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야망'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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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야망'해도 괜찮아!!
[사회적경제, '쨈'있는 인터뷰(2)]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GSEF) 곽은경(로렌스 곽) 사무국장 인터뷰(1)
  • 2017.11.06 17:54
  • by 공정경 기자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나는 한국 사람인데 지금은 프랑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여성들이 생리할 때 격리 수용하나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인도 시골 마을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생리를 시작하면 집에서 쫓겨나 바깥에 격리 수용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다른 집이 있을 리 없고, 숲에 가서 동굴이나 흙바닥에서 노숙하며 며칠씩 보낸다고 한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어려움은 같았다. 큰비가 내리는 장마철에는 비를 피할 데가 없어 빗속을 헤매며 바위 뒤나 큰 나무 밑에서 밤을 지새운다. 겨울에는 밤 기온이 10도 미만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추위에 벌벌 떨며 잠을 청할 수밖에 없다. 밤새 숲속에서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한 그들은 새벽이 되면 집까지 먼 길을 걸어와 가족을 위해 청소와 빨래를 다 해놓고는 다시 일하러 나가야 한다.

달리트 여성들은 뙤약볕 아래 밭일을 하면서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목이 말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면 멀리 지주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물을 마시러 간다. 달리트가 자기 마을이나 집으로 들어오기만 해도 주변이 오염된다고 생각하는 지주들은 물을 얻으러 온 달리트 여성을 보면 구타하거나 벌을 주며 내쫓기가 일쑤인데, 강간,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도대체 이게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란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 중에서 1999년 12월 인도 첫 방문 때

1987년 한국을 떠나 25년 동안 국제연대활동가로 일한 로렌스 곽(곽은경)이 쓴 책 일부다. 로렌스 곽은 1987년 팍스 로마나 국제가톨릭학생운동(IMCS) 세계부회장을 시작으로 2012년 팍스 로마나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ICMICA) 세계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항상 커다란 여행 가방과 터질 듯한 배낭을 둘러매고 출근하는 그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마다가스카르, 남아프리카공화곡,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 인도 등 정치적 불안정 지역, 분쟁지역 100여 개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현지의 참혹한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노력하는 일을 했다. 

비행기에서 기절하길 여러 번, 걷다가 무릎 인대가 저절로 끊어지고 한쪽 고막을 잃고 끊어지는 허리를 부여잡으며 치열히 살아온 그가 2016년 GSEF사무국장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현재 한국 사회적경제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들어보자.
 

GSEF는 지방정부들과 시민이 같이 연대해서 공정한 파트너쉽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국제기구

공정경 기자(이하 공) : GSEF(Global Social Economy Forum)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로렌스 곽 사무국장(이하 곽) : GSEF(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는 사회적연대경제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한 세계 지방정부들과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네트워크다. 2014년 서울시가 주축이 돼서 만든 국제기구다. 포럼이라고 정한 이유는 회원이 주축이 되는 다른 조직들과 달리, 열린 공간에서 사회적경제 실무자들, 연구자 등 여러 주체가 모여서 경험을 나누고 좋은 사례를 보급하고 더 많은 지방정부가 사회적 경제를 주된 경제정책으로 펼칠 수 있도록 변화시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공 : GSEF에 함께 하게 된 동기는?

곽 : 세 가지 혁신에 의미를 뒀다. 2011년 서울시가 청책토론회를 열었다. 사회적경제 현장에서 일하는 주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꾼 새로운 정책이다. 정책을 관이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적경제 주체들과 함께 만들고 함께 집행하고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안은 사회적경제가 150년, 200년 자리 잡은 스페인, 이탈리아, 캐나다 퀘벡 같은 곳에서 보기 힘든 전환이었다. 물론 일부에서 걱정하듯이 관 주도로 시작됐기는 하지만 민관정책협의회라고 정책을 함께 운영하는 거버넌스 시스템까지 만들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면 제가 알기로는 가장 혁신적인 사회적경제 육성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혁신은 대부분 국제기구는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국제조약을 통해서 만들어지거나 현실을 바꾸기 위해 국제시민단체 네트워크들이 만든다. GSEF는 지방정부들과 시민이 같이 연대해서 공정한 파트너쉽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국제기구다.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 번째, 국제기구는 선진국이 주도하고 있는데 선진국에 비교해서 역사라든지 사회복지 면에서 열악한 대한민국에서 주체적으로 제안을 하고 같이 협력해보자고 하는 것은 멋진 야망이다. 사회적 경제로 야망을 펼친다는 생각은 가져볼 만하다. 그래서 GSEF에서 요청이 왔을 때 굉장히 함께 일해보고 싶었다.

공 : GSEF가 2014년에 만들어졌고 올해로 3년째다. 그동안의 성과는?

