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경기, '관람' 아닌 '참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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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경기, '관람' 아닌 '참가'가 필요하다
'1+7분 민주주의 토크콘서트-민주주의, 일상으로의 초대' 개최
환경·언어·젠더·교육·AI·문해력·돌봄·청년 등 8개 주제로 '일상 민주주의' 강연 진행
  • 2023.09.21 11:39
  • by 노윤정 기자
▲ '1+7분 민주주의 토크콘서트-민주주의, 일상으로의 초대' 1부 토론 모습. ⓒ라이프인
▲ '1+7분 민주주의 토크콘서트-민주주의, 일상으로의 초대' 1부 토론 모습. ⓒ라이프인

사람들은 '정치'라는 말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정당, 국회의원, 대통령, 혹은 서울 여의도라는 지역명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보니 정치를 '나의 일이 아닌 영역'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삶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사결정 행위가 결국 '정치'다. 정치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체계이자 행위이며, 그런 만큼 개인의 일상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가 최선이라고 합의한 정치 체제인 민주주의를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민주주의의 날인 지난 9월 15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다목적홀 숲에서 '1+7분 민주주의 토크콘서트-민주주의, 일상으로의 초대'가 열렸다. 이번 민주주의 토크콘서트에서는 ▲환경 ▲언어 ▲젠더 ▲교육 ▲인공지능(AI) ▲리터러시(문해력) ▲돌봄 ▲청년 등을 열쇳말로 하여 일상 속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라이프인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라이프인

첫 번째 강연은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맡아 '기후위기와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논했다. 최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에 온갖 양상의 갈등들이 산재해 있다고 말하며 "민주주의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좋을 것이라는 기대로 채택한 제도다. 그런데 민주주의만큼 갈등 해결에 무기력한 제도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리 사회가 채택하고 있는 현 정체 체제가 시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그는 정치인들이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공약이나 정책을 내놓지 않는 점을 들어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은 소위 가진 자들이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의 위기, 교육 문제를 우리만큼 절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힘'을 확인한 실례로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경험을 언급했다. 인류는 과학 발전에 힘입어 빠르게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했다. 그 과정에서 인상적인 점은 '누가 먼저 백신을 접종할 것인가'를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한 사실이다. 최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을 아이를 돌보는 선생님들, 요양원의 어르신들, 의료진이 먼저 맞을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이른바 가진 자들,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들이 먼저 맞겠다고 주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는 재앙에서 홀로 살아남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민주주의를 제대로만 영위하면 모두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팬데믹 이후의 일상이 과거보다 개선된 일상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담은 뉴업노멀(New Up-Normal)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우리에게는 더 멋진 일상, 더 멋진 민주사회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이 역량을 함께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라이프인
▲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라이프인

이어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민주주의와 언어감수성'을 주제로 하여, 가장 일상적인 '언어'에 민감성을 갖고 점검함으로써 일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언어 감수성이란 '언어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추어서 일상 언어 속에 담긴 차별, 불평등, 반인권, 비민주적 요소를 감시해 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으로써 약속을 만드는 집단의 사고관이 담긴다. 동시에 언어 사용자들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안에 담긴 사고관을 내재화한다. 이에 신 교수는 "우리는 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은데 언어가 차별주의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면, 언어를 우리의 생각을 잘 담을 수 있는 도구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신 교수가 언어에 반영되고, 언어로서 강화되는 차별주의적 인식으로 예로 든 것은 한국의 연령차별 의식이다. 그는 한국의 문화를 "나이에 가장 민감하고 초면에 나이를 묻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리하며, 해당 문화의 이면에 언어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즉, 한국어는 공손함을 드러내야 하는 상대를 함부로 너 혹은 당신이라고 지칭하거나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언어(2인칭 대명사의 사용이 특징적)이기에 호칭어가 발달했고, 호칭에 중요하게 반영되는 정보는 성별과 연령이다. 그리고 한국어는 높임법이 발달한 언어로서 사람의 서열 관계를 따지도록 하는데, 서열을 측정하는 주요한 기준 또한 연령이다. 이것이 한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상대의 나이를 묻게 되는 이유다.

신 교수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평등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매일 사용하는 우리의 언어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다고 가르친다"며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설정하고 언어의 사용으로 그 권력관계를 일상화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상태에서 과연 평등한 대화와 토론이 가능할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민주사회는 다양한 목소리가 서로 힘을 합쳐서 더 나은 생각을 키워가는 사회"라는 말로 평등한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금 짚은 뒤 "한국어 사용자들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고, 그 약속은 우리가 만든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연령보다 신분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바뀌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 엄혜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라이프인
▲ 엄혜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라이프인

세 번째 연사인 엄혜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모두를 위한 젠더 민주주의'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먼저 '젠더'를 '성적(性的) 차이가 사회를 어떻게 조직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 뒤 젠더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고찰했다.

