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활동가들, 가슴 뛰는 삶을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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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활동가들, 가슴 뛰는 삶을 사는가?
[사회적경제, '쨈'있는 인터뷰(2)]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GSEF) 곽은경(로렌스 곽) 사무국장 인터뷰(2)
  • 2017.11.08 15:09
  • by 공정경 기자

25년 동안 국제연대활동가로 일한 로렌스 곽은 1987년 팍스 로마나 국제가톨릭학생운동(IMCS) 세계부회장을 시작으로 2012년 팍스 로마나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ICMICA) 세계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항상 커다란 여행 가방과 터질 듯한 배낭을 둘러매고 출근하는 그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마다가스카르, 남아프리카공화곡,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 인도 등 정치적 불안정 지역, 분쟁지역 100여 개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현지의 참혹한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노력하는 일을 했다. 

비행기에서 기절하길 여러 번, 걷다가 무릎 인대가 저절로 끊어지고 한쪽 고막을 잃고 끊어지는 허리를 부여잡으며 치열히 살아온 그가 2016년 GSEF사무국장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사회적경제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경험과 이야기를 들어보자.


공정경 기자(이하 공) :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 책 제목 자체가 가슴을 뛰게 한다.

로렌스 곽 사무국장(이하 곽) : 79학번인데 우리 세대에 광주민주화항쟁은 중요한 기점이었다. 인생과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질문하게 된 전환점이었다. 국제 NGO 연대활동가로 가게 됐던 동기이고, 직업이나 하는 일을 선택할 때 동기이다. 제목이 너무 무겁다는 분들도 있었다. 요즘은 선택하는 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공 : 누구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매번 선택의 갈림길에 있을 때 기준이 되는 중요한 질문이다.

곽 : 이게 멋있어 보일 거 같아서, 조건이 좋아서 등 당위성으로 자기의 미래와 직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전에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 나는 내 가치관에서 타협하지 않는 게 있고 모든 행동과 결정에서 중요한 원칙이 있다. 그것을 해야만 가슴이 뛴다. 물론 타협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타협할 때도 있다. 그러면 자신에게 화가 나고 몸도 아프다. 장시간 일하고 환경이 어려워도,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해야 신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조건보다는 ‘이게 가슴을 뛰게 하는가?’ ‘살고 싶은 삶인가?’가 중요한 질문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얻고 싶은지, 어떤 것에 기여하고 싶은지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 사회적경제에는 그것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이 와야 한다. 그런 마음의 여행, 정신의 여행을 하려는 분들이 와야 한다.

가슴 뛰는 삶을 선택하면 살아왔다...사회적경제 활동가들도 그랬으면

청년활동가들이 가끔 “아니, 사회적경제 조직이 이래도 돼?”라고 말한다. 모든 노동이나 근무조건이 이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그래서 실망하거나 마음의 근육이 약한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사회적경제가 대세이고 유행이고 멋있어 보여서, 인권과 괜찮은 일자리일 것 같아서 오는 게 아니라, ‘바꿔야 할 게 많은데, 나는 바꾸는 그 일이 신난다!’ 하는 사람들이 와야 한다.

공 : 바꾸는 게 신난다...

곽 : 드라마 ‘병원선’에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병원에 투자해주는 기업을 선택할 것인가? 환자를 살리는 수술 방을 열 것인가?’ 병원장이 선택의 갈림길에 있다. 어떤 직업에서라도 하는 일에서 늘 그런 선택이 있다. 선택의 순간에 병원장은 수술 방을 택한다. 기업 총수가 “당신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병원장은 “신나는 일을 하는 거다”라고 답한다. “병원이 문을 닫을 수 있는데 원장으로 신나는 일이야?”라고 반문하자, “의사가 가장 신나는 일은 환자를 살리는 일이다”라고 답한다. 이게 가장 핵심이다. 병원이 문을 닫을지언정, 그 순간에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본 사명에 충실할 때 가장 신이 나게 돼 있다.

공 : 맞다. 본 사명에 충실할 때 가장 신이 난다.

곽 : 사회적경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경제가 무엇을 하기 위한 경제인지, 그것을 하기 위해서 어떤 희생이나 불이익이 있는지 알고 선택한 분들이라면, 그것 자체가 신이 나야 한다. 변화를 만든다는 건 항상 멋있는 게 아니다.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고 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역경과 과제와 불편함이 있다.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자체가 에너지가 되는 사람들이 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시너지가 생긴다. 그런 의미의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



공 : 책에서 보면 “나의 과제는 잘못된 질문을 버리고 이 사회와 나의 현실을 직시한 상태에서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나를 훈련하는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어떤 의미인가.

곽 : 완전히 초창기 아프리카 다닐 때 얘기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치나 도덕적·경험적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1987년 내가 한국을 떠날 당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아니었지만, 가난에서 벗어났고 독재정권이라 해결해야 할 과제와 사회문제가 심각하긴 했지만, 그것을 바꾸려는 변화의 집단이 있었다. 나도 그 변화의 집단에 속해있던 사람이었다. 아프리카는 우리보다 훨씬 문제가 심각하니까, 변화하려는 사람들도 훨씬 더 많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더 가슴이 뛰었다.

당시 만났던 아프리카 대학생들은 상위 1~3%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내전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이런 상황이면 청년들이 매일 데모를 하고 최루탄을 맞고 감옥에 가더라도 싸워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강박관념이 있었다. 막상 갔는데 이 청년들과 대학생들은 저녁마다 음악 틀어놓고 술 마시고 하는데 정말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놀 수 있느냐?”라고 따지듯이 질문했다. 항상 상대방을 질책하고 내 기준과 가치에서 상대방을 평가하는 질문들이었다. 그런 행동과 질문에 대해 반성했다. 그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어디서 이상한 애가 남의 나라에 와서 이해도 못 하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느냐?’ 이런 감정이 안 들겠나. 정말 좋은 얘기를 해줘도 소통이 안 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이 사람들 얘기를 먼저 많이 듣는 게 먼저구나, 이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를 내 눈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시각으로 이해를 하고 공감하는 게 먼저 단계였다. 그러고 나면 질문이 바뀌더라.

