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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혜경'이 기다리는 봄 소식삼성직업병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씨...7번째 산재신청 도전

난 산재 인정받아야 한다. 난 거기 다니다 병들었다.
삼성 들어가기 전에 종합검진 다 받고 갔는데 어떻게 내가 그런 병 걸려요.
(...)
진짜 나쁘다. 나뻐. 차라리 신입교육을 할 때 따로 더 교육을 시키던가.
지금 이렇게 되고 나니 진짜 열 받고 화난다.
2019. 3. 30 혜경


흔들리는 손을 부여잡고 스케치북에 마음속 이야기를 쓴다. 스케치북 4장 쓰는데 4시간 반이 걸렸다. 
 

한혜경씨가 스케치북에 4시간 반 동안 쓴 일기이다. 마지막 장 글씨를 보면 첫 장 쓸 때보다 힘들어함이 역력히 느껴진다. 스케치북 아래에는 혜경씨가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할 때 찍은 사진들이 있다. 라이프인은 5월 2일 춘천 자택에서 한혜경씨와 어머니 김시녀씨를 만났다.


2018년 7월 24일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는 '삼성전자 사업장의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의 중재안을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합의했다. 다음날(7월 25일) 반올림은 1023일을 마지막으로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농성천막을 걷었다.

삼성이 중재안을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합의한 후,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11년 넘게 투쟁한 결과로 삼성의 사과를 받아내긴 했지만, 피해자들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삼성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는 춘천에 산다. 1995년 10월 고등학교 3학년 만 17살의 나이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입사 3개월 만에 생리불순이 시작됐고 얼굴에 큼지막한 여드름이 잔뜩 올라왔다. 8개월이 지나자 생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나도 그래. 생리 안 나오는 건 병도 아니야. 여기 있는 애들한테는 허다한 일이야"라며 산부인과 가서 호르몬 주사 맞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생리불순은 3년 동안 이어졌고 두세 달에 한 번씩 호르몬 주사를 맞는 일은 일상이 됐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주말에 집에 오면 친구들도 만나고 싶지만, 녹초가 된 몸은 도저히 일어나질 못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해놔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월요일 아침 출근하기가 바빴다. 호르몬 주사를 맞아도 더 이상 생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에 이상증세가 계속 나타났다.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2001년 10월 퇴사했다.

6년 동안 삼성에서 일한 대가는 참혹하게 돌아왔다. 퇴사 이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점점 균형 감각이 없어졌다. 똑바로 걸으려고 해도 발이 계속 대각선으로 향했고 이유 없이 자주 넘어졌다. 결국 2005년 10월 '소뇌부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27살 나이에 뇌종양 수술을 한 혜경씨는 그 후유증으로 지체장애, 보행장애, 언어장애 1급 상태가 됐다. 팔·다리·손 등 모든 신체를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부축 없이는 걷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한다. 혼자서 숟가락질조차 하지 못한다.

반올림 천막농성 마지막 날인 지난해 7월25일, 한혜경씨(가운데)와 어머니 김시녀씨(왼쪽 위)가 춘천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착하고 공부도 잘하더니 삼성에 들어갔다고 엄마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는데 왜 삼성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을까...건강하게 두발로 걸어서 삼성에 들어갔는데... 가족력도 없고 술, 담배도 안 했는데, 왜 몸이 이렇게 됐을까... 

혜경씨 어머니 김시녀씨는 2008년 반올림이라는 곳을 알고 바로 반올림에 연락했다. 10년이 넘는 투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혜경씨는 삼성직업병과 관련해 뇌종양으로 제보한 첫 사례다.

2009년 3월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에 산재보험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됐다. 2010년 4월 근로복지공단 본부 산재심사위원회에 신청했지만 또 불승인됐다. 2010년 10월 노동부 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청구했으나 역시 불승인됐다. 2011년 4월 행정소송 1심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2014년 1월 항소를 제기했지만 변론의 기회조차 없이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돼 패소했다. 3심에서도 하급심이 그대로 인용돼 패소했다.

6번을 도전했지만, 심사위원들과 판사들은 첨단전자산업 공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혜경씨가 담당했던 업무의 유해성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혜경씨는 LCD 모듈 공정에서 PCB(녹색 회로기판)에 전자부품을 납땜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주로 사용하는 물질은 솔더 크림(납, 주석, 플럭스를 섞은 납땜용 크림), 유기용제로 IPA(이소프로필 알콜) 또는 아세톤 등이다. 

240도 고온의 납, 벤젠, 1급 발암물질 포름알데히드, PAHs(다환 방향족 탄화수소), 뇌종양 발병률이 5.36배 증가한다는 극저주파 전자기장,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IPA(유기용제)에 장시간 노출됐다. 교대 근무 또한 2A급 발암원인이다. 단일 유해인자 노출도 문제지만 다양한 유해인자에 복합 노출되면 상승작용으로 뇌종양 발병률은 더 높아진다.

김시녀씨는 "혜경이는 너무 억울하다. 분명 삼성에서 일하다 몸이 이렇게 됐다. 산재 인정을 받아야 혜경이 가슴 속 응어리가 그나마 조금 풀어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뇌종양으로 산재인정이 됐는데 왜 혜경이는 아직도 인정을 못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혜경씨가 일했던 공장은 2001년 폐쇄됐다. 근로복지공단은 폐쇄된 공장 대신 다른 공장을 역학조사 했다. 제대로 된 역학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러 가지 유해요인 중 납 노출만 다뤄진 채 산재 불승인 처분이 내려졌다. 행정소송 2심(재판장 장석조)에서 제대로 다퉈보고 싶었지만 판사는 변론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최소한의 절차조차 무시한 처사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공정에서 일하던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이 2017년부터 뇌종양으로 산재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혜경씨는 처음으로 뇌종양을 직업병으로 주장한 당사자이고 12년 동안 이 문제를 앞장서서 알려온 사람이다.

