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라이프] 지역에서 주체적으로 살기 "깨지면서 '세계의 확장' 일어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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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村라이프] 지역에서 주체적으로 살기 "깨지면서 '세계의 확장' 일어나죠"
김신애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인터뷰
2024년 폐광 앞둔 태백, "어떻게 이 지역에서 계속 잘 살 수 있을까?"
  • 2023.08.07 10:58
  • by 노윤정 기자

'한 달 살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유행한 지도 한참이다. 그만큼 대도시가 아닌 비수도권, 농촌에서의 삶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적지 않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생계 수단, 소위 '먹고사니즘'의 문제를 비롯하여, 과연 지역에서 나의 삶을 잘 꾸릴 수 있을지 여러 방면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렇기에 귀농·귀촌에 관심 있는 청년들은 지역을 일단 '경험'해 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민간에서 관계인구 유입을 위한 다양한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혹은 외지 청년들과 마을 주민들의 협업 방식으로 지역을 경험하도록 돕는 조직·기관들이 있다. 라이프인은 지역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고 지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곳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광광프로듀스'에서 기획한 '지지리댕댕 고원투어' 당시 모습. 지지리댕댕 고원투어는 강아지와 함께 폐광산 흔적이 남아 있는 트레킹 길을 걷는 프로그램이다.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 '광광프로듀스'에서 기획한 '지지리댕댕 고원투어' 당시 모습. 지지리댕댕 고원투어는 강아지와 함께 폐광산 흔적이 남아 있는 트레킹 길을 걷는 프로그램이다.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비수도권 지역에서 인구가 감소하는 '소멸 위기' 문제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을 이야기하며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민간에서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로, 수도권으로, 서울로 향한다. 그런데 살던 곳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 중 이런 질문을 던져 본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나에게 잘 맞는 지역은 어디일까?"

탄탄마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의 김신애 이사장은 대학 진학과 취업 과정을 거치며 고향인 태백을 떠났다. 다시 태백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 2017년. 김 이사장은 ㈜널티를 설립하고, 이후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을 거점으로 지역에서 사람들과 다양한 실험을 해 오고 있다.

널티 설립 이듬해, 김 이사장은 폐광지의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인 무브노드(MOVE NODE)를 열었다. 지난해에는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청년마을 '광광스토리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빛 광(光), 광산의 광(鑛)을 조합하여 이름 붙인 이 청년마을에서는 광산 지역이라는 지역 특색을 살린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김 이사장은 광광스토리지 사업에 참여한 청년들, 장성주민협의체 위원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조합은 지난해 10월 장성탄탄마을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에 따라 국토교통부 인가를 받았으며,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도 지역인 장성동에서 도시재생 사업 효과를 마을에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2024년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폐광이 결정되면서 태백 내 마지막 국영 탄광이 문을 닫는다. 이에 따라 지역이 더욱 침체될 것을 염려하는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 그 안에서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은 태백에서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지도에는 없는 마을' 탄탄마을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김 이사장을 만나 태백에서 놀고 일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 탄탄마을의 'DIT"(Do It Together) 프로젝트 참여자들 모습.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 탄탄마을의 'DIT"(Do It Together) 프로젝트 참여자들 모습.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탄탄마을을 '지도에는 없는 사람 중심의 마을'이라고 표현했는데, 사람들을 모으고 마을을 구성하는 구심점이 되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살 수 있도록 전문성의 성장,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수색, 그리고 커뮤니티 형성에 집중해 왔다. 활동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최근 6개월 사이 마을 내부에서 요리, 교육, 예술과 같은 요소들로 커뮤니티를 시작했다.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비즈니스나 프로젝트 요소를 발굴해서 수익 모델을 만들고, 그 수익이 마을 안에서 순환되는 형태로 만들어 가고 있다.

무브노드를 운영할 때는 외지 청년들과 교류하면서 지역에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지역 안에서 주민들과 만나려는 시도에 조금 더 방점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탄탄마을 안에는 다양한 주체들이 있다. 여전히 외지 청년들도 있고, 현지 청년도 있고, 외지에서 왔다가 정착한 청년들도 있다. 청소년, 마을 어르신들도 당연히 마을을 이루는 구성원이다. 지금은 그들과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길을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온 것 같다. 사람들이 지역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만드는 요소, 우리는 그것을 주체성과 전문성에서 찾고 있다. 지역에서 산다는 것은 본인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경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단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지역에서 전문성을 갖고 해 나가야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다들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히 자신의 전문성을 기를 수 있다. 그 방법을 찾아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탄탄마을을 만들면서 우리가 지역에서 해야 할 일로 정리한 내용은 현재까지 이 정도다. 어찌 보면 탄탄마을이 무브노드의 확장판 같기도 하다.
 

▲ 청년마을 '광광스토리지' 단체 사진.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 청년마을 '광광스토리지' 단체 사진.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광광스토리지에서 운영한 '광산프로듀스' 프로그램을 보면 1기부터 3기까지 협업 편, 공간 편, 여행 편 등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협업, 공간, 여행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협업 편의 경우, 코워킹 스페이스를 오래 운영하면서 사업을 확장하거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렸을 때 타인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했다. 그래서 협업 편은 외지 청년들뿐 아니라 현지 청년들도 다수 포함되도록 구성했다. 그렇게 현지 청년과 외지 청년이 만나고, 현지 청년과 현지 청년, 외지 청년과 외지 청년이 만나도록 했다. 계속 타인과 만나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세계의 파괴를 경험하고, 타인과 일하고 대화하는 방식에 대해 알기를 바랐다.
공간 편은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현지 청년과 외지 청년이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은 많이 다르다. 나도 태백으로 돌아온 지 6~7년 정도 되다 보니 이 지역이 굉장히 익숙해졌다. 그래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태백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주는 피드백이 이 지역에서 문화 기획을 하고 프로젝트를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여행 편은 상대적으로 조금 가벼운 프로젝트로서, 여행자들이 지역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업을 구상하고 운영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최근 자주 하는 생각은 사람은 타인과 맞닿을 때 '확장'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각자의 세계는 고정되어 있고, 그 안에 타인들이 들어옴으로써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고립된 지역일수록 그런 경험의 기회가 적다. 우리는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이나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세계를 확장하고, 우리가 가진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달함으로써 그것들이 확대되는 경험을 쌓고 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운영할 때도 구성원들이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중요한 요소로 둔다.

