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의 즐거움] 사람이 모여 즐거움 채우는 산골 마을 동네서점 '심심한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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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의 즐거움] 사람이 모여 즐거움 채우는 산골 마을 동네서점 '심심한책방'
  • 2023.03.07 12:25
  • by 노윤정 기자

무언가에 몰두하고 집중하여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경험이 있는가?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 친구들과 함께하는 운동의 즐거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곳을 찾는 여행의 즐거움 등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우리는 매일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완벽한 삶속에서 어떤 절망감도, 고민거리도, 단점도 없을 때만 즐거움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순간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라이프인은 시작을 즐기면서 열자는 의미로 'OO의 즐거움'을 올해 첫 기획 주제로 정했다. 즐거움을 원한다면 기다리지 말고 찾아나서 보자. 즐겁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 [편집자 주]

 

▲ 심심한책방 전경. ⓒ라이프인
▲ 심심한책방. ⓒ라이프인

"사람들이 심심하면 하는 말이 있잖아요. '뭐 재미있는 일 없나?' 그래서 이름을 '심심한책방'이라고 지었어요."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산 자락에 위치한 작은 동네책방. 굽이굽이 인적 드문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는 고양이 그림 '심심이'가 먼저 반겨주는 '심심한책방'이 있다. 양옆으로 화초가 우거진 돌계단을 오르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책방 건물이 나오고, 건물을 지나 조금 더 뒤로 돌아들어 가면 넓게 조성된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산세와 어우러져 더욱 싱그럽게 느껴지는 텃밭을 구경하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목제 가구에 아기자기한 색상의 그림책이 가득한 책방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작업대에 놓여 있는 엽서와 색깔 펜들이 정겨운 느낌을 더한다.

아늑하고 정겨운 정취가 가득한 이곳은 신혜원, 이은홍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그림책 작가인 신 씨와 만화 작가인 이 씨는 지난 2016년 현재 책방 건물 뒤편에 새집을 마련했고, 그러면서 기존에 작업실로 사용하던 공간이 2020년 책방으로 탈바꿈했다. "신혜원 씨가 오래전부터 책방 운영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나는 별로 관심 없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어요." 남편 이 씨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책방 이름이 흥미로웠다. 사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많지 않은 산골 마을에 있는 책방. 그래서 '심심한' 책방일까? 이름의 뜻을 물어보니 신 씨는 "이 외진 곳에 누가 찾아올까, 아마 손님은 많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굉장히 심심한 책방이 되겠네,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산 깊은 곳에 있으니 깊을 심(深)의 의미도 담을 수 있고, '심심하니 재미있는 일을 함께 찾아볼까?'라는 마음과도 연결할 수 있는 이름이다"고 설명했다. 아내의 말에 이 씨는 "그런데 그렇게 심심하지 않다. 신혜원 씨가 일주일에 두 번씩 주민들 대상으로 그림 교실을 연다. 그래서 오히려 바쁜 축에 속한다"고 미소 지으며 덧붙였지만.

이 씨의 말처럼 심심한책방은 이름과 다르게 '심심한' 공간은 아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책을 보고, 엽서 만들기와 같은 간단한 체험 활동을 하고, 작가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주민들이 모여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책'을 통해 주민과 마을을 가깝게 만나고 예술을 손쉽게 나의 일상에 들일 수 있는 곳. 심심한책방을 운영하는 신혜원 작가와 이은홍 작가를 만났다.
 

▲ 신혜원 작가와 이은홍 작가. ⓒ라이프인
▲ 신혜원 작가와 이은홍 작가. ⓒ라이프인

산골 마을이라 사람들이 찾아오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책방을 연 이유가 있다면.

신혜원: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우리가 사는 곳에 열었다.(웃음)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래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작가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그래서 수입보다 찾아오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에 더 방점을 찍었다. 사실 이전에도 이 동네에서 마을 도서관을 만들어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손님이 안 오더라. 1년에 한 명 정도 왔던가. 그래서 더 이어가지 못했는데, 이후 전국에 작은 동네서점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그런 서점들을 찾아다니는 문화가 생기면서 나도 다시 힘을 얻었다.

심심한책방에는 주로 어떤 분들이 찾아오는지 궁금하다.

신혜원: 독립서점을 검색해서 오는 분들도 있고, 우리 책을 보고 '이 책을 낸 작가가 시골에 책방을 냈다고 하네, 한번 가 볼까?' 이러면서 방문하는 분들도 많다. 근처 주민들은 농사짓는 분들이 많다 보니 잘 오지 않고, 면 쪽에 사는 젊은 분들이 종종 온다. 또 근처에 있는 제천간디학교나 초등학교에서도 찾아온다.

이은홍: 나는 그림책에 그리 많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신혜원 씨가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원하는 만큼 충분히 나누지 못했는데,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분들과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이 굉장히 즐거워 보인다.