혜경씨와 어머니는 춘천에서부터 서울까지 10년 넘게 휠체어로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며 왕복 8시간을 매주 오갔다. 각종 집회, 1박2일 천막농성장 지킴이, 이재용 재판장, 각종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한혜경씨가 올 3월29일(1차), 4월29일(2차) 근로복지공단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읽기 위해 쓴 최종의견진술서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혜경씨가 산재 인정 안 된 게 제일 속상하다. 누구보다 산재 혜택이 필요한 사람이다. 어머님이 더 연로하셔서 혜경씨를 부축할 수 없을 때 어떡해야 하나. 내가 부축해야 할까 반올림이 돌아가면서 부축해야 할까 걱정을 많이 한다. 이번에 재심사장(4월29일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에서 끝까지 잘 얘기해서 위원들을 설득을 해야 하는데, 중간쯤 갑자기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 혜경이 산재 인정받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가...2008년부터 끌어안고 있는 사건인데 왜 이렇게까지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꺼억꺼억 거리며 겨우 이야기를 끝마쳤다"며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법에서 패소한 이후에도 반올림은 어떡하든 혜경씨 문제를 풀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했다. 반올림 변호사가 대법판결의 기판력이 행정처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법원에서 패소했더라도 모든 게 끝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이 새롭게 행정처분을 내려도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현실에서 실현된 적 없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근로복지공단에 다시 산재 신청을 했다. 7번째 도전이었다. 올 3월 열린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1차)에서 위원 6명의 의견이 3 대 3으로 갈려 결론이 나지 않았다. 기각이 아니라 다행히 한 번의 기회가 남았다. 4월 29일 2차 질판위가 열렸다. 혜경씨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였다.

김시녀씨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꼭 돼야 하는데..."라고 말하자 혜경씨가 "무서워, 마지막이라는 말 하지마. 마지막, 마지막 이라는 말, 무서워"라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올 초부터 혜경씨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손을 잡고 꽃과 안마하는 손을 그린다. 그림에 집중하는 동안은 모든 생각과 감정이 사라진다. 그림 한 장 그리는 데 2~3시간이 걸리지만 '해야 한다, 해야 한다' 주문을 건다고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를 위해서는 개나리를 그렸다. 개나리는 작은 꽃들이 모여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왼쪽은 안마하는 손, 오른쪽은 고 황유미씨를 위해서 그린 개나리 그림이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얼굴 표정도 달라진다. 혜경씨는 그림을 통해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을 자주 이야기하게 됐다. 김시녀씨가 혜경씨가 왜 안마하는 손을 많이 그리는지 설명한다.

"혜경이는 병원생활을 오래했다. 혜경이가 워낙 인사성이 좋으니까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척 예뻐하셨다. "우리야 나이 먹어서 괜찮지만 하느님, 부처님, 용왕님, 제발 저 젊은 애 좀 걷게 해주세요."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병원에서나 복지관에서나 혜경이가 아침에 "잘 주무셨어요" 라고 물으면 할머니들이 "다리가 쑤셔서 못 잤어, 어깨가 쑤셔서 못 잤어" 그러신다. 안마를 배워서 할머니들에게 봉사하고 싶다고 한다."

한혜경씨는 안마하는 손을 그리기 위해 먼저 어머니의 발이나 손, 어깨를 잡고 손모양을 잡는다.(왼쪽) 그 손모양을 사진으로 찍은 후 그림으로 그린다.(오른쪽)

혜경씨는 다시 걷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혜경씨가 걷지 못하는 이유는 마비나 약한 근육 때문이 아니라 뇌가 인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흔들림이 심해서 부축해도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꼭 걸어야 한다'며 1년 동안 녹색병원에서 악착같이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 결과 부축하면 한 발 한 발 내디딜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주변에서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집에 있는 날에는 꼬박꼬박 40분씩 런닝머신에서 걷기 연습을 한다. 복지관 재활치료도 점점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

요즘은 집에서 실내용 휠체어를 손과 발끝으로 밀며 살금살금 혼자 다닐 수 있게 됐다. 화장실도 벽에 붙여놓은 봉을 잡고 혼자 다닌다. 봄 햇살을 받으며 40분 동안 책도 읽었다. 삼성 때문에 잃은 게 너무나 많지만 이번에 산재 인정만 되면 억울한 마음이 한결 나아질 듯하다.
 

한혜경씨가 반올림을 위해 그린 꽃 그림(왼쪽)을 컵으로 제작했다.

혜경씨와 어머니는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산재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산재 피해자들과 연대해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김시녀씨는 "무엇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켜야 하고 교과서에 노동 안전교육, 화학물질 안전교육도 추가해야 한다. 이제 좀 편하게 살라고 얘기하는 지인들도 있다. 누군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앞서 누군가 치열하게 투쟁한 덕분이다. 그런 사실을 이미 온몸으로 깨달았는데 어떻게 중간에 그만둘 수 있겠나. 지금처럼 연대하며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다"라고 마무리했다.

 

공정경 기자  jjkong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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