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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귤의 섬, 귤의 계절

요즘 제주는 노지 귤 수확이 한창이다. 중산간 마을을 오가다 보면 가지가 무거운 귤나무들을 볼 수 있다. 농원 옆으로 여러 차량이 서있는 곳은 지금 귤을 터는 곳이다. 농협 선과장에는 각을 맞춰 쌓은 귤상자들이 높기만 하다. 마트에도 택배송장이 붙은 귤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여기는 귤의 섬, 지금은 귤의 계절인 것이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과도한 호기심과 의욕으로 귤들을 계통적으로 정리하여 잘 알고 싶다는 목표를 가졌었다. 모양이 조금씩 다른 귤이나 한라봉, 천혜향, 청견 등을 만날 때마다 나름 교잡된 품종을 조사하고 열심히 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감귤의 계통은 거의 성경 창세기에 준하는 복잡함이었다. 이를 테면, 탱자와 궁천조생을 교잡하여 흥진조생을 만들었는데, 이 흥진조생을 궁천조생과 트로비타 오렌지를 교잡한 청견과 다시 교잡하여 진지향을 만들고, 이 진지향을 다시 위와 비슷한 수순을 밟은 다른 감귤류와 또 교접하는 식이다. 게다가 각각의 변이종과 생산국까지 고려하면 이건 일반인이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품종은 그렇다 치고 실제 모양이나 맛으로만 감귤들을 구분하기도 쉽지는 않다. 감귤 농민에게 개중에 유명한 예닐곱 가지는 구분할 수 있냐 물으니 ‘직접 재배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걸 왜 구분하고 앉아 있냐며 결국엔 한 소리 들었다. 감귤은 계통을 알고 먹는 것이 아니라 그 해 풍작이거나 새로이 농가에 보급되어 밀고 있는 신품종을 먹으면 된단다. 복잡한 계통 따지다 얻은 홀가분한 결론이었다.

 

비 오는 날 서귀포 회수리의 골목, 주렁주렁 매달린 귤들이 담을 넘어 땅에 떨어지고 있다.

 

감귤 족보에 이어 감귤의 흔함 또한 놀라웠다. 제주에서 공짜로 얻은 최초의 귤은 편의점에서였다. 맥주를 샀더니 안주하라며 귤을 같이 담아 주었다. 시골인심 운운하지 마시라. 그 편의점은 제주의 강남이라 일컫는 신제주의 고층 레지던스 아파트 1층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단골이어서 특별히 준 것도 아니었다. 이미 라면 코너 온수통 옆에도 귤이 소복이 놓여 있었다. 

귤철이 되면 제주의 시골식당에는 울퉁불퉁한 귤들이 담긴 노란 플라스틱 컨테이너가 종종 등장한다. 대개 계산대나 커피자판기 옆에 놓여 있고 손님들이 자유로이 귤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 언젠가는 관공서 로비 입구에서도 예의 귤 담긴 노란 컨테이너를 본 적이 있다. 짐작하건대 볼 일을 보러 왔던 농민이 두었거나 감귤 농가의 공무원이 가져다 둔 것이 아닐까 한다. 무인판매대도 심심치 않게 있다. 봉지나 망에 담겨 있는 귤을 복주머니나 곽티슈를 개조한 돈통에 1, 2천원을 넣고 가져가면 된다. 요즘은 올레길 인심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올레길을 걷다가도 종종 귤을 얻었고 급기야 나는 한라봉을 받은 적도 있다. 

 

얻어 먹다 보니 접시에 놓인 귤들이 모두 조금씩 다르다.

 

마을 골목을 누비다 보면 상당한 수의 귤나무들을 아예 집 마당에 들인 경우도 보게 된다. 작게는 몇 십 그루부터 많게는 2, 3백 그루까지. 주요 수입원인 농사품목을 집 마당에서 상당한 규모로 키우고 수확하는 풍경을 나는 제주에서 처음 봤다. 그런 집에는 대개 할아버지와 할머니, 혹은 할머니 혼자만 사신다.

 

제주시 대흘리의 귤나무 가득한 집, 이렇게 귤나무를 마당에서 키우는 집들도 많다.

 

제주에 오기 전, 귤에 대해 아는 거라곤 제주가 원산지이고 겨울이 제철 정도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역시, 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제주의 곳곳에서 귤을 만나면서 결이 다양한 귤의 이야기와 심상을 갖게 되었다. 봄이 오면 하얀 귤꽃을 피워 올리고, 콩알 같은 귤알이 맺혀 점점 굵어지는 귤의 생장을 귤밭에서 보았다. 마을 안 옛집에서 귤을 볼 때는 그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나무를 보살폈을 사람들의 모습까지 함께 떠올리곤 한다. 귤은 제주에서 복잡다단한 계통을 가진 긴 역사였고, 밭은 물론 길, 식당, 가게, 마당 등 여기저기에서 사람들과 함께였다. 이제 나에게 귤은 그저 새콤달콤한 맛이 아니라 여러 이야기를 품은 깊은 맛이 된 것 같다. 귤의 섬, 제주에 와서 말이다.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최윤정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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