엄 교수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동하고 발전한 고대 민주주의의 한계로서 성인 자유민 남성에게만 시민권을 부여한 점을 들었다. 고대 민주주의가 이처럼 대다수의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기획된 이유는 모든 만물이 우등한 존재와 열등한 존재로 나뉜다고 믿었던 당시의 '위계적 인간학'이 기저에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기획된 근대 민주주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평등의 인간학'이 보편화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외쳤던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시민의 권리는 여전히 백인 자본가 남성 위주로 주어졌다. 평등 인간학을 기저에 두고 기획된 근대 민주주의가 왜 불평등을 재생산하게 됐을까?

이에 대해 엄 교수는 평등의 인간학이 전제하고 있는 데카르트 철학으로부터 답을 도출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이성적 사유의 힘을 갖고 있기에 모두가 존엄하고 위대하다고 주장했으며, 이와 같은 공통의 특성이 '평등'을 말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다만 문제는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형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를 배제하는 방식, 즉 타자화 방식을 사용했다. 그리고 신체적 특징을 '사유하지 못하는' 이유로 삼았다. 바로 여기에서 '성적 대상화'가 발생하는데, 엄 교수는 "인간은 누구나 성적 존재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성적 존재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성적 대상화는 나의 다면적이고 중첩적인 정체성을 오로지 성적 존재로만 환원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근대 민주주의 기획은 여성을 성적 존재로 귀속시킴으로써 타자화했다. 이에 엄 교수는 "여전히 일터가 남성을 표준으로 삼고 있지 않은지, 돌봄의 영역을 여전히 여성의 영역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은지, 이런 부분들을 검토해 봐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뜻을 모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모두를 위한 젠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 ⓒ라이프인
▲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 ⓒ라이프인

이후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가 '지속 가능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이어 갔다. 김 교수는 현 민주주의가 겪는 위기로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 ▲관계의 결손 등 두 가지를 꼽았다. 이어, 해당 두 관점에서 한국의 교육을 들여다봤을 때 △정보를 판별하거나 사실과 의견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의 부족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학교 안에서의 친밀한 관계 형성 어려움 등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는 "어떻게 시민교육을 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교과목, 범교과 활동, 에토스(특유하고 고유한 관습), 타 공동체와의 연계 등의 관점에서 시민교육을 살펴볼 수 있음을 설명했다.

특히 김 교수는 '타 공동체와의 연계 안에서의 시민교육'에 주목했다. 그는 주민참여예산 제도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동네에서 방치된 놀이터 공간을 재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서울의 한 고등학교 사례를 들면서 "(이런 활동들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주인이고 시민으로서 존재한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활성화돼야 한다"라고 말하며,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규칙을 조율하고, 갈등을 겪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이해관계 조정'과 '갈등 해결'이라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측면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아이들에게 이러한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고 있는지를 지적하며, 시민교육의 측면에서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조병영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라이프인
▲ 조병영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라이프인

조병영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민주주의와 문해력(Literacy)'라는 경연 주제로, 몇 가지 문제를 같이 풀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가려내는 작업을 청중과 함께했다. 그는 "근대 사회는 상징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징체계로 의미를 만들어 내고 의사소통한다. 그 의미를 표상하는 것을 기호라고 한다"며 문해력을 기호들에서 정보를 파악하고 기호들이 나타내는 정보의 일치점과 일관성을 읽어내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자신의 연구팀이 진행한 성인 문해력 테스트(20~40대 성인 350명 참여) 결과를 공유하며 "정보 간의 일치점이 없다면 해당 정보는 허위 정보다. 그런데 상당 수의 분들이 정보들 사이 일치점이 없다는 점을 발견하고도 해당 정보의 신뢰성에 대해 '믿기 어렵다'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기한 문해력 테스트에서 응답자 350명 중 이날 현장에서 풀었던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여 푼 사람은 90명이었으며, 그중 해당 정보를 '믿기 어려운 정보'라고 판단한 사람은 22명이었다.

조 교수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정보 판별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쉽고 관성적으로 읽는 방식이 몸에 익어서 그렇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조 교수는 "문해력은 읽고 쓰는 능력일 뿐 아니라 읽고 쓰는 태도이자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민주주의는 관람 경기가 아니다. 내가 참여하는 경기다. 우리가 일상에서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정확하게 읽고 잘 판단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 (왼쪽부터) 이상욱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 조병영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조기현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대표,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 ⓒ라이프인
▲ (왼쪽부터) 이상욱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 조병영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조기현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대표,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 ⓒ라이프인

이날 행사에서 이상욱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 또한 인공지능과 민주주의를 열쇳말로 하여 '인공지능이 만든 정보의 신뢰성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며, 조기현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대표는 현재 돌봄 노동이 50대 이상 여성에게 편중된 점을 지적한 뒤 '돌봄 민주주의' 시각에 기반하여 "모든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로서 돌봄을 수행하는 사회로 재편하자"고 제언했다. 마지막 강연자로 나선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는 젊은 정치인을 키워내는 일과 민주주의 발전의 상관관계를 설명했으며 "요즘 우리는 우리가 뽑고 싶은 사람의 표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선거를 '결과'로만 보지만, 선거는 누가 우리를 대표하길 바라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길 바라며, 여러 이해관계와 욕망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과정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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