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문(門)’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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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문(門)’여나?
[강찬호의 위험사회 아웃(10)]문재인 대통령, 가습기살균제 사고 적정수준 사과 등 검토 지시...가피모와 가습기넷, 청와대 앞 퍼포먼스 진행하며 정부 사과 촉구
  • 2017.06.07 15:24
  • by 강찬호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청와대 앞 분수대로 가는 길이 막혔다가, 상황 조율이 되어 피해자 5명이 분수대 앞으로 향했다.

6월5일 하루는 긴박했다. 그리고 극적인 하루였다. 이날은 유엔(UN)이 정한 '환경의날'이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이하 가피모)와 환경보건시민센터,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이하 가습기넷)은 문재인 대통령이 환경의날을 맞이하여,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사과 메시지를 내달라고 요구해왔다. 결론적으로 사과 메시지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적정 수준의 사과를 검토하라’는 ‘지시’가 발표됐다. 이는 대통령의 사과가 임박했다고 하는 공식 메시지이고, 사전 약속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의 지시가 나오게 된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극적으로(?) 나온 메시지여서 무척 반가웠다.

6월5일 하루는 이랬다. 가피모와 가습기넷은 오전 10시 청와대 앞 분수대로 향했다. 분수대 앞에서 피해자들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읽는 방식으로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그런데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오전 9시30분경 경복궁역에서 나와 청운동 주민센터 앞까지 서둘러 걸었다. 경복궁역에 도착할 즈음 아는 기자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분수대 앞 기자회견은 어렵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가습기넷 관계자도 ‘청운동 주민센터에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하는 반응도 나왔다. ‘분수대 앞이 어려우면 주민센터 앞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바쁘게 현장으로 걸었다. 해당 기자에게는 주민센터 앞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답변했다. 주민센터 앞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뉴타운 대책위 주민들이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찰병력이 청와대로 향하는 방향은 막고 있었다. 가습기넷 관계자들과 취재진은 청와대 분수대 앞으로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동시에 청와대 분수대 앞에는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과 가습기넷 활동가, 피해자 등 4~5명이 가 있었다. ‘왜 기자회견을 못하냐’며, 언쟁을 하고 조율하고 있었다. 주민센터에서 개별적으로 분수대 앞으로 넘어오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있고 경찰이 막고 있는 상황에서 이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무리한 행동으로 정부에 부담을 주거나, 여론의 눈치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부 가습기넷 관계자들도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하는 눈치였다.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은 허용되지 않았다. 10시에 예정된 기자회견이 늦춰지면서 분수대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던 피해자와 가습기넷 활동가들이 항의행동을 진행했다.

어떻게 결정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시간은 벌써 20여분 흘렀고, 취재진도 무한정 대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분수대 앞에서는 계속 상황을 조율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연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면서, ‘그렇다면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센터에서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분수대 앞에서는 기자회견이 불가능하니 항의를 하든, 일인시위를 하든, 편지를 읽든 다른 방식을 선택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주민센터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기자회견을 진행할 준비를 했다. 마침 기자회견장 옆에는 다른 팀이 노숙 농성을 하고 있어, ‘농성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래저래 난처하고 곤궁한 상황이 이어졌다. 새 정부가 들어서서 많은 기대를 했는데, 혹시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홀대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과 우려도 마음 한 구석에서 솟아났다. ‘설마 그렇지는 않을 거야’ 위로를 하면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고 준비했다.