소설 '데미안'에도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세계의 확장'이라니, 굉장히 멋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동시에 추상적이기도 하다. '세계의 확장'이 실제 사업 현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청년마을 안에서는 개개인이 새로운 장소, 새로운 만남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넓혀 가는 방식으로 '세계의 확장'을 이루는 듯하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의 세계의 확장, 즉 '나의 세계가 깨지는 경험'을 통해 세계의 확장을 이루어 가고 있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신뢰의 깊이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깨진다'는 것은 신뢰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니까. 우리 조직은 굉장히 많이 싸운다.(웃음) 서로 의견이 달랐을 때 다툼, 균열, 깨짐이 생기지 않나.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말들을 주고받게 되는데, 우리는 설득의 방식이 아직 어설프므로 많이 싸운다. 그런데 신뢰가 기반이 되어 있으므로 이 균열과 파괴가 나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도록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 부분을 내재화하기 위해 굉장히 오래 작업했다. 말하는 방식이 어설퍼도 괜찮으니까 계속 대화하도록 독려하고,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말을 고도화하고 다듬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주체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역에서 재미있게 살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 탄탄마을처럼 규모가 작고 외부와 교류가 많지 않은 지역은 자기를 표현하기가 어렵다. 단적으로 설명하자면, 마을 사람들이 한 다리만 건너도 모두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야기를 할 때 늘 조심하게 되고, 자기감정이나 생각을 삼키는 경우가 생긴다. 그게 사람을 병들게 할 때도 있다. 또, 그렇게 쌓아 두다 보면 더 가시 돋친 말들로 나올 때도 있지 않나. 그래서 자기표현, 주체성 이런 것들을 더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탄마을은 태백시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되어 있는 곳이다 보니 물리적인 공간에 관한 사업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마을 안의 '내용'을 채우는 사업이 많은 듯하다.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 지역에서 하는 역할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나?

내년에 장성광업소가 폐광된다. 장성군은 광산과 굉장히 가까운 지역이고, 아직도 광부로 활동하고 주민들이 많다. 그래서 주민들이 폐광 결정에 불안해하기도 한다. 나도 한 5년 정도는 불안했던 것 같다. '광산이 없어져도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나?' 이런 불안감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불안감을 없애고, 폐광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광광스토리지 사업을 보면 광산이 있는 태백의 지역적 특색을 살려서 콘텐츠를 개발하기도 했는데, 폐광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도 있겠다.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이미 사라져야 했던 것을 우리 지역이 붙잡아 온 것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어찌 보면 기존의 것이 사라짐에 따라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지역 주민들이 불안함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해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아쉽고 어떤 면에서는 후련하기도 하다.
 

▲ '기억을모으는미술관 아트-티'. 아트-티는 태백시와 널티의 협업으로 조성하여 지난 2018년 개관했다.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 '기억을모으는미술관 아트-티'. 아트-티는 태백시와 널티의 협업으로 조성하여 지난 2018년 개관했다.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외지 청년, 마을 주민 모두와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는데, 그들이 지역에서 잘살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끼는 공통적인 니즈가 있다면?

지지자가 필요하다. 지지자란 존재는 말 그대로 나를 지지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나의 말을 번역해 주고 상대의 말을 번역해 나에게 전달해 주는 사람으로도 볼 수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사람들이 '촘촘하게' 있지 않나. 그런데 태백 같은 지역은 사람들이 너무 띄엄띄엄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지역에서는 80대 미술작가 다음 세대가 50대 미술작가고, 그다음 세대는 20대 미술작가다. 중간에 매개해 줄 수 있는 세대,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도 그 점이 힘들었다. 왜 저렇게 이야기할까 싶었다. 나와 그의 거리가 너무 멀다 보니 그의 삶과 경험에 공감하기가 어렵고, 그렇기에 그의 말이 더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었다.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지지자의 역할을 하고 싶다.

태백을 경험하고자 오는 사람들에게 태백은 어떤 지역으로 인식될까?

일단, 고립된 지역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태백은 산세가 험준하고 높은 산이 지척에 있는 곳이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야만 하늘이 보인다. 이런 지형적 요인이 '고립된 지역'이라는 인식을 주고, 그 인식에서 비롯한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겠다. 최근에 마음에 드는 표현을 하나 들은 적이 있다. 2년 정도 태백에서 살아보겠다고 완주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완주는 엄청 산뜻하고 상큼해요. 그런데 태백은 우울하고 흐려요'라고 말하더라.(웃음) 그래서 '그런데 왜 여기에 왔냐'고 물었더니 우울하고 흐린 감성이 자기와 잘 맞는다고 하더라. 그 말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서울로 가고자 하는데 자기와 잘 맞는 곳을 찾아서 그곳에서 사는 것도 삶의 한 방법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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