책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대상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신혜원: 책방 문을 열기 몇 달 전 그림 교실을 시작했다. '아아아 그림 교실'인데,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아무거나 그릴 수 있는 그림 교실'이라는 뜻이다. 3년 정도 운영해 왔고, 지난해 초에는 수업을 듣는 분들에게 같이 그림책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1년 동안 그림책 만들기를 진행했다. 다들 엄청 열심히 했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하는데, 수업 시간이 아닐 때도 그림을 그려서 가지고 오기도 했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도시에서 살다가 온 분들 중 필라테스 강의를 하던 분은 필라테스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주민들에게 도자기 굽는 법을 알려주는 분도 있다. 이렇게 왕래하면서 서로 배우고 있다.
 

▲ 심심한책방 내부 모습. ⓒ라이프인
▲ 심심한책방 내부 모습. ⓒ라이프인

연고가 없던 제천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

신혜원: 예술가로서 도시에서 돈을 벌며 살기가 힘들었다. 태풍의 눈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부로 들어가면 '자본주의 무풍 지역'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도시 출신이라서 시골에 가면 먹거리를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도 있었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서 어디로 갈지 고민을 시작했고, 우리나라 정중앙으로 가면 어디든지 2~3시간 안에 놀러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충청도 지역을 찍었다. 그냥 지도 보고 가운데를 찍은 것이다.(웃음) 그런데 오니까 자연경관도 아름답고 대안학교도 있고, 많은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이 도시에서의 삶에 지쳐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도시, 특히 수도권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도시에서 벗어난 제천에서의 삶은 어떠한가.

이은홍: 우리는 프리랜서다. 일을 할 때 장소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사는 지역을 옮기는 것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시골로 오는 것이 싫긴 했다. 신혜원 씨는 서울 태생으로 서울에서 쭉 자라서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을 키웠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방 도시에서 자랐으니 별로 그런 마음이 없었다. 그때 우리 아이가 시골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방학 때 농촌 캠프 같은 프로그램에 몇 번 참여해 보더니 그게 좋았나 보더라. 세 식구 중 두 명이 원하는 데 혼자 반대하면서 두 사람의 로망을 막을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제천에 오게 됐고, 금방 잘 적응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처음 제천에 왔을 때는 우리가 40대 초중반이었다. 체력도 좋고 가장 활발하게 일할 때라 경제적인 문제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점점 체력도 떨어지고 초반의 텐션도 떨어져서 평화롭지만 심심하기도 하다 싶던 차였다. 그때 심심한책방을 차려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시 텐션이 올라가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심심한책방은 문화와 예술을 접하는 공간일 수도 있겠다.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일수록 이런 동네책방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혜원: 예전에 농담처럼 '온 동네 사람들이 자기 책을 한 권씩 가지면 어떨까'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책 만드는 과정을 아니까 동네 사람들이 나랑 같이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씩 만들고 ISBN(국제 표준 도서 번호)도 받아서 심심한책방과 몇몇 독립서점에서 파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자식들한테도 물려주면 뿌듯하지 않겠나.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한번 해 봤다.

이은홍: 여러 가지 부족한 인프라 속에서 그나마 누릴 수 있는 장점이라면 이런 작은 책방에서 문화를 접하고 마을을 만나는 것이다. 마을을 떠나서 살 수 있는 개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보호자와 함께 온 아이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책방에 잘 안 들어온다. 뒤에 있는 마당에서 뛰어놀기 바쁘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도시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정서적인 부분들을 이 아이들은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심심한책방이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는가.

신혜원: 지금이 참 좋다. 손님은 많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 그림과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그냥 지금처럼만 유지되면 좋겠다. 한 가지 더 소망한다면, 지금 여기를 방문하는 아이들이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와 나에게 '선생님, 책방이 아직도 있네요?' 이렇게 물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 아이를 못 알아봐서 아이가 나를 타박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해주기도 하고.(웃음) 그렇게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심심한책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소망이기도 하고 내 삶에 대한 소망이기도 하다.

이은홍: 아들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도시에서 살다가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거나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우리를 한번 생각해 달라고. 그러면 그냥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밥만 주고 며칠 쉬었다 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이 공간이 그냥 와서 며칠 머물다가 갈 수 있고 새로 일어날 힘을 얻어 갈 수 있는 곳이 되면 좋을 것 같다.

▲ 심심한책방 한 편에 놓여 있는 신혜원 작가와 이은홍 작가의 공동 저작 '평등은 개뿔'. 30년차 부부인 두 사람은 '평등은 개뿔'에서 본인들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성차별과 편견을 꼬집는다. ⓒ라이프인
▲ 심심한책방 한 편에 놓여 있는 신혜원 작가와 이은홍 작가의 공동 저작 '평등은 개뿔'. 30년차 부부인 두 사람은 '평등은 개뿔'에서 본인들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성차별과 편견을 꼬집었다. ⓒ라이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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