그런데 분수대 앞으로 간 가습기넷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급히 연락해왔다. ‘곧 조율이 될 것이니, 기다려 달라’는 요구였다. 시간은 흐르는데 난처했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또 다시 10분 이상이 정처 없이 흘렀다. 당초 약속했던 기자회견 시간은 10시였다. 시간은 훌쩍 10시 30분을 지났다. 분수대 앞 최 처장으로부터 3,4번의 통화가 이어졌다. 대기에 대기를 이어가다, 결국 조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허용한 적이 없으니,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진행방식을 변경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기자회견이 아닌 편지만 낭독하는 것으로 했다. 주민센터 앞에서는 활동가들을 제외하고 피해자들 5명만 경찰 경계선을 넘어 분수대로 가기로 했다. 참 어렵게 결정이 났다. 긴박했던 30여분의 시간이었다. 입고 있던 항의행동 조끼를 벗고, 피켓 등 기자회견 용품을 두고 몸만 이동했다. 함께 이동하지 못하는 활동가들에게 조금은 미안했고, ‘이게 뭐냐’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이 나마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 5명은 청와대 분수대로 향해 걸었다. 손에는 ‘문재인 대통령님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담은 봉투를 정면으로 향해 들었다. 취재진들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일행은 분수대로 이동해 나머지 일행과 만났다.

30여분 실랑이 끝에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피해자들의 편지글을 낭독했다.

최예용 소장은 검은 양복을 갖춰 입고 현장에 나왔다. ‘소비자와 함께’ 문은숙 공동대표도 있었다. 피해자 두 명과 최준호 처장이 있었다. 최 소장이 양복을 입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가피모와 가습기넷은 당초에 기자회견을 전제로 약속했던 퍼포먼스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피해자를 안아주는 모습을 퍼포먼스로 구현하기로 했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기자회견의 목적이었고, 환경의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가 나오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날 기대했던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지 않는다면, 예정대로 문재인 대통령 얼굴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로 했다. 최 소장이 문재인 대통령 역할을 맡기로 했다. 분수대로 이동하면서 기자회견 용품을 가지고 이동할 수 없었는데, 문재인 대통령 ‘얼굴가면’만 가방에 몰래 챙겨 넣고 통과할 수 있었다. 분수대 앞 행사는 기자회견이 아닌 ‘문화행사’ 성격으로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최예용 소장은 기자회견이 아닌 ‘문화행사’라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문화행사로 진행하는 것은 사전에 조율된 결과였지만, 우리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아쉬운 부분이었다. 최 소장이 힘주어 ‘문.화.행.사’라고 외친 것은 그런 배경 때문이다. 마이크도 사용할 수 없어 육성으로 진행했다. 분수대 앞 곳곳에는 일인시위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청와대 앞은 기자회견이나 집회가 대통령 경호상 등의 이유로 허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가피모와 가습기넷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러 측면에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일부 언론보도에서 분수대 앞 기자회견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터에 ‘분수대 앞 기자회견’을 장소로 잡고 취재진에게 안내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 내지 오판이었고 사전에 청와대 측과 협의되지 않은 사안이었다. 어렵게 분수대 앞에서 ‘문화행사’로 진행된 경위이다.

