 충실해지려 노력했다.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매월 50만원씩 지급하는 제도를 염두에 두고, 우선 1600명에게 2년간 지급한 뒤 효과를 측정하자는 정책실험 제안을 했다.

LAB2050 이원재 대표를 만나 기본소득이 왜 필요하고,  청년을 대상으로 먼저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가?

보편적인 부분과 '한국 사회에서 왜 지금'이라는 두 가지 맥락으로 설명하겠다. 기술혁신이 가져오는 결과 중 하나는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이다. 또 한 가지 결과는 생산에 투입되는 사람의 노동시간, 즉 '노동량이 줄어든다'이다. 이 두 가지 결과는 반대 결과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결과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이 커졌다는 뜻이다. 적은 노동으로도 많이 생산할 수 있다. 그 결과 노동시간을 유지하면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생산을 많이 늘릴 필요가 없어지면 노동시간이 줄어든다.

자본주의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같은 노동력을 투입해서 결과를 많이 늘려 생계문제를 해결하고자 기술혁신이 필요했다. 옛날에는 생산력이 너무 낮아서 밤낮없이 일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었다. 생산력이 점점 높아지면서 점점 그 단계를 벗어났고 이제는 거의 다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생산력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이 양가적 결과(생산↑, 노동투입↓)에서 인류가 선택할 것이다. 생산을 폭발적으로 늘려서 엄청나게 풍요롭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은 사람과 생산은 이제 충분하니 노동을 줄이고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입장에 있든 같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의 생존과 생계에 관련된 문제다.

자본주의는 생산을 위해 자본과 노동자가 만나는 것에서 시작했다. 자본이 노동자를 고용해서 고용계약에 따라 위계적으로 일을 지시하고, 노동자는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는 대가로 노동을 제공한다. 거기서 나오는 이익은 자본이 갖고 재투자를 통해 자본의 크기를 늘려나갔다. 이게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생산력이 낮았을 때는 어떻게든 일을 시켜야 자본을 축적하고 먹을 게 생겼는데 이제는 생계를 미끼로 노동자에게 노동을 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분들의 논리 안에는 일단 사람들의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보호가 필요한 계층의 최소생계비, 교육, 의료 등 특정 공공서비스는 모든 사람이 최소한 보편적으로 누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많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안 풀린 게 생계에 필요한 소득이다. 생산력이 늘어났기 때문에 생존을 미끼로 인간에게 생산을 억지로 시킬 필요가 없어졌으니 생존까지는 보장하고 그다음에 시작하자가 기본소득의 보편적 정신이다.

- 한국에서 지금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앞에서 말한 변화를 빠르게 겪고 있는 사회다. 고용노동부의 최근 고용동향을 보면 제조업 일자리가 10% 정도 줄었다. 일 년째 제조업 고용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흔히 산업위기라고 말하는데 그 이면을 보면 산업이 그대로 유지되더라도 고용이 줄어드는 측면이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보자. 삼성전자가 몇십조원씩 이익을 내는데 반도체 공장에 가보면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가끔 한 사람이 쓱 지나가면서 점검하는 정도다. 생산과 노동이 많이 괴리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4차 산업혁명에서 보여주는 기술은 이를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 고용이 줄어드는 현상은 한국경제 구조상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1987년 이후 10년 동안 제조업 일자리의 질이 폭발적으로 좋아지고 소득도 엄청나게 늘었다. 그 시기에 사실상 소득주도성장을 했다고 보면 된다. 그 시기에 벌어진 일을 보면, 보통사람들, 즉 일류대학을 나오거나 전문직이 아닌 사람들이 적당히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적당한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다. 취업하면 30년 정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가족도 부양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조업 일자리는 그런 일자리가 아니었다. 굉장히 열악하고 고통스러운 일자리였다.

우리 사회 저변을 구성하고 있는 보통사람들이 농업사회일 때는 농민이었다가 공업·제조업 사회로 넘어오면서 노동자인 사회까지 왔다.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일자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일 년 동안의 고용통계를 보면 제조업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열악해지고 불안정해지고 있다. 사회복지 일자리는 계속 늘어나지만, 그쪽 일자리는 원래부터 열악하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이 살 수 있는 삶의 궤적이 전반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있다. OECD 통계를 보면 저숙련과 고숙련 일자리는 늘어나거나 유지되는 반면 중숙련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OECD 자료를 보면, 중숙련 일자리(빨간색)가 크게 줄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피라미드 상층부에 진입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노력하고 불안한 것도 힘들지만, 보통사람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보통사람들이 살아가기가 힘들어졌다는 게 더 문제다. 이런 사회가 되면, 사람들은 불안정하니까 일단 불안정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하고 사회는 상당히 경직된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아주 작은 기득권이라도 놓지 않으려고 기득권이 없는 사람은 이런 상황을 뚫고 나가려고 싸우게 된다. 갈등상황이 계속 벌어진다.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가 공공부문 정규직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정규직은 불안정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서 어렵게 정규직으로 들어왔는데 '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느냐'라며 반감을 품고, 비정규직은 불안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정규직이 되려고 한다.

