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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지금 가도 되나요?

때는 3월 초, 올레길 21코스의 최대 고비인 지미봉을 내려와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도착한 식당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식당 문 앞에 붙은 작은 메모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4월 30일까지 조금 긴 휴식을 갖습니다. 더 많이 공부해서 5월 1일에 돌아오겠습니다." 공부해서 오겠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하랴 싶으면서도 이 메모가 낯설어 웃음이 났다. 식당은 문 닫는 일이 드문, 상시 운영이 통념 아니었던가 해서 말이다.

 

비수기인 겨울부터 초봄까지 휴식기간을 갖는 식당들이 많다.

 

제주의 식당은 전체적으로 영업시간이 짧다. 점심에 임박하여 문을 열고, 밤 8, 9시 정도에는 영업을 정리하거나 종료한다. 물론, 시내와 시외, 성수기와 비수기, 상권의 특수성에 따라 차이는 있다. 그러나, 아침 일찍 문을 열거나 밤 늦게까지 영업하는 곳은 아주 드물다. 시내 중심상권이거나 성수기 해수욕장 인근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주 유명한 식당이라도 대개 밤 9시 정도면 마감을 한다. 

또한, 제주의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이 꽤나 일반적이다. 오후 2, 3시부터 5시 정도까지는 손님을 받지 않고 때로는 문을 잠근 채 아예 식당을 비우기도 한다. 제주에 처음 왔을 때는 올레길을 열심히 다녔던 터라 점심때를 놓치기라도 하면 배를 곯기 일쑤였다. 시내에서는 그래도 여러 선택지가 있지만 올레길이나 오름을 걷다가 브레이크 타임을 만나면 정말 난감하다.

제주의 식당 문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임의적인 영업종료와 휴업이다. 영업일과 영업시간을 인터넷에서 확인하는 것 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식당을 방문하기 전에 영업 여부, 메뉴 여부 등을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 '재료가 소진되어 일찍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을 맞닥뜨리거나 집안 대소사나 개인적인 볼일로 문을 일찍 닫거나 임시휴무인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귤 수확기라 개점시간보다 늦게 문을 열거나 아예 가게를 비우는 경우가 많다. 비수기인 겨울이 다가올수록 '배우기 위해', '여행하기 위해’, ‘쉬기 위해’ 언제까지 휴업한다는 식당 앞 안내문들이 늘어난다.

 

11, 12월에는 “밭일 중”, “귤 따는 중”이라는 안내문을 붙인 가게가 많다.

 

성수기와 비수기의 손님 수 차이가 큰 제주에서 항시 동일한 영업시간과 영업일을 유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해당 지역의 고정손님보다 여행객들이 주요 손님인 식당들은 언제, 얼마나 올 지 모르는 손님들을 위해 식재료를 넘치게 보유하는 일이 쉽지 않다. 식재료가 적시에 소진되지 않으면 오래된 재료로 만든 요리를 손님에게 제공하거나 아예 폐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는 손님을 대비해 재고를 많이 가져가는 것과 영업 여부를 전화 확인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사회적 비용이 덜 할까. 각 주체의 비용과 수고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재료 소진으로 인한 영업 종료가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다. 물론, 여행객들의 혼란과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내 요령껏 적응한다. 다시는 헛걸음하지 않기 위해 말이다.

나 역시, 오후 2시가 넘어 식당 문을 열 때는 조심스럽다. 3시 가까이 앉아 있게 되면 주인에게 더 머물러도 괜찮은지 물어본다. 가끔은 밤 늦게까지 식당에 앉아 이야기 하고 싶을 때도 있긴 있다. 그러나 식당의 주인과 종업원도 누군가의 가족이니, 함께 늦은 저녁을 먹거나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손님은 늦지 않게 떠나고 식당은 적절하게 마감하는 것이 (매출이나 경영 면에서 따져볼 것이야 많겠지만) 일과 삶의 균형에서 유익하다. 제주에 살면서부터는 일주일 내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급기야 24시간 풀가동 되는 도시의 식당들이 그다지 당연하게 보이지 않는다. 상시 운영의 통념이 흔들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최윤정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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