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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에서 4월은

지난 4월 3일, 제71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있었다. 이 날 10시에는 제주도 전역에 1분간 추모 묵념 사이렌이 울렸다. 4월 3일 전후에는 나 같은 이주민도 마음으로 눈치챌 수 있는 어떤 긴장과 한숨이 있다. 4월 3일, '그 날'을 의식하지 않거나 아예 잊을 수 있는 제주 사람은 없다. 4월 3일로부터 2, 3주 전에는 마을회, 학교, 정당에서 4·3의 희생자와 뜻을 기리는 현수막을 내건다. 추념식에 누가 오고 무슨 말을 했는지가 도민 사이에선 화제가 된다. 제주4·3이 언급되지 않는 제주의 4월은 불가능하다.

 

올해는 이주민인 나도 제주4·3이 자꾸 의식이 되었다. 제주4·3평화상을 수상한 현기영 작가의 제주와 4·3에 관한 소설들, 사건의 이해를 도울 역사서를 읽었다. 입도 전에는 몇 가지 사실과 상상조차 힘든 비극적 이미지로 제주4·3을 인지했다면, 이제는 제주 사람들에게 끼친 구체적 영향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4·3에 대해 말을 더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말을 줄이게 된다. 사건의 실체는 짐작보다 훨씬 크고 훨씬 길었다. 일부 어느 곳들이 아니라 전체의 섬에서, 모질고 질긴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산을 타고 밤새 걸어 다른 지역으로 도망갈 수도 없는 이 곳, 섬이었기에 비극을 피하기도 어려웠다. 고립되고 통제된 섬의 땅과 바다에서 당시 인구의 1/10로 추정되는 3만 명이 애끓는 사연과 고통 속에서 죽었다. '그 날'로부터 71년이 흘렀지만 과연 이 섬이, 이 섬의 사람들이 '그 날'이 조금씩이라도 희미해져 평범해질 수 있을까 싶다.

 

얄팍한 존재인 사람은 무릇, 알면 알수록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실체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될 경우에는 아는 것은 많이 모른다는 것과 동일한 뜻이 되어버린다. 말을 하면서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은폐되고 왜곡될까 저어하는 마음이 생기고, 희생자, 생존자, 유족들 앞에서 섣부른 말과 감정일까 싶어 말을 아끼게 된다. 역사적 사건 중엔 이런 경우도 있다. 말을 더하기 보다 말을 줄이게 되는 사건들······ 감히 말하기 어려워 그렇기도 하고, 할 말이 너무 많아서도 그렇다. 나 같은 이주민이 전자라면, 생존자와 유족들, 4·3을 겪은 제주도민들은 후자일 것이다.

 

작년 70주년 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석 이후 12년 만이었다. 14분여에 이르는 추념사를 문재인 대통령은 준비한 원고를 거의 내려다 보지 않고 연설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는 제주 도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듯 하다. 작년 추념식 이후 택시 기사들로부터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과 발언들이 다행이라는 취지의 여러 긍정적인 평을 들었다. 대통령이 미안하다 말해줘서 다행이라니, 와줘서 고맙다니······ 제주도민들이 4·3에 대해 국가가 해주길 바라는 것들은 오랜 기간 기대가 없었던 이유에서인지 겨우 제주에 와서 사과하는 것이다.

 

제주 할망들의 "살암시믄 살아진다"라는 말이 있다. 어찌 살아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떻게 살다 보니 살아졌다는 말이다. 또, 4·3이 있는 한 제주의 봄은 없다고도 한다. 한창 아름다운 제주의 봄은 4·3이 기억되는 한 결코 아름답지도 좋은 시절도 아니라는 뜻이다. 강간, 살인, 참수, 약탈, 오욕, 총살의 무자비한 시절을 겨우 건너온 사람들과 그 기억을 봄에 묻은 섬이 여기 있다.

 

4ㆍ3 평화공원 내 희생자들의 이름과 나이가 마을별로 적힌 각명비. (사진출처: VISIT JEJU)

 

"모슬포에 가면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는 공동묘지가 있다. 왜놈들이 탄약고로 쓰던 콘크리트 땅굴 속에 백몇십구의 시신이 가득 담겨져 있었는데 칠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이장 허가를 받은 가족들이 몰려들었을 때는 멸치젓처럼 푹 썩어 육탈된 뼈들이 네 거 내 거 구분할 수 없게 얼크러져 있었다. 네 뼈다 내 뼈다 부질 없이 다투던 유족들은 결국 저 조상들은 네 거 내 거 구별할 수 없으니 우리 모두 하나의 자손이 되어 섬기자고 의견의 일치를 본 다음 얼크러진 뼈들을 주워 맞춰 사람 형상을 만들고 일일이 봉분을 갖춰 매장했으니 그 공동묘지가 백조일손지지다. 백조일손, 그 얼마나 좋은 말인가. 아무렴, 4·3 조상은 그렇게 모셔야지. 내 조상 네 조상 구별 말고 섬 백성이 모두 한 자손이 되어 모셔야 옳았다. 4·3을 모르고 무슨 사업을 하고 무슨 학문을 하고 무슨 인생을 논하나. 그 모두 다 헛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나같이 천한 심방놈이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벌이는 원혼굿이 도대체 무슨 효험이 있겠는가. 한날한시에 죽은 원혼을 진혼하려면 온 마음 사람들이, 아니 온 섬 백성이 한 자손 되어 한날한시에 합동으로 공개적으로 큰굿을 벌여야 옳다. 바람길 따라 구름길 따라 무리 지어 흐르는 수만의 군병들, 전대미문의 가장 억울한 죽음이기에 가장 영험 있는 조상신으로서 우리를 보우해줄 것이다. 어허, 백조일손, 얼마나 좋은 말인가. 덩지덩지 덩덩 덩더꿍."(현기영, 목마른 신들 중에서)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최윤정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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