- 그래서 청년들은 처음부터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취업하려는 경향이 계속 강해지고 있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폭 늘리겠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서비스는 국민이 필요하니까 제공해야지 일자리 자체가 공공서비스는 아니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자리를 만들어야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서비스를 만들면 안 된다.

임금을 통한 분배가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 분배할 수밖에 없고 그 흐름은 계속 있었다.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는 노동유연화 정책을 펼친 다음 그 보완책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는 노인기초연금을 도입했다 정권에 따라 약간씩 각도는 달라지지만 복지지출은 분명히 올라가는 추세다. 

아동수당도 보편화됐고 기초연금, 근로장려금, 실업급여도 높일 예정이다. 복지국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처럼 전통적 복지국가로 가는 방법이 있고 기본소득같이 보편적 소득지급 방식과 같이 가는 방법도 있다. 이 양쪽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강력한 복지국가들도 기존 복지제도가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핀란드도 새로운 복지제도인 기본소득을 실험하고 있다.

핀란드가 실험한 기본소득은 '실업부조 vs 기본소득'이다. 실업부조를 받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주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하는 실험이었다. 결과는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이 실업부조를 받을 때보다 행복해졌다'이다. 실업부조는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고 구직활동을 했다고 입증해야 한다. 이것을 개선하려고 실험한 것이다. 핀란드 같은 복지국가도 기존 복지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새로운 제도를 실험하는데 나섰다'가 중요하다.

전통적인 복지제도도 불안정을 줄인다. 단 조건부다. 예를 들어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활동을 해야 하고 증빙서류를 내야 한다. 전통적인 복지국가는 (취약계층을 제외하고 보편적으로 이야기할 때) 직장이 있으면 직장에서 복지혜택을 받고 직장에서 나오면 국가가 보장해주는 방식이다. 단, 다시 직장에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게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핵심인데, 이 조건성을 완화하거나 없앨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조건부 복지는 존엄성이 훼손되거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조건에 맞추기 위해 쓸데없는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복지국가인 영국에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주인공이 복지혜택을 받으려는 과정에서 얼마나 존엄성이 훼손되는지 잘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면 조건부 복지제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일자리가 넘칠 때는 취업자 중심의 기존 시스템이 괜찮지만, 일자리가 희소할 때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계속 성장할 때는 노동자가 많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사회가 왔을 때는 고용이 불안정해서 사람들의 삶이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일단 기본소득제도 같은 방식으로 보편적으로 소득을 보장해주고, 그다음에 다른 개혁조치를 취하는 게 훨씬 쉽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미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직장이 있더라도 본래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에게 맞는 일자리로 옮겨가기도 쉽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제조업 고용이 급감하고 있을 때는 일자리를 재배치해야 한다. 재배치할 때 분배를 제대로 안 하면 나라가 폭발할 것이다. 분배를 할 때 유럽같이 고용조건부 급여방식으로 하면 사회적으로 낭비가 많이 생길 거로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생계를 보장해주면 재배치가 훨씬 원활해질 수 있다.

- 청년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정책실험을 제안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이유는?

청년들은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세대다. 그래서 우리 사회도 청년들에게 혁신을 요구한다. 하지만 실제 조사한 결과, 청년들은 굉장히 위축돼 있다. 청년들은 스스로 창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가장 컸다. 삶의 안전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 안전성이 자유를 가져온다. 자유로운 선택을 위해서는 삶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안전성이 보장돼야 청년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혁신도 일어난다. 지금 청년들에게 안정성을 주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경직된 사회로 갈 것이다.
 

LAB2050 조사 결과를 보면, '당신은 창의적입니까?'라는 질문에 20대의 긍정적 응답이 가장 낮고 60대가 가장 높다.
 
LAB2050 조사 결과, 20대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높았다.

일하던 안 하던 조건 없이 모든 사람에게 소득을 보장하자는 게 기본소득이다. 일 안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제도는 이미 많이 있다. 일 안 하는 사람에게 급여를 제공하거나 복지를 제공하는 방식은 유럽에서 많이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작용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책을 펼치려면 입증이 되면서 가야 한다. 그래서 정책실험을 하자고 주장하는 거다. 특정 그룹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충분히 관찰하고 그 내용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토론한 다음 제도의 방향을 잡아나가자는 게 정책실험이다.

청년들은 노동시장 진입기, 경계선에 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면 일을 안 하다가 하는 사례, 일하다가 안 하는 사례, 일하는데 계속 일하는 사례, 일을 안 하는데 계속 안 하는 사례 모두를 볼 수 있다. 여기까지가 과학적 이유이고 사회적 이유를 이야기하면, 청년층은 확실히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풍요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우리는 원래 풍요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빈곤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아주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한다. 독재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많이 민주화됐다고 생각하고 민주화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민주주의 국가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현 사회를 받아들이는 감이 전혀 다르다.

