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배달노동자들에게는 안전장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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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배달노동자들에게는 안전장치가 없다
[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준비위원장)
  • 2018.10.04 14:07
  • by 박정훈


'어~어~'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오토바이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내 오토바이 바로 앞을 스쳐지나갔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동료다. 반갑게 인사하려다 다른 방식으로 인사할 뻔 했다. 매장에 복귀해서 “야아 그렇게 운전하다 한 번에 훅 간다.”’라고 했지만 희미하게 미소 지을 뿐이다. 이 친구에게 내가 붙여준 별명은 ‘노 브레이크’다. 오토바이 레버를 한 번 당기면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들이 배달 25개 정도 할 때, 그는 35건씩 한다. 맥도날드 라이더들은 시간당 최저임금에 배달 한 건당 400원을 더 받는다. 남들보다 10건 이상씩 하면, 하루 4,000원 주 5일을 일한다면, 월 8만원의 차이가 난다. 이 차이를 위해 누군가는 중앙선을 넘는다.

기본급은 라이더의 안전판

그러나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소속 라이더들은 400원에 목숨 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출근과 퇴근 시간을 채우면 받을 수 있는 기본급도 있다. 더 현실적인 이유는 과태료다. 라이더에게 가장 무서운 경찰은 완전무장하고 총을 든 경찰이 아니라, 소위 ‘빽차’라 불리는 순찰차다. 횡단보도를 보행자와 함께 건너다가 마침 저 멀리서 빨간색과 파란색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면 과태료다. 1차선 도로 바로 건너편에 배달목적지가 있다고 중앙선을 넘다 선글라스를 낀 경찰에 걸리면 4만원이다. 순간 100건의 배달이 날라 간다.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가 원하는 훌륭한 라이더가 되기 위해 35개에서 40개의 배달을 하며 도로를 자유롭게 누비던 나도 분기별로 4만 원짜리 딱지를 끊으면서 신호를 준수하게 됐다. 괜히 무리하게 배달해서 과태료를 얻어맞는 것보다, 신호를 준수하고 안전하게 배달하면서 기본급을 받아가는 게 더 유리한 것이다. 이처럼 라이더들의 기본급이 높을수록 오토바이의 속도는 내려간다. 기본급은 라이더들의 현실적인 안전판이다.

그러나, 어떤 라이더들은 이놈의 안전판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최저임금에 배달 건당 400원으로 주 5일 일해 봐야 월 170만원 남짓이다. 프랜차이즈는 주 5일 8시간 모두 일을 시켜주는 경우도 없다. 라이더들이 배달대행으로 넘어가는 이유다.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라이더들은 보통 배달 1건당 3,000원을 받는다. 이들은 받는 것은 임금이 아닌 건당 수수료로 통계상 기타종사자,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이다. 당연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오토바이 라이더가 신호위반 하는 이유

노동자들은 최소한 최저시급 7,530원을 받고, 여기에 주휴수당까지 합치면 시간당 약 9,000원을 번다. 퇴직금과 연차도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배달대행라이더의 입장에서는 최소 시간당 4개의 배달은 해야 근로자의 신분을 벗어 던진 의미가 있다. 게다가 4대 보험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실업이나, 노후, 사고의 위험부담도 스스로 져야 한다.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여기에 더 큰 위험이 있다. 시간당 배달을 많이 하기 위해 여러 개의 배달을 잡다보면, 배달이 지연되는 위험이 있다. 대행업체의 경우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 늦어서 손님이 취소를 하면 음식 값을 물어야 한다. 3,000원 더 벌려다 1만원이 넘는 음식 값을 물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유다.

