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천에 가면] "느리게 살아도 되는 곳"…책과 나무 그리고 사람이 있는 동네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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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천에 가면] "느리게 살아도 되는 곳"…책과 나무 그리고 사람이 있는 동네책방
책방마실 홍서윤 대표 인터뷰
  • 2021.04.30 16:41
  • by 노윤정 기자
07:46

유안진 시인의 표현처럼 '가을도 봄'인 듯 느낄 정도로 봄 정취가 가득한 지역, 춘천. 춘천은 호수와 강, 산을 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로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다. 동시에 로컬크리에이터들의 활동이 활발한 강원도에 속하며, 사회혁신센터가 설립되어 민간에서 지역성을 띤 사업들이 일어나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리고 수도권 GRDP(지역 내 총생산)가 전국 대비 52%에 달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역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춘천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계절 봄, 춘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며 지역에서 다양한 일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세 곳(책방마실·아워테이스트·아뜰리에포노마드)을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역시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편집자 주]

 

▲ 책방마실 전경. 때때로 마당에 터를 잡고 있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라이프인
▲ 책방마실 전경. 때때로 마당에 터를 잡고 있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라이프인

눈부시게 하얀 외벽에 고동색 나무문이 눈에 띄는 건물, 그리고 따뜻해진 바람 속에 신록(新綠)이 짙어 가는 나무와 풀잎들. 고양이들이 오후의 볕을 쬐고 있는 책방마실 마당은 봄기운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책방마실은 2016년 부부인 홍서윤 대표와 정병걸 대표가 함께 차린 지역 서점이다. 주택을 개조하여 마련한 지금의 장소로 이전한 것은 2018년. 홍 대표는 대학병원에서 연구 일을 하던 중 정 대표를 만났고,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꿈과 목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책방마실이라는 공간을 탄생시켰다. 책을 좋아하는 홍 대표와 음악을 좋아하는 정 대표가 함께 즐겁게 꾸려갈 수 있는 곳. 홍 대표가 직접 큐레이션한 책들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 프로그램이 있는 이 공간은 조금씩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평일이면 지역 주민들과 인근 대학교 학생들이, 주말이면 타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이 찾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가득한 책방마실 내부. ⓒ라이프인
▲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가득한 책방마실 내부. ⓒ라이프인

마당을 지나 책방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 매대를 비롯해 책장 가득 책이 꽂혀 있다. 종이 특유의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또한 책방마실 곳곳에는 식물을 좋아하는 홍 대표의 취향에 따라 수목과 화초들이 자라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푸른 초록색을 보고 있자니 눈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책방이 아니라 가정집에 있는 듯 편안함을 주는 곳, 책방마실의 테라스에 앉아 홍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주택을 개조해 만든 책방마실은 내부에 방문 등 기존 주택의 구조가 곳곳에 남아있다. ⓒ라이프인
▲ 주택을 개조해 만든 책방마실은 내부에 방문 등 기존 주택의 구조가 곳곳에 남아있다. ⓒ라이프인

책방마실을 시작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책을 워낙 좋아한다. 원래도 사서로 근무했었다. 그러다가 한 8년 정도 연구 관련 일을 했는데, 다시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결혼하면서 남편과 춘천에서 책방을 열었다. 남편도 '모던 다락방'이라는 인디밴드 멤버로서 음악을 하고 있기에, 이곳을 책만 있는 곳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멈춘 상태이지만, 이곳에서 공연이나 전시도 열고 여러 모임 활동도 했다. 책방마실이 동네의 커뮤니티 공간 역할도 하고 있다.

책방마실이 보통 독립서점이라고 소개되는데, 주로 어떤 책들을 취급하나?

굳이 섹션을 나누자면 문학이랑 식물, 영화, 사회학, 주거 문화, 이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실용적이지는 못한 책들이 많다고 할까?(웃음) 일단 내 취향에 맞는 책들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손님들 추천을 받아서 책을 구비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책방마실을 독립서점이라고 하는데, 독립출판물이 있긴 하지만 비율로 따지면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독립서점이라고 하기에는 독립출판물 비중이 적다. 그래서 나는 그냥 동네책방, 동네서점으로 불리고 싶다.

▲ 방구석 독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감상. 한 권의 책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라이프인
▲ 방구석 독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감상. 한 권의 책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라이프인

책방마실을 거점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인가?