누구 편에 설 것인가....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시각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 찾아가...활동가, 자신만의 성공스토리 만들어 가야

‘이렇게 풀어라.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왜 이게 어렵지?’라고 질문하며, 그분들의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가슴으로 공감하고, 그분들의 어려움을 파고들다 보면 바꿔야 할 뿌리 같은 구조적인 문제,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면 되지 않을까하는 실마리가 보인다. 그런 것들부터 다시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 ‘정책’도 그 하나인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문제점을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그들이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도 그들에게서 나온다. 문제 속에는 해결책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게 해결책이라고 생각을 안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관의 관행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어, 이렇게 하면 변화가 되겠네.’라고 생각을 안 하는 경우가 있다.

공동체에 사시면서 조력자이자 리더이자 관찰자로 있는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프리카에 일주일에 온 사람은 책 하나를 쓰고 한 달 와 있는 사람은 기사 하나를 쓰고 일 년이 넘은 사람은 아무것도 못 쓴다.” 굉장한 명언이라 생각한다. 난 외부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해결책 또는 실마리라는 게 확연하게 들어온다. 하지만 그게 정답인지는 검증하고 다시 확인해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쓰레기다. 그 사람들이 공감해서 받아들이고, 자기들의 정보나 지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올바른 태도가 필요하다.

공 :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이나, 피해자를 만날 때마다 매번 힘들지 않나?

곽 : 힘들다. 인권평화운동하면서 피해자들과 제일 많이 한 게, 그분들하고 같이 우는 거였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경험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분들도 많았다. 그런 분들을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나. 같이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다. 그런데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얘기를 듣는 태도나 바라보는 눈에서 상대방도 느낀다. 저 사람이 나를 굉장히 공감해주고 있구나. 통역자가 있고 잠깐 방문해서 인터뷰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짧은 순간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만 공감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도 공감하게 하는 건 중요하다.

정치폭력감시단 활동을 하면서 집단학살사태를 규명해야 하는데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생존자도 없다고 했다. 현장에서 아무것도 본 게 없다고 부정했던 사람들도, 그날 밤 또는 며칠이 지나서 “나는 생존자인데 누가 살해했는지 목격했다”라며 익명으로 연락을 한다. 현장에서 만났을 때 ‘저 사람은 믿어도 되겠구나!’라는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러 마음을 얻으려고 한 적은 없지만, 그게 있었기 때문에 연락을 주는 거다. 왜냐면 잘못 정보를 주면 목숨이 날아가는 경우가 허다하고 자신들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일인데, 누군지도 모르는 외부인에게 어떻게 정보를 주겠나.

이게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세라 생각한다. 이런 관계가 만들어지면 요청을 안 해도 협력자로 나오는 사람들이 생기고 도와줄 수 있는 창구가 생긴다.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사진제공. 로렌스 곽

공 : 국제연대활동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곽 : 변화를 향해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에게는 성공스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자기 자신에게 용기와 확신을 줄 수 있는 성공스토리. 나에게는 정치폭력이 극심했던 1993년부터 넬슨 만델라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 되는 순간을 목도한 정치폭력감시단 활동경험이 중요했다.

같은 팀으로 있던 유럽 사람 중에는 9시부터 5시까지 일하면 자기 일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5시 땡! 하면 저녁 먹으러 가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치폭력감시단이 있을 때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떠나는 그 순간부터 폭력은 발생하고 폭력을 조장하는 세력을 밝혀내는 게 중요한데, 그런 말을 하면 정말 화가 난다. 원래 자세가 나빠서가 아니라 워낙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 살다 보니까, 어떻게 폭력이 조장되는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나눔(회의)을 할 때도 관찰한 내용이 그 밑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경우도 있었다. “현장 방문했을 때 아무도 목격을 하지 못했다 하지 않았느냐? 경찰서장도 생존자는 없다고 했고”, 그러면 내가 “그 말을 믿으세요?”라고 반문한다. 그럼 “안 믿으면 어떡할 건데?”라고 말한다. 이분들이 사는 나라에서는 경찰과 군대는 자기를 지켜주는 좋은 공무원들이기 때문에 경찰서장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건 바로 그 경찰과 군인이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경찰서장이 집단학살 동조자 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기겁을 해서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느냐?”라고 한다. “그럼 지금부터 근거를 찾아야죠” 라고 하면, 나를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생각할 때도 있었다. 같은 팀에서 제일 호흡이 잘 맞았던 독일 정치기자가 있었는데 내가 몇 가지 실마리로 추리하면, 그 친구는 “넌 형사 출신이냐? 너는 질문하거나 사고하는 방식이 꼭 탐정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프리카는 결혼식보다 제사나 장례식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ANC 당원들이 장례식에 모이면 그곳이 집단학살 현장이 된다. 그때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에 ANC 당원들 모이면 또 집단학살이 일어난다. 한두 가지 실마리를 시작으로 중요한 집단학살사태를 규명하고 정치폭력을 조장하는 정치적 배후세력을 밝혀냈다. 그러면서 정치협상 할 때마다 ‘많이 죽일수록 유리해!’라고 생각하는 정치지도자들이, 더 이상 그런 일을 하지 못 하도록 제도적으로 막았다. 운이 좋아서 그 시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ANC 정권교체와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것까지 봤다. 개인적으로는 성공스토리이고 뜻깊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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