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준택원산경제대학의 정준택은 개성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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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준택원산경제대학의 정준택은 개성사람이었다?
  • 2020.06.03 09:30
  • by 이찬우 (테이쿄대학 교수)

평양에 인민경제대학이 있다면, 지방에 같은 급의 경제대학이 세워진 유일한 곳이 원산이다. 대학 이름은 정준택원산경제대학. 북한에서 경제대학으로 쌍두마차다. 정준택원산경제대학은 1960년 9월에 원산경제대학으로 신설되어 입학생은 전국에서 뽑았고 졸업생은 북한경제의 핵심 일군으로서 전국에 배치되었다. 경제 일군이 되려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대학이다. 2015년에는 북한에서 처음으로 원격교육학부(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직장을 다니면서 들을 수 있음) 신입생을 받아 2019년 8월29일에 제1기 졸업식이 열리기도 했다. 

▲ 정준택원산경제대학 입구 ⓒ 평화문제연구소
▲ 정준택원산경제대학 입구 ⓒ 평화문제연구소

원산경제대학의 이름은 1990년 10월에 정준택경제대학으로 바뀌고 1997년에 지금 이름인 정준택원산경제대학으로 되었다. 1990년에 김일성 주석(당시)이 정준택을 기념해서 그리한 것인데 정준택은 북한에서 해방 후 1960년대까지 북한의 계획경제를 이끌던 경제참모였다. 1946년부터 임시인민위원회 산업국장으로 시작해서 1948년 내각 계획위원회 초대위원장, 화학공업상, 부수상을 지내고 1972년부터 정무원 부총리, 그리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후보위원을 역임하였다.

▲ 북조선인민위원회 계획국장 시절의 정준택 ⓒ 노동신문(1948년 7월 7일)
▲ 북조선인민위원회 계획국장 시절의 정준택 ⓒ 노동신문(1948년 7월 7일)

원산경제대학의 이름에 정준택을 넣은 이유가 정준택의 고향이 원산이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상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찾아보았다. “1911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일제시기 화학공장 기사로 활동하였다”로 나온다. 1911년 함경남도라면 원산일 가능성도 있어 기대를 갖고 북한자료를 찾아보았다.

노동신문에 난 부고와 공식 약력(노동신문 1973년 1월12일)을 보니 정준택은 1911년 1월12일 출생, 1973년 1월11일 심장마비로 사망. 경기도 부평군의 인텔리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나온다. 원산이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경성고등공업학교의 자료를 찾아보았다. 경성고등공업학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이다. 총독부 관보를 통해 확인하니 소화11년 (1936년) 3월에 광산학과 졸업생 10명 중에 포함되어 있고 본적지는 "경기"로 적혀있다. 함경남도가 아니었다.

▲ 총독부 관보(1936년 3월 20일) ⓒ국립중앙도서관
▲ 총독부 관보(1936년 3월 20일)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학적부를 조사해보았다. "1911년 1월 11일생, 개성에서 성장, 1928년 송도고등보통학교 졸업, 본적은 경기도 파주, 후에 경성부 관철동으로 이사. 1933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입학, 1936년 졸업(주: 당시 고등공업학교는 3년제), 제3학년 우등상을 받음. 보증인 모친 오정근, 친척 최선익. 입학전 동경자혜의과대학 예과로 입학, 학자금 결핍으로 중도퇴학"으로 나온다(서울대학교개학반세기사,1895-1946).

도쿄에 있는 일본자혜의과대학에 알아보았다. 결과는 정준택이 1929년 입학자인데 졸업자 명부엔 없음을 확인했다. 출신은 송도로 나오니 개성이다. 

그리고 노동신문(1988년 9월 28일)과 김일성종합대학 인터넷 홈페이지 [룡남산](www.ryongnamsan.edu.kp) (2019년 9월 12일)에 정준택 소개자료가 있는데 두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정준택은 1911년 1월 경기도에서 군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당시)를 마치고 의사가 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갔다. 그러나 그는 <적색독서회사건>에 관계했다는 이유로 년 만에 의과대학에서 출학당하였고 그 후 고등공업학교를 마치고 선광기사가 되었다. 그는 일본 미쯔비시광업회사 산하 효고현 이꾸노 광산에 취직하여 일하면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천대와 멸시를 받았다. 다시 조국에 돌아온 그는 황해도의 어느 한 광산에서 일하다가 1945년 8월 조국해방의 날을 맞이하였다. 