한편, 대행업체 라이더들은 신분상 사장님이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지급받을 권리가 없다. 리스로 빌리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던 오토바이로 일을 해야 한다. 또, 오토바이 수리비와 관리비도 든다. 리스비와 관리비까지 생각하면, 시간당 4개도 부족하다. 5~6개는 해야 수지가 맞다. 배달 건수가 안 나오면 하루 10시간 12시간씩, 주5일이 아니라 주6일 일한다. 사장이 없으나 악덕사장보다 악랄한 자기착취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일을 하다보면 당연히 집중력이 떨어진다. 지난 8월 라이더유니온준비모임의 오픈채팅방에는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8시간 근무 후 집에 가다가 70km의 속도로 앞차를 박아버렸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집중력을 잃었다. 사고로 라이더의 코뼈가 완전히 부서졌다. 100프로 오토바이의 과실이지만, 노동자였다면 출퇴근 산재 승인을 다퉈볼 수 있었다. 산재는 무과실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님 신분이라 여지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보험의 문제가 있다. 현재 영업용 오토바이의 경우 유상운송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보험료가 오토바이를 새로 사는 값보다 비싸다. 올해 33살인 내가 출퇴근용 오토바이 보험료로 연 16만 원 정도를 내는데, 유상운송보험료는 약 300만원의 견적이 나왔다. 나이가 어릴수록 보험료는 올라가는데, 거제에서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20대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20대 배달원의 리스비가 월 80만원이 나왔다고 한다. 대부분은 보험료다. 그래서 유상운송보험을 들지 않고 출퇴근 보험만 든 배달노동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만약 사고를 낼 경우 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대안은 뭘까? '도망친다.' 도망에 실패한다면, 사고당사자와 보험회사 직원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운이 나빠 비싼 외제차라도 박는다면, 평생 자동차 수리비를 위해 도로 위를 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현금장사로 많은 이익을 내는 보험회사가 비현실적인 보험료로 사실상의 오토바이 보험가입을 막아놓는 사이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드는 보험비를 내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버리고 일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생기고 있다.

노조 없는 노동자의 플랫폼 필요

최근 직장동료는 '앞으로 부릉(배달대행업체)을 쓰기로 했으니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라'는 통보를 받았다. 주5일 성실하게 일하던 친구였다. 그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데,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최저임금 일자리지만 매일 아침 출근하던 직장을 잃는 것은 상당한 심리적 충격을 준다. 이처럼 1년 이하의 계약직 노동시장, 흔히 알바노동시장이라 불리는 곳에서도 외주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규직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리되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그보다 아래의 노동시장에서 3중 4중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상을 보인다. 여기에 플랫폼노동시장이 등장하면서 기술과 극단적인 노동유연화가 만나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들이 탄생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에 대행업체, 대행기사, 가맹점음식점, 손님이 로그인하게 만들고 이들을 연결하는 방식의 노동형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대행기사는 손님의 심부름이자, 가맹점음식점의 음식배달이자, 대행업체의 업무관리이자, 핸드폰 속 어플의 지시인 배달노동을 수행하면서 도대체 누구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늦어질수록 플랫폼 노동의 안전과 노동조건은 후퇴할 것이다.

신분상 사장님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출퇴근의 관리를 받는 등 대행업체 라이더들 역시 노동자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기본급을 보장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볼 수 있다. 사장들의 최소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라이더뿐만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편의점 사장님들까지도 확대해서 적용해볼 수 있다. 또, 현재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대행업체를 규제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자본금규모로 규제해왔다. 자본금 규모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장비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배달대행업 창업 조건으로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황사 때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겨울한파에는 장갑과 방한용 마스크 등 기후변화에 따른 안전 장비 등을 의무적으로 지급하게 하는 것이다. 폭염과 한파, 폭우와 폭설 시에는 휴업하게 하고, 산재예방차원의 휴업이므로 근로복지공단의 기금을 이용하거나 환경파괴를 일으키는 기업들에게 환경세를 걷어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해볼 수도 있겠다. 고용보험을 의무화해 날씨로 인한 짧은 실업에 대한 보상으로 휴업급여를 지급해볼 수도 있다. 4대보험 가입자에게 휴업급여 등의 구체적인 지원이 있다면, 비용 때문에 가입을 꺼렸던 특수고용노동자들도 가입을 원할 것이다. 산재가입자에게는 오토바이보험료를 대폭인하해서 오토바이보험료 현실화와 산재의무가입을 동시에 시도해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라이더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노조가 필요하다.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님이라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면 차라리 일하는 사장들에게도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 라이더뿐만 아니라 본사의 갑질에 피해를 보는 가맹 점주들도 단체를 만들어 실력행사를 할 수 있다. 망상일까? 확실한 것은 기존의 4대보험이나 근로기준법으로는 보호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고, 이들을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플랫폼회사, 대행업체 등의 기업, 정부와 지자체, 배달노동자들이 협상테이블을 만들고 만나야 한다. 이윤을 위해 접속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플랫폼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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