글쓰기 모임이랑 '괴상한 스터디'라는 모임이 있었다. 괴상한 스터디는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스터디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되 각자 할 일을 하는 모임이다. 예전에 이다 작가님이 이런 형태의 모임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책방을 열고 나서 이다 작가님에게 나도 이런 이름으로, 이런 방식으로 모임을 운영해도 괜찮겠냐고 먼저 양해를 구하고 시작했다. 괴상한 스터디를 하면서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분들을 만났고 그렇게 모인 분들이 친해지면서 또 다른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괴상한 스터디를 2017년부터 3년 정도 하다가 지금은 멈춰 있는 상태다. 글쓰기 모임은 2년 정도 계속해오고 있는데, 주 1회 각자 글을 쓰고 모여서 서로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다.
'방구석 독서 모임'도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서 독서 모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래서 책 한 권을 돌려 읽으면서 책에 필담을 적어 나누는 식으로 독서 모임을 운영했다. 대면 모임이 아니다 보니까 다른 지역에서 참여한 분도 계셨는데, 타지역 분께는 차례가 돌아오면 책을 택배로 보내드렸다. 그런 방식으로 함께 읽으면서 감상을 나눈 책이 10권 정도 된다. 참여하신 분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모임이었다. 이런 모임들을 통해 부담 없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또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대표님에게 춘천은 고향이기도 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곳이기도 하다. 대표님이 생각하기에 춘천은 어떤 지역인가?

느리게 살아도 되는 곳. 그렇게 욕심내지 않고 경쟁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래도 되는 곳이다. 경쟁에서 앞서 나가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을 서울에 비하면 덜 받는 동네다.

지역에서 창업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다른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의 경우, 지역은 하나의 유기체적인 구조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도 춘천문화재단이나 춘천사회혁신센터, 지역 도서관 같은 곳들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일하고 있다. 타지역에서 오는 경우 이곳에 인맥이 없는 경우도 많을 텐데, 인맥을 만들어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인맥을 만드는 것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을 사귀면 된다. 그러면 지역에서 살아가는 데도, 사업할 때도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면서 끌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 책방마실의 테라스 공간. ⓒ라이프인
▲ 책방마실의 테라스 공간. ⓒ라이프인

책망마실이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책방마실을 운영하면서 공동체 회복의 모습을 본 사례가 있다면?

손님들 중에는 고향인 춘천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다시 돌아온 분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춘천으로 온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 모두 춘천에서 마음 붙이기를 어려워한다. 그런데 이런 분들과 모임을 하다 보니 책방마실을 통해 서로 취향을 나누고 교류하면서 지역에 정을 붙이더라. 그런 식으로 춘천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다.
다음 달부터 손님들과 텃밭을 같이 가꿀 계획이다. 커먼즈필드(시민들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혁신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창업자를 입주시켜 지원하는 공간. 춘천사회혁신센터가 운영한다. -편집자 주-) 옥상에서 텃밭 사업을 한다고 해서 손님들과 수세미를 키우고 그것으로 제품을 만들어서 제로웨이스트 관련 워크숍도 열 계획이다. 또,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과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혼자 하면 막막한 일들을 함께하면서 끈끈함과 유대감이 생기는 것 같다. 책방마실을 통해서 친구를 만나고 그렇게 해서 지역에 정착하는 분들이 있다. 그게 신기하기도 하다.

책방마실이 어떤 공간이었으면 하는지, 바람이 있나?

'마실'이라는 이름은 누구나 편하게 오라는 의미를 담아서 지은 것이다. 정말 편하게 와서 책도 보고 휴식도 취하고 사람들과 가벼운 교류도 하고 갔으면 좋겠다. 나의 목표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책방마실을 계속 운영하는 것이다. '나 어렸을 때 놀러 오던 곳인데 아직도 이 자리에 있네' 이렇게 책방마실이 사람들의 추억 속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청년들이나 지역에 오고 싶지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지역에 정착한다는 것은 장단이 확실하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춘천 집값이 아주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같은 가격이면 서울보다 아주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다. 다만, 창업을 생각한다면 인구가 서울만큼 많지 않기 때문에 손님도 그만큼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요즘은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으니까 굳이 지역을 서울 기반으로 하지 않아도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온라인으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온라인 부분을 강화해보려고 한다. 사업적인 측면에서 지방은 확실히 가능성이 열려 있다. 지방에 아직 부족한 서비스도 많지 않나. 사람들이 원하지만 지역에는 아직 없는 그런 부분들을 잘 찾을 수 있다면 지역 창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하고 싶다.

▲ 책방마실을 방문한 손님이 방명록에 남겨둔 문구다. "각자의 속도에 맞게 잘 가고 있다."ⓒ라이프인
▲ 책방마실을 방문한 손님이 방명록에 남겨둔 문구다. "각자의 속도에 맞게 잘 가고 있다."ⓒ라이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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