북한 자료와 따로 확인한 자료를 종합해 보면 정준택은 1911년에 경기도 부평이거나 파주에서 태어나고 개성에서 자라 고등학교(송도고등보통학교)까지 다녔다. 그리고1929년에 동경자혜의과대학에 유학했다가 학자금 부족 또는 "적색독서회사건" 등 사회주의활동으로 인한 퇴학처분으로 중도에 돌아와 1933년에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대 공대 전신)에 입학해서 1936년에 졸업하였다. 학적부에 부친의 성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릴 때 부친이 사망하였거나 기타 다른 집안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보증인이 모친과 친척 최선익인데 최선익은 당시 개성의 유명한 갑부로 조선중앙일보의 발행인(사장 여운형)이었다. 최선익이 부계 친척인지 모계 친척인지 모르나 정준택을 개성사람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관련항목을 수정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한국의 [조갑제닷컴] 등에 보면 정준택이 일본군 소속이며 친일파였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근거가 있는지 그의 약력을 확인해보았다.

정준택은 1936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미츠비시광업회사(三菱鉱業)의 효고현 (兵庫県) 이쿠노 광산(生野鉱山)에서 선광기사로 일하였다. 당시에 일본의 광산에는 조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광부로 강제노동을 하였다. 미츠비시광업 이쿠노광산의 역사를 보면 1939년 12월부터 조선인 강제연행과 강제노동이 시작되었고 노동자 수 도 1938년 1,700명에서서 1943년에 2,600명을 넘겼다. 이 시기에 정준택이 이쿠노 광산에 선광기사로 있었다면 조선인 징용문제에 어떠한 태도였을까 궁금해진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다.

조선에 다시 돌아온 정준택은 1943년에 황해도 곡산의 백년광산(후의 만년 광산)에 선광기사로 들어간다. 정준택은 백년광산에서 해방을 맞고 일본인 기술자들이 귀국하면서 광산장으로 경영을 담당하였다. 그 후 1945년 11월 김일성이 정준택을 평양으로 불러 경제참모 역할을 맡기게 된다. 

문제는 이 황해도 곡산의 백년광산인데 해방 전 고바야시광업(小林鉱業)이 소유한 텅스텐 광산이었다. 사장 고바아시 우네오(小林采男1894-1979)는 일본 내각자원국에 근무한 관료이자 광산기사이며 식민지 조선에서 광산경영을 하면서 총독부의 광산정책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당시 일본제국에서 텅스텐 생산의 95%가 조선이었고 그중 75%가 고바야시광업에서 나왔다.

고바야시광업에 유명한 텅스텐광산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강원도 영월의 상동광산으로 해방 후 한국 최대의 텅스텐광산으로서 대한중석 상동광업소가 되어 박정희 정권 때 박태준에게 사장을 시킨 곳이다(1992년 채굴중단). 또 하나가 황해도 곡산군(현 황해북도 신평군)의 백년산 기슭에 있는 백년광산이었다. 상동광산보다 훨씬 많은 텅스텐을 채굴해서 조선최대의 텅스텐광산이었다. 1958년 김일성수상(당시)이 백년광산을 현지지도하면서 이 자원이면 나라가 만년동안 부강할 수 있다고 이름을 만년광산으로 개명하도록 한 곳이다. 일본에 거의 없고 한반도에 무진장한 텅스텐은 텅스텐합금강인 페로텅스텐과 메탈릭텅스텐 등 특수강으로 가공되어 탱크 포신 등 무기재료로 쓰이는 중요한 군수물자였다. 일제시대에 백년광산이 텅스텐을 채굴하고 계열 제련소로 운반하여 군수물자인 페로텅스텐과 메탈릭텅스텐을 생산했다.  

이 시기에 정준택이 군수물자 생산에 어느 정도 관여하였는지는 밝혀진 것이 없고 그의 약력에 일본군과 관련된 기록도 찾을 수 없다. 만주를 다녔다는 이야기가 노동신문에도 일부 소개되는데 구체적인 내용 언급은 없다.

정준택을 친일파로 규정하려면 명백한 근거가 있어야 하겠는데 그 근거를 찾지 못하였다. 북한은 그를 식민지 인텔리 출신으로 해방후 자본가에 충성한 과거를 뉘우치고 새나라 산업건설에 충성한 인물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참모 정준택의 고향이 혹시 원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조사해보았는데. 조사 결과는 개성이 고향(출생지는 부평 또는 파주)인 인텔리 광산기사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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