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생명체다...가설부터 다시 설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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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생명체다...가설부터 다시 설정해야
2018 칼폴라니 국제 워크숍 '생태계, 아래로부터'
  • 2018.12.07 17:58
  • by 공정경 기자

사회적경제가 정책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주민 중심', '자발적'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되새기게 된다. 주민, 주민 하는데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얽혀있는 지역에서 과연 주민이란 누구인가? 라는 질문부터 전체 주민의 대표성을 얻는 것이 가능한가? 주민은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 등 근본적인 질문들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한 마을활동가는 2년 동안 일하면서 활동가끼리만 부대꼈지 정작 주민은 만난 적이 별로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사회적경제가 발전하는데 정부가 크게 기여를 하고 있지만 획일적인 사례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 맞는 사회적경제가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아래로부터 생태계가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 평범한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시작으로 아래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동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아래로부터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가 늘 고민일 뿐이다. 이러한 고민에 지혜를 보태기 위해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가 영국 런던 브릭스턴 활동가 두 명을 초청했다.

11월 27~28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는 소피아 버스타만티(왼쪽)와 마마딩 시세이(오른쪽)를 초청해 사회적경제, 마을만들기, 사회혁신의 새로운 비약을 위한 집중 워크숍을 진행했다.

소피아 버스타만티(Sofia Bustamante)와 마마딩 시세이(Mamading Ceesay)는 2009년 영국 런던 브릭스턴에 런던 크리에이티브 랩스(London Creative Labs)를 설립해 쇠퇴한 브릭스턴을 다시 살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소피아 버스타만티는 생태 시스템 디자이너이자 집단 퍼실리테이터이다. 마마딩 시세이는 시스템 차원의 혁신과 생태 시스템 디자인에 초점을 두고 창조적 파괴의 사회 혁신을 이루고 있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브릭스턴이 어떤 실험을 했는지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가설을 만들고 어떻게 실험할 것인가?' 고민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브릭스턴은 인종갈등, 범죄, 폭동, 높은 실업률, 쇠퇴한 상권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산재해 있었지만 지방정부는 통제로만 일관했고 지역사회조직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한 세대가 사라져버렸다고 할 만큼 오래 시간 방치돼왔다. 지역사회 조직화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노동조합이나 총회를 통해 조직화를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런 브릭스턴에 2009년에서 2015년 사이에 엄청난 협업과 마법 같은 성과들이 나타난다.

기존의 조직화 방식은 기계적인 관점에서 나오는 방식이었다. 일단 구조부터 만들고 계획하고 실행했다. 어떠한 계획도 전쟁터에서는 유효하지 않다는 말이 있듯, 지역을 계획대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그런 관점, 그런 방법이 문제였다. 삶, 사람, 조직, 지역은 기계적이 아니라 자연, 즉 생명체 시스템(living system)이라고 관점을 바꿨다.

지역공동체를 하나의 구조로 보기보다 살아있는 정원으로 생각했다. 정원에는 흙이 있고 무언가 자라게 되는데, 어떤 나무가 자랄지 어떤 풀이 자랄지 모른다. 사실상 예측하기 어렵다. 흙에 씨앗을 심고 가꾸는 과정에 충실하면 건강한 생명이 넘치는 정원을 만들 수 있다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기존처럼 구조부터 만드는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고 과정으로부터 형태가 나오고, 형태에서 구조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그동안 주목하지 않은 촉진적 리더십으로의 전환이 중요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비전 제시 리더십만 주목했다. 촉진적 리더십은 비전적 리더십을 보완하고 비전적 리더들을 다양하게 양성한다. 촉진적 리더십은 한 네트워크의 집단 지성의 힘을 끌어내는 방법, 그 네트워크가 동일한 비전을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과 관련된 지도력이다.

촉진적 리더십을 통해 아이디어, 에너지, 협업 등이 일어나고, 혁신적인 스타트업이나 기업 같은 구체적인 사회적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매개 과정이 없으면 사회 혁신 프로그램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참여수준도 낮아진다. 촉진적 리더십은 마을 조직들의 자원에 더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여러 능력을 갖추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촉진적 리더십을 발휘할 줄 아는 지도자는 집단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찾아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명확히 찾고 그 후에는 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올바른 과정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의 참여를 장려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그리고 결실이 어떤 것이 될 지를 설계하는 것은 또 그 다음의 일이다.

소피아는 "촉진적 리더십은 장벽을 허무는데 유용한 기술이다. 이 기술이 사회적경제 내에 널리 확산된다면 여러 조직적 경계선을 넘어 대규모의 사람 중심의 시스템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피아는 초기에 마을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필요는 무엇인지, 자산은 무엇인지 파악했다. 또한 잠재적인 사업체나 기업의 가능성이 있는 형태도 찾았다. 마을 디자인을 할 때 '주민들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참여시킬 것인가'에 중점을 뒀다. 관계 구축보다 빠른 지름길은 없기 때문이다. 마을 행사를 디자인할 때도 누가 접근하고 있고, 누가 접근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고, 접근하지 않는 사람들의 필요는 무엇인지 직접 찾아다니며 파악했다. 사회적 배제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더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었다. 초기 5년 동안은 더디게 갔다. 그러나 그 이후는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촉진적 리더십은 지방정부에서도 받아들여 지금은 마을과 지방정부가 의제 설정도 공동으로 한다. 지방정부 입장에서 처음에는 권력을 빼앗기는 게 아닐까 하는 위협감을 느꼈지만, '사람들과 함께 하는 권력'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을과 함께 권력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촉진적 리더십의 기술 중 오픈 스페이스가 있다. 오픈 스페이스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중요한 문제를 깊이 씨름하게 만들어준다. 스스로 의제와 목표를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과 열정을 가지게 된다. 구성원이 이질적이거나 복잡할 때 유용한 기술이다.


예를 들면, 주민 16명을 4조로 나눈다. 주제는 '필요'이다.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가? 를 각자 포스트잇이나 전지에 적는다. 한두 가지를 적는 사람도 있고 대여섯 가지를 적는 사람도 있다. 서로 작성한 내용을 보면서 대화하다 보면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다. 연결되는 지점들은 공동의 생각으로 모인다. 그 다음은 테이블을 바꾼다.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다른 조로 각자 흩어진다. 남아있는 한 명은 새로 온 세 명에게 이전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요약해서 전달한다. 새로운 사람들은 이전의 이야기에 새로운 의견을 보탠다. 맨 마지막에는 조별로 작업한 전지를 펼쳐놓고 다 같이 공유한다.


'필요'라는 키워드로 시작한 주제는 확장될 뿐 아니라 몇 가지 키워드로 집중되기도 한다. 개인이 가진 문제의식이 집단적 문제의식임을 확인하고 그 부분을 더 깊이 있게 논의한다.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는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가? 내가 가진 자원은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자원은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당일 진행한 워크숍에서는 '주민이란?' 키워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민의 정체성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이후 토론에서 '나는 주민인가?', '주민을 만나는 방법'으로 고민이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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