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공정무역] 우리의 소비가 만들어가는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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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공정무역] 우리의 소비가 만들어가는 변화
  • 2020.10.29 09:00
  • by 신효진(독립연구자)

협동조합은 공정무역 제품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한다. 개발도상국의 수 많은 협동조합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한다. 유럽 및 일본, 그리고 한국의 아이쿱과 두레와 같은 협동조합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수입 및 가공하여 조합원들에게 제공한다. 공정무역을 하고자 노동자협동조합을 결성한 이퀄익스체인지와 같은 협동조합도 있다. 생산자협동조합부터 소비자협동조합까지 공정무역 공급사슬 상에서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참여한다. 이 글에서는 협동조합과 공정무역 어디서 어떻게 만나며 이러한 접점이 형성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는 연간 약 100만 톤이 넘는 과일을 수입한다. 그중 바나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9%이다(2017년 기준). 바나나는 특유의 달콤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어 사랑받는다. 그래서 바나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과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바나나 산업은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 독점하고 있는데, 이들이 바나나의 생산비와 판매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싱그러운 바나나 재배를 위해 병들어가는 바나나 생산자와 생산지가 꿈꾸는 안전하고 행복한 노동, 건강한 환경은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일까? 

바나나가 공정무역을 만나 그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소규모로 바나나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공정무역 협동조합을 만들고 높은 사회적·환경적 기준을 따르며 공정무역 바나나를 생산한다. 2013년 협동조합 간 대안무역 차원에서 태국산 바나나를 국내 최초로 취급한 아이쿱은 다음 해 페루산 공정무역 바나나를 공급했다. 태국에서는 아이쿱에서 필요로 하는 물량을 맞출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쿱은 2017년부터 앱보사와 인연 맺고 지금까지 공정무역 바나나를 공급하고 있다. 

# 공정무역 바나나 생산 협동조합 앱보사의 도전

▲ 페루 북서부 피우라주 사만지역에 위치한 앱보사(APPBOSA)
▲ 페루 북서부 피우라주 사만지역에 위치한 앱보사(APPBOSA)

페루 북서부 피우라주(Piura) 사만(Saman) 지역에 위치한 앱보사(The Association of Small Producers of Saman and Anexos, APPBOSA)는 유기농 바나나를 생산하는 소규모 생산자들의 협동조합이다. 생산자들은 2,500㎡~10,000㎡의 소규모 농지에서 유기농 바나나를 생산하고 있다. 앱보사의 시작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진행된 농지개혁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일정 크기의 토지가 분배된다. 이들은 '바나나'라는 새로운 작물 재배에 매력을 느꼈으나 이 낯선 작물을 재배할 것인지를 놓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과일이 상품화되면서 특정 작물 중심으로 농업 생산 구조가 재편되어 과일의 가격 변동, 재배 환경 변화 등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쉽게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발렌틴 루이즈(Valentín Ruiz)가 이끄는 생산자 그룹에서 바나나 위원회를 조직한다. 그는 생산자들이 놓여 있는 불안정한 현실을 타개하기에 공정무역 방식으로 바나나를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변화를 향한 논의 속에 2003년 2월, 약 100명의 생산자들이 중심이 되어 앱보사를 설립하였다. 같은 해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앱보사는 2004년 4월부터 공동체발전기금(social premium)을 받기 시작했으며, 3년 동안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페루의 생산자협동조합 중 최초로 해외 유기농 인증을 획득했다. 앱보사는 생산하는 과일의 100%를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다. 2007년이 끝나갈 무렵, 앱보사는 국제공정무역기구(Fairtrade International)의 생산자 사업부, 수입업체들의 지원을 받아 바나나를 수출용으로 포장하는 공장을 설립했다. 페루 최초로 바나나 수출에 성공한 앱보사는 현재 유럽, 미국 등 여러 지역에 고객들을 두고 있다.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앱보사 구성원들은 시작 단계부터 공정무역을 선택해 부단히 도약의 초석을 닦았다. 앱보사의 성공에는 생산자들이 있다. 소규모 생산자들이 모인 앱보사는 지속적으로 바나나 재배와 관련된 교육과 훈련을 진행했다. 생산자들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까다로운 공정무역 기준에 부합하는 바나나 생산을 현실로 이루어냈다. 100여 명에서 시작한 앱보사 협동조합 조합원은 현재 약 500명으로 늘어났다.

▲ 바나나를 이동시키는 '케이블웨이'
▲ 바나나를 이동시키는 '케이블웨이'

지난 2008년, 앱보사는 공정무역 공동체발전기금으로 케이블웨이를 설치했다. 그 덕분에 생산자들은 더 이상 무거운 바나나 뭉치들을 등에 짊어지고 포장 공장까지 옮기지 않게 되었다. 케이블웨이 설치로 이동의 부담이 줄어든 것은 물론 수출에 적합한 흠 없는 바나나 공급이 용이해져 수익적으로도 이득을 보았다. 앱보사의 도전은 생산자 지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바나나 생산을 둘러싼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인프라 개선을 위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생산자들의 열정적인 참여라는 결사체로서의 힘과 새로운 시스템의 적극적인 도입이라는 사업 경영의 힘이 앱보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앱보사의 미션은 조합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생산 작업의 현대화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더 건강한 바나나를 제공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다. 앱보사의 미션은 차근차근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 공정무역 유기농 바나나 생산과정

앱보사의 노하우가 축적된 공정무역 유기농 바나나는 소규모 농장에서 천연비료와 식품보호제품을 사용하여 재배된 바나나를 의미한다. 양질의 바나나 열매 생산을 위해서는 사람의 손을 많이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샛노란 바나나 하나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담겨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높은 품질로 손꼽히는 앱보사의 바나나는 세심한 관리 속에 탄생한다. 

