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로 만난 위험세상과 우리 사회의 민낯
가습기살균제는 우리 사회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괴물’이었다. 누가 왜 그런 괴물을 만들게 되었던 것일까.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 특위 활동을 통해 그 실상이 조금은 드러났다. 필요가 있으면 만들어 내고, 그것을 기업이 주도한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한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이다. 그 어딘가에서 가습기살균제도 태어났을 것이다. 누구도 그것이 괴물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청난 피해규모와 그로 인해 누군가는 이익을 봤을 참사를 두고 ‘살인죄’를 묻지 못하는 이유이다. 정당한 것일까.
이 사건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일로 여기고 개탄했다. 한 동안 그랬다. 아니 감당할 수 없는 일이거나, 손을 대기 보다는 적당하게 덮어 두는 것이 용이한 일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참사의 피해규모에 비해 문제해결의 속도가 너무 더딘 것은 그런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당사자로 2011년 9월부터 사건 현장의 한 복판에 서 있게 되었다. 어느덧 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얄궂은 운명이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피해자와 가족, 그 누구도 본인들이 비극적인 삶의 당사자가 될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조건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가습기살균제를 마주했다. 가족을 보호하고자 했다. 행복하고자 한 노력, 행위가 한 순간 비극의 선택이 되어버렸다. 당사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운명에 버거운 삶을 지탱해야만 했다.
동시에 하나의 선택에서 행복과 비극이 극렬하게 나뉠 수 있다고 하는 우리사회의 위험을 직시하게 됐다. 위험을 사회에 맡기는 것이 지극히 온당하고 상식이라고 믿었었다. 이러한 상식과 믿음은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통해 확인했다. 위험의 예방은 위임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당사자 운동, 활동을 해가면서 동시에 기록하는 일을 선택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통해 위험사회를 질문하고 그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시간 당사자로 참여하면서 겪은 문제들과 문제의식, 그리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질문과 대답 속에서 기록의 책무를 생각하게 됐다.
라이프인 창간과 함께 그 일을 시작했다. 생활 속에서 ‘안전’을 키워드로 활동하는 활동가들,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활동을 기록하고자 한다. 피해 당사자들의 남은 이야기도 기록하고자 한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사회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추적하고자 한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이야기를 수렴해서 함께 만들어보고자 한다.
가습기살균제를 키워드로 해서 우리 사회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들도 탐색해보고자 한다.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향하는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연대감도 느껴보고 싶다. 이제 그 여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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