이어 우리 일행은 아쉬운 가운데 편지글을 낭독하는 순서를 진행했다. 청와대와 분수대를 배경으로 나란해 서서 편지글을 읽었다. 방송사 카메라와 취재진이 우리 맞은편에서 취재했다. 피해자들의 편지글은 보도자료로 작성되어 현장에서 배포되었다. 다섯명의 피해자들이 편지글을 한편씩 읽었다. 자신의 편지글을 직접 들고 나온 경우는 이재성씨의 경우였다. 이씨는 여러 증상과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 당사자였다. 다른 피해자들이 쓴 편지는 당사자가 직접 참석하지 못해 참석한 피해자들이 대독했다. 그 중 대구에 사는 권민정씨의 편지글은 이미 경향신문 6월1일자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세상은 묻습니다. 왜 엄마인 당신은 살아 숨 쉬냐고’라는 제목으로 편지글 원본이 공개되었다. 권씨는 가습기살균제로 뱃속에 있는 태아를 잃었고, 이어 다시 임신해서 출산했지만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또 다시 아이를 잃었다. 정부는 올해 태아의 경우 피해를 인정한다고 새로운 판정기준을 발표했다. 그러나 권씨는 해당되지 않았다. 정부의 인정기준은 태아가 사망이더라도 엄마가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을 경우에 한정하고 있다. 즉 현행 중증폐질환 판정기준에서 엄마가 1·2단계를 받은 경우 뱃속 태아의 피해를 인정한다. 권씨는 4단계 피해인정을 받아, 정부 인정기준에서 제외되고 있다. 권씨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이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며 부단하게 활동해왔다. 본인이 직접 사례를 연구하며 문제제기를 했고, 피해자들의 항의행동에 동참하면서 억울함으로 호소했다. 올해 정부가 태아인정 기준을 새롭게 발표한다고 하면서 일말의 기대를 했었는데, 예상과 다른 발표기준으로 또 다시 낙담해야 했다. 경향신문에 편지글을 쓴 것은 그 만큼 절실하고 절망 속에서 쓰인 편지였다.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다시 읽힌 권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현재 어느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한명씩 피해자들의 절절한 사연을 읽고 나면 문재인 대통령 분장을 한 최 소장이 다가가서 안자주었다. 이어 ‘죄송하다.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국가가 책임이다.’며 맨 바닥에서 사죄의 큰절을 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저 장면을 기다리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퍼포먼스이지만 가슴이 뭉클했다. 또 ‘언론을 통해 전달이 되는 저 장면은 현 정부에게 어떤 부담을 주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어렵게 준비해 온 퍼포먼스를 오해해 이상한 방향으로 여론이 번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도 살짝 스쳤다. 퍼포먼스를 마치고 준비해 간 전달문을 청와대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일행은 오후 2시에 국회에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면담이 예정돼 있어 서둘러야 했다. 분수대를 빠져나와 주민센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활동가들과 함께 자리를 옮겨 점심식사를 했다.

가습기넷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가 오후에 분수대 앞에서 일인시위를 진행하며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요구했다.

2017년6월5일 오전일정은 우여곡절 끝에 일단락 됐다. 활동을 하다보면 늘 예상치 않은 상황에 봉착하기도 한다. 최 소장이 뚝심 있게(?) 분수대 앞을 지켰기에 당초 계획대로 분수대 앞 퍼포먼스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제 결과는 하늘의 몫. 여러 언론에서 청와대 앞 퍼포먼스를 기사로 다뤘다. 그러나 오전과 오후에 국회로 가서 면담을 진행하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은 허전했다. 가피모와 가습기넷은 지난 5월23일부터 6월5일까지 광화문 사거리에서 매일 일인시위를 진행했다. 6월5일 환경의날을 맞아 대통령의 메시지를 기대했다. 대통령이 기념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국무총리라도 대신 메시지를 내주기를 바랐다. 이날 오전에 들린 바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언급하고 지나가는 수준이었다. 정부가 사과하고 책임지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적지 않게 실망이 되는 상황이었다. 어렵게 분수대 앞을 사수하며 편지글을 읽고, 내용을 전달하는 행동을 진행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던 이유이다. ‘도대체 어떻게 되기는 하는 거야’ 하는 우려였다. 우원식 대표와 면담이 나름대로 의미와 성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허전했다. 최 소장 등 다른 일행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국회 일정을 마치고 인사를 한 후 헤어졌다.

오후 늦게 문 대통령의 사과 발언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나왔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가피모와 가습기넷이 오후 5시30분에 긴급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런데 반전에 생겼다. 오후 4시경 이날 취재를 나왔던 모 기자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왔다는데 들었냐?’라고 하는 질문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순간 당황했지만, ‘역시’하는 반가움이 우선이었다. 이날 오후에 개최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적정수준의 대통령 사과발언을 검토할 것, 진상규명과 지원 확대 방안을 검토할 것, 확실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 피해자와 직접 만남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관련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가피모와 가습기넷은 이날 오후 5시30분에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잡고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환영과 함께 기대를 담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가습기살균제 대책활동을 해오면서 많은 일을 겪기도 했지만, ‘2017년6월5일’도 특별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는 날이 되었다.

<'옥시알비아웃(Oxyrb-OUT)'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대책 항의행동 및 소비자 불매운동 등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고자 하는 일련의 현장 활동에 대해 기록입니다. ‘옥시(알비)아웃’은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넘어가는 하나의 상징입니다._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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