모종 작업을 거친 바나나는 꽃망울이 바나나잎 사이로 나오면서 열리기 시작한다.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 재배하는 바나나는 수확까지 긴 여정을 거친다. 우선 바나나 나무의 기둥을 잘 닦고 병충해가 바나나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바나나 뭉치에 비닐 커버를 덮는다. 이는 햇빛이 직접 바나나에 닿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일반 바나나 농장은 바나나를 덮는 비닐 커버에 농약을 도포해 병충해를 예방한다. 하지만 앱보사는 농약을 도포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렇게 한 번 사용한 비닐을 리사이클링센터에서 다시 정비하여 재사용한다. 그렇게 2개월 반에서 3개월간 비닐 커버에서 바나나 뭉치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뒤, 본격적인 바나나 수확이 시작된다.

▲ 수확한 바나나는 세척, 포장 등의 작업이 진행된다. AgroFair Benelux 갈무리
▲ 수확한 바나나는 세척, 포장 등의 작업이 진행된다. AgroFair Benelux 갈무리
▲ 바나나를 무게를 측정하고 있는 장면. AgroFair Benelux 갈무리  
▲ 바나나를 무게를 측정하고 있는 장면. AgroFair Benelux 갈무리  

수확한 바나나는 케이블웨이를 통해 세척, 포장 등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포장 공장으로 이동한다. 포장 공장에 도착한 바나나는 세척과 소분, 무게 측정 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상자에 담겨 세계 곳곳으로 배송될 최종 준비를 하게 된다. 항만 운송을 통해 페루에서 우리나라까지 오는데 약 한 달여가 소요된다. 입항 후, 검역과 방역을 거치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잔류농약을 검사하는데 3~4일 정도가 걸린다. 바나나 후숙 정도에 따라 다시 약 4~5일의 후숙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페루 북서부에서 공정무역 유기농 바나나를 생산한다는 생산자들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바나나가 우리나라 곳곳의 아이쿱 조합원 가정으로 전달되고 있다. 

# 아이쿱의 책임 소비로 만나는 앱보사의 변화

아이쿱은 2019년 기준, 약 1,500톤의 바나나를 앱보사로부터 들여왔다. 연간 1만 2천 톤 규모의 바나나를 생산하는 앱보사 생산량의 10%를 조금 넘는 규모가 아이쿱에서 소비되고 있다. 아이쿱과 앱보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공정무역은 소규모 생산자들이 그들의 노동의 결실에 대해 더 나은 가격을 받고, 공정무역 공동체발전기금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앱보사는 이 공정무역 공동체 기금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일찍이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앱보사는 공동체발전기금을 받은 지 올해 17년 차에 접어들었다. 주거 환경이나 관개 수로 개선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상태로 공동체발전기금은 이제 청소년들의 교육 환경 개선이나 의료 혜택 마련 등 삶의 질을 보다 높이기 위한 영역에 사용되고 있다. 앱보사는 지역의 학교에 학생들을 위한 악기와 용접 장비 등을 기부했다. 교육 커리큘럼의 다양성을 위한 노력인 동시에 학생들의 역량 개발로 취업 기회를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의 기회를 만들려는 것이다. 

또한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앱보사의 기여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남미의 전반적인 상황과 비교할 때, 앱보사에서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앱보사 전체 조합원 중 여성의 비중은 약 15%이다. 앱보사는 여성 기업가 육성, 소기업 창업 기회 제공이라는 목적을 갖고 요리 수업을 개설해 지역 여성들의 소득 증진 방법을 모색했다. 공정무역 유기농 바나나를 구매하는 것은 앱보사가 위치한 페루 피우라주 사만 지역에 변화의 씨앗을 심고 뿌리 내릴 수 있도록 가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단히 땅을 다져가며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가려는 변화의 기회가 움트고 있다. 

 

공정무역이 고마워요, 그 덕분에 이 요리 수업이 운영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앱보사에도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이러한 활동이 지속되어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요리 수업은 사업을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요리 수업 참여자 Mena, Rui

 

▲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남미의 전반적인 상황과 비교할 때, 앱보사에서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appbosa  
▲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남미의 전반적인 상황과 비교할 때, 앱보사에서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appbosa  
▲ 앱보사는 여성 기업가 육성, 소기업 창업 기회 제공이라는 목적을 갖고 요리 수업을 개설해 지역 여성들의 소득 증진 방법을 모색했다. ⓒ appbosa  
▲ 앱보사는 여성 기업가 육성, 소기업 창업 기회 제공이라는 목적을 갖고 요리 수업을 개설해 지역 여성들의 소득 증진 방법을 모색했다. ⓒ appbosa  

한편, 공정무역 유기농 바나나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아이쿱은 기존의 공정무역기금과 별개로 2015년부터 '국내친환경과일지원기금'을 신설하여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공정무역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는 국내 생산자들을 위한 기금이다. 공정무역 바나나 매출 증가와 함께 기금의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2019년 기준으로 약 6억 9천만 원의 기금이 조성되었다. 이는 제주도의 감귤, 바나나 생산지 지원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공정무역 유기농 바나나 소비는 이렇게 페루의 생산자와 국내 생산자 간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공정무역 바나나를 소비하면서 16,0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페루의 공정무역 생산자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소비가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또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직접 확인하고 있다. 이 변화는 소비와 생산을 잇는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공정무역을 만난 바나나가 꽃 피운 변화가 계속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우린 찰나의 순간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내일을 여는 소비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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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진(독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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