곽 : 걸음마를 막 떼기 시작한 세 살 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성장이 조금 빠른 아이다. 3년 만에 국제기구로 자리를 잡았다. 기존 UN 기구로부터 국제기구로 인정을 받으면서 사회연대경제가 공공정책의 틀로 가장 적합하다는 보고서도 같이 냈다. UN 19개 기구가 사회적경제 TF를 만들었는데 거기 참관인으로 들어가 있다. 4개 대륙 37개 단체가 회원이다. 애초 창립 정신이 회원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회원 수보다 4개 대륙 담론의 장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회적경제 실천 주체들과 지방정부들이 더 큰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공공정책의 파트너쉽은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그 실천 방법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국제협력과 개발 아젠다도 바꾸자는 논의까지 한다.

공 : 사회적 기업을 돈 먹는 하마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곽 : 사회적경제에 있는 분들은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 있다. 역사도 짧고 시민들 인식도 부족하다. 개념도 생소해서 사회적경제 하면 ‘이게 뭐야? 뭐 하는 경제야? 사회주의를 하자는 경제인가?’라고 한다. 작은 인적구조와 더군다나 경영해본 경험이 없는 분들도 많다.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경쟁 중심적이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 갑질하는 구조라서 중소기업도 살아남기가 어려운 경제 환경이다. 경제 환경 자체도 위험한데 사회적 소명까지 느끼며 작은 인력 규모로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역사적 사명을 하겠다는 결단을 매일매일 하는 건 어렵다. 쉽게 비판하는 분들은 우선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

행정의 비효율성과 단기적 지원이 사회적경제에 가장 큰 걸림돌 

공 : 한국 사회적경제가 발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곽 : 3년까지 지원해주지만, 지원을 일 년 단위로 하는 게 문제다. 1년 단위로 지원을 받으면 사업을 하는데 장기적인 전략이나 비전을 못 만든다는 의미다. 이 혹독한 경제 생태계에서 1년 만에 단기사업으로 결판을 내서 결과를 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1년 단위로 지원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부, 지자체, 시의원, 시민들은 고민해봐야 한다. 장기적인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

담당공무원이 자주 바뀌는 것 또한 보이지 않는 큰 문제다. 부정부패와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 형성을 방지하기 위해 발령을 자주 내는데, 담당자가 길면 일 년 한 번, 보통 두 번, 어떤 경우에는 네 번까지도 바뀐다. 경험과 관계가 축적돼야 파트너쉽도 성장하는데 그렇기는커녕 새로운 담당공무원의 성향과 이해도에 따라 사업 자체가 왔다 갔다 한다. 담당공무원이 바뀌면 처음부터 설명하고 협상하고 겨우 사업이 통과돼서 실행하려고 하면 또 담당자가 바꿔서 ‘이 사업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처음부터 시작해서 하루에도 10통이 넘는 전화를 받는을 때도 있다. 한 명이 하루 종일 똑같은 설명을 10번씩 할 때도 있다.

사업을 해야 하는데 담당공무원이 바뀌면 일단 중지, 다시 다 설명하고 다시 이해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행정의 비효율성이라 느낀다. 순환근무제가 비록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현장에서 경험한 바로는 재정 낭비, 시간 낭비, 비효율적인 파트너 관계다. 30년 동안 국제개발기구에서 일하면서 많은 정부와 일을 해봤지만 이렇게 비효율적인 정부는 처음 본다. 혁신과 변화에 써야 할 에너지와 역량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정의 비효율성과 단기적 지원으로 사회적경제 주체들에게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걸 요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공 : 선진국은 어떻게 하나?

곽 : 사회적경제 담당공무원은 사회적경제 전문가를 고용한다. 사회적경제의 이해 없이 어떻게 사회적경제 실체와 정책을 의논하고 사업을 구상하나. 전문가가 아닌 경우도 있지만 정책결정 예산, 사업을 논의하는 주된 공무원은 전문가들이다. 임명되면 기본이 3~5, 10년 이상씩 일하는 분도 있다. 그러면서 역량과 경험이 쌓인다. 원칙과 비전과 소명도 중요하지만, 어느 사회나 결국 관계를 통해서 해결되는 거다. 사회적경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경제운동인데 그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뭐가 만들어지겠나.

한국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회라 “사회적경제를 모르는 공무원들에게 씨를 뿌린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교육하고 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씨를 뿌린다는 농부의 마음으로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지만, 씨를 뿌려서 싹이 안 틀 수도 있고 그럼 추수는 언제 하나? 난 맨날 씨만 뿌려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현장의 활동가들과 주체들이 너무나 많다. 인간이라서 다 그런 거로 좌절을 한다. 이런 것을 계속해야 하나? 그냥 그만두자.