그럼 경제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자동화가 보편화되고 기술혁신이 일상화되는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청년층에게는 기술혁신과 지금의 고용위기 상황이 디폴트다. 그런데 제도는 옛날 제도다. 이 지점에서 불일치가 굉장히 많이 생긴다. 사회가 바뀔 때는 아래부터 밀고 올라가야 바뀐다. 어차피 20대가 30대가 되고 30대가 40대가 된다. 새로운 제도는 위에서부터 시작하기보다 아래에서부터 실험하고 시행하면서 차곡차곡 바꿔나가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 기본소득 지급액은 얼마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한국에서는 50만원부터 시작하는 게 현실적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의 생계급여 수준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개인에게 지급한다. 단독 가구일 때는 50만원이지만 3인 가구면 150만원, 4인 가구면 200만원이다. 어느 정도 생계유지에 도움은 될 거로 생각한다.

재원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이것 먼저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나라 중앙정부지출이 내년이면 500조원이 된다. 1998년에는 얼마였을까?

- 글쎄...

70조원이었다. 2001년 100조원, 2007년 237조원, 2011년 309조원, 2017년 400조원, 2018년 428조원, 2019년 469조원이다.

질문을 바꿔, 5년 후 정부지출은 얼마가 될까? 연평균 7.7%씩 늘릴 예정이다. 7.7%씩 5년이면 40% 가까이 된다. 5년 후 정부지출을 예상해보면 700조원이다. 지금보다 200조원 정도 늘어난다. 늘어나는 정부지출을 어디에 쓸 것이냐의 문제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해서 150조원이라고 치고, 아직 정해져있지 않은 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하느냐를 논의해야 한다.

재정적인 부분은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하지만 조달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유럽도 복지국가를 하면서 증세를 통해 그만한 재원을 마련했고 우리도 최근 20년간 재정을 늘려온 경험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필요하니까 청년 일자리 정책을 늘리자, 제조업 실업자가 늘어나니까 실업급여를 높이자, 노인이 많이 늘어나니까 노인수당을 늘리자, 노인 일자리가 필요하니까 노인 일자리 사업을 하자고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떤 상황에 맞춰 많은 종류의 자잘한 정책들이 많이 늘어나고 대부분 특정 조건이 걸려있을 가능성이 높다. 조건부 복지제도가 많이 늘어나면 행정비용도 그만큼 증가한다.

상황에 따라 주렁주렁 늘리지 말고 소득문제에 관련된 사항은 한꺼번에 통합해서 해결해보자, 가 기본소득을 제안하는 이유다. 지금까지 복지국가는 조건을 부여했고 조건부 복지의 문제는 계속 드러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대로 밟을 필요가 없고, 그 문제를 반복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 기본소득이 시행돼서 생계 문제가 해결되고 실질적 자유가 달성됐을 때, 인간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중요한 질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 질문에 해법을 제시했다. 돈 벌려고 열심히 노력하면 돼, 고용돼서 노동자로 살아가면 돼, 라는 식으로 해법을 줬다.

4차 산업혁명은 풍요의 시대를 가져다줬다. 더 이상 생계를 담보로 노동을 강요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곧 온다. 이런 사회에서 기본소득은 일단 생계 문제를 보편적으로 해결해주고 개인에게 실질적 자유를 주는 게 목적이다.

그 다음 실질적 자유를 얻은 개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게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돈벌이를 억지로 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온다면, 기본소득제 자체가 여기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이건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찾아나가야 한다.

지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면 답이 나올 수 있다. 풍요를 즐기면서도 공동체에 기여하며 이타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놀이에 몰두할 수도 있으며, 학습에 몰두할 수도 있다. 같은 건물주라도 자원봉사에 나서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운동을 하고 춤을 추고 여행을 하며 삶을 즐기는 이들이 있고, 학위를 따고 책을 읽고 공부하며 지내는 이도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할 영역이다.

따라서 실질적 자유가 주어졌을 때 잘 살려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보통 문제해결 능력이라고 하는데 개인이 혼자 그 능력을 갖추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협력과 공동체가 중요하다. 우리 공동체의 목표를 같이 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협력하자고 정하고 그 과정을 같이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생계문제가 해결되어도 여전히 남는 문제는 많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공동체들이 중요하다. 어쩌면 그게 미래의 기업이고, 시민사회이고, 마을공동체이고, 사회적경제조직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질 것이다.

20세기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경제학자이자 정책가,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1930년 <우리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짤막한 에세이를 썼다. 100년 뒤 미래 후손들은 충분히 부유해져서 일주일에 15시간 일하고, 인류는 드디어 탄생 이래 최초로 풍요롭고 지혜롭고 유쾌한 삶을 살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풍요와 지혜와 유쾌, 세 카테고리다.

풍요는 경제적 풍요뿐 아니라 건강 등 생물학적인 삶이 평탄해야 하는 문제를 포함한다. 그래서 돌봄 노동을 늘리고 질을 높여야 하는 이슈가 남아 있다. 지혜는 학습이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취직하기 위해서 목적론적으로 하는 학습이 아니라 학습 자체를 인간의 본질로 본다. 유쾌는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서 즐겁게 사는 것이다. 여전히 케인즈의 이야기 안에 미래 인간 삶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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