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후진 야만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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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후진 야만시대
  • 2018.02.01 15:31
  • by 양영희 시민기자
더 나쁜 일은 피해자를 2차, 3차로 억압하는 과정이다. (사진 픽사베이)

후졌다. 참 후졌다는 생각밖엔 안 든다. 그리고 그 후진 상황은 너무도 오래 안변하고 있다. 1월 29일 JTBC뉴스룸을 보다가 갑자기 동공이 확대되는 사건을 봤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2010년 검찰 고위 간부에게 성추행 및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폭로 인터뷰’를 한 것이다. 그 후 ‘진상조사 및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청원’과 서 검사를 응원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서 검사는 지난 26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e-Pros)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보내고 어렵게 글을 썼다’고 했다. 그동안 그녀가 보낸 세월을 가해자나 그를 두둔한 검찰 내 조직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안태근 검사는 ‘기억나지 않고 술을 마신 상태’라며 자신의 면죄부를 강조한다.

가해자가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이 사라지는가? 피해자는 먹을 수도 잘 수도 일상을 유지할 수도 없이 망가졌는데 뻔뻔한 얼굴로 모르는 일이라 한다. 게다가 그는  인사상 불이익까지 줬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사람을 최남단 통영까지 보낸 것이다. 누가 봐도 보복성 인사다. 그런데 관련자들은 공정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한 짓이 다른 한 여성을 파멸로 끌고 간일이란 걸 모른다면 그것마저 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 술을 마신 상태라면 더 가중처벌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게 맞는데 이 나라는 남성들끼리 서로 봐준다. 많은 남성들이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회식이라며, 접대한다며 술 마시고 노래하고 여자를 찾는 것이 전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대한민국은 후졌다. 그들은 더 어린 여자를 탐하고 언제, 어디서라도 잘못된 욕망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때마다 피해자는 생긴다. 그리고 그때마다 가해자의 얼굴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은 나라의 법과 정의를 담당한다는 검찰조직에서 일어났다.
 
더 나쁜 행동은 피해자를 2차,3차로 억압하는 과정이다. 인터뷰 이후 검찰조직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이야기들을 퍼뜨리며 서 검사를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가해자에게 달려가야 할 기자들은 피해자와 그 가족을 탈탈 털며 괴롭힌다. 또 가해자가 사죄해야 하는 시간에 오히려 피해자가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든다. 그러니 서 검사 말대로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외쳐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고 있다. 또 '미투' 운동이 정치권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여성이 있는 곳이라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하다. 손석희 앵커가 다짐하듯, 다른 곳의 부조리도 파헤쳐야 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만들어주는 것, 누구도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으며 그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과정부터 시작돼야 한다.

서지현 검사 사건을 보면 대한민국에서는 여성은 사회적 위치가 있어도 성폭력 문제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대한민국 검사를 뭘로 보고 말이야!’하는 대사가 나올 정도로 검사는 힘이 세다. 우린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대사엔 ‘남 검사만’이란 전제가 생략된 말이었다. 누가, 왜? 여성을 약자로 만드는가? 서검사의 법률대리인은 우리 사회가 ‘야만사회’라 했다. 검찰 내 성폭력이 놀라운 일이 아닌 일상이고, 그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야만성 중 하나일 뿐이란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어디에 여성이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있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들은 낯선 남자들의 방문이 두렵다. 현관문 열기 무서워 아예 택배를 안 시키고 배달음식도 먹지 않는 후배도 봤다. 밤길도 무섭고 익히 아는 사람도 방심할 수 없다. 이런 상시적 불안감을 지닌 채 살아가는 여성들은 삶 자체가 위험하다.

같이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헤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일이 어떤 것인지 남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야만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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