선진국은 보통 3~5년 계획으로 지원한다. 선정되기 전까지는 복잡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치지만 일단 프로젝트에 동의해서 계약서가 써지면 간섭을 하지 않는다. 예산변경도 예산변경이 왜 필요한지 3개월 전에 공문으로 보내면 그 부분만 사인해서 실행할 수 있고 담당자가 전문가가 대부분이니 전화로 설명하면 이해가 된다. 사업하면서 행정상의 걸림돌로 넘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공 : 현장 상황을 들으니 답답하다. 진짜, 씨만 뿌리다가 추수는 언제 하나.

곽 : 농부도 맨날 씨만 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추수도 해야 신이 나서 다시 그다음해에 씨 뿌릴 준비도 하는 건데. 이런 실질적 시스템의 문제가 사회적경제의 질적 성장에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 GSEF

 
시민이 주체가 돼서 만든 기금 많아져야 질적 성장 이룰 수 있다

공 : 지원금이다 보니 여러 가지 걸림돌이 많다. 질적 성장을 위해 결국 어디로 가야 하나?

곽 : 사회적경제는 시민들이 만든 자율적 조직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민이 주체가 된, 정말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재정 툴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적경제가 질적으로 성장하려면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만든 사회연대기금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캐나다 퀘벡의 사회적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사회연대기금 덕이라 생각한다. 시민들이 만든 기금이 50개가 넘는다. 물론 이런 기금들에 정부가 세제 혜택이나 1:1 매칭 펀드식의 재정 지원을 통해 규모있는 사회적금융제도의 기반을 만들었다. 노조, 정부, 시민과 기업이 만든 혁신적인 기금이 나오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운영방식을 보장, 일절 간섭을 안 한다. 사회연대기금이나 사회적금융은  경쟁 속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지원도구가 되어야 한다. 일일이 비용지출에 발목을 잡으면 어떤 사람이 기업을 하고 싶겠는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개발과 투자를 위한 국제연대'(SIDI)같은 사회연대금융투자사가 그 좋은 예이다. 시민들이 낸 기금으로 운영하는 투자사인데 지난 35년 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 믿을 수 있는 은행, 믿을 수 있는 신용기관을 만들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변화를 위해 일하는 많은 생산자와 소비자 협동조합들과 사회적기업들을 재정적, 기술적으로 지원해주는 일을 했다. 보통 정치적 불안이 높거나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은행에 거래할 신용도 없지만 반대로 은행을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면 은행에 넣은 돈이 독재자에게 흘러 들어가거나 은행이 파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번 돈을 베갯속이나 옷장에 넣어 보관하지 은행에 넣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SIDI가 한창 정치적 분쟁과 불안을 겪고 있는 우간다의 사회적은행인 '센트나리은행'(Centenary Bank)를 만드는 일에 투자했을 때 투자의 위험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이익금이 나지 않아도 신의, 윤리, 공동의 비전, 투명성을 기초로 한 파트너쉽 관계의 형성을 목표로 장기간 투자했다. 그 나라에서는 다른 나라들처럼 단기간내에 투자이익금을 내는 게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역량도 강화해야 하고 시장도 파악해야 하고... 이러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걸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이익금이 나지 않아도 교육, 기술이전, 훈련, 컨설팅에 필요한 3~4년의 시간을 파트너로 함께하고 그들의 사업에 장기간 지분 공유 및 대출을 통한 지원으로 함께 한 노력으로 이 '센트나리은행'(Centenary Bank)은 위험한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명실상부한 사회적 은행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 결과 10년 만에 현재 SIDI는 투자금액보다 배가 넘는 이익금을 거두고 있다. 물론 이 이익금은 또 다른 어려운 개발도상국의 사회적금융조직이나 아프리카 대륙의 소규모 생산 농부들과 노동자들을 위한 농업 금융을 위한 투자 기금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10년 만에 투자에 대한 이익을 거두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프리카에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은행과 금융기관을 만들어 사회연대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게 굉장한 혁신이자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사회적경제가 할 수 있으려면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유,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조건 없이 3년, 5년, 10년을 빌려줄 수 있는 재정 툴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소셜벤처 키우겠다'. 글로 써놓으면 아름다운 얘기다. 하지만 이는 여느 사업보다 더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 활동이다. 그 위험을 정말 같이 감수할 각오가 돼 있는가? 우리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자세가 돼 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진정한 소셜벤처기업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인내하며 위험을 공유하는 파트너쉽의 기본인 신의, 윤리, 공동의 비전, 투명성을 기초로 한 파트너쉽 관계를 만든다는 원칙으로 함께 할 준비가 돼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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