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경제는 노동운동의 핵심전략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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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대경제는 노동운동의 핵심전략이 돼야 한다
[2018 노동절 특집 컬럼]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 2018.04.30 16:33
  • by 라이프인


과거 혁명의 시대, 운동에 요구되는 핵심은 투쟁이었다.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는 혁명 이후로 유보했다. 그 시대 운동은 혁명을 위해 감옥도 고문도 기꺼이 감내했다. 가족의 안위도 팽개쳤다. 일제하 독립운동이 그랬다. 80년대 운동, 그리고 노동운동의 한 시대가 그랬다.

지금의 노동운동은 구속도 해고도 겁낸다. 다들 생계에 얽매었다. 운동도 투쟁도 적당한 선을 넘지 않는다. 한때는 그런 모습에 쌍욕까지 섞어 비판했다. 상대 정파 비난의 근거로 써먹기도 했다. 한데 아니었다. 개량주의 정파든 혁명주의 정파든 똑같은 모습이다. 

적당한 선을 넘지 않는 흐름은 당연한 현상이다. 80년대 혁명주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동운동이 시대 변화를 읽지 못했을 따름이다. 긴 일상을 살아야 하는 개량의 시대라는 특징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개량의 시대는 이미 80년대부터, 그러니까 한국 운동이 혁명의 시대로 인식하고 투쟁했던 그때부터 움트고 있었다.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랬으면서도, 직감은 변화를 느꼈고, 그래서 혁명주의든 개량주의든 자신의 운동과 삶을 긴 일상의 시대에 적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운동의 변질이 아니었다. 머리가 읽지 못한 변화를 육감이 앞서서 읽은 것이다.

긴 일상의 시대는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기본 중 기본이다. 그것이 훼손된 사회에서는 환경운동도 여성운동도 교육운동도 그 어떤 운동도 꽃필 수 없다. 사회에 만연한 온갖 혐오 현상과 반인권 풍토, 환경 파괴 흐름의 밑바탕엔 대중의 팍팍한 삶이 깔려 있다. 내 운동 아니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평론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운동이 같이 풀어야할 숙제다.

물론 노동운동이 분발해야 한다. 노동자끼리도 갈가리 찢어진 사회에서 노동운동이 긴 일상의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보태야할 전략이 있다. ‘사회연대’전략과 ‘개입’전략과 ‘사회적경제’전략이다.

일제하 노동운동이 결성한 조선노동공제회는 1921년 7월 15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한국 최초의 소비조합상점을 설치했다.

첫째, 사회연대전략이다. 밑바닥에서 절망하는 청년 및 주변부노동과 손잡는 세상을 위해서라면, 내 몫 내놓는 연대의 가치를 선도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를 움직이고 재벌을 압박할 수 있다.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 

보건의료노조가 정규직 임금인상분을 비정규직 연대에 내놨다. 양대노총 공공부문은 성과연봉제 인센티브로 상생연대기금을 만들었다. 금속노조는 위 인상률은 낮추고 아래 인상률은 높이는 하후상박을 결의했다. 금융노조와 사무금융노조는 사회연대기금을 각각 결의했다. 불과 작년 초만 해도 긴가민가했던, 그게 되겠냐며 코웃음 쳤던 전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장으로 깊게 파고들고 사회로 확산돼야 한다. 

둘째, 개입전략이다. 긴 일상의 시대를 산다는 것은 기약 없는 미래로 일상을 미루는 게 아니라, 비록 자본주의 체제라도 지금 여기에서 개량한다는 의미다. 밑바닥의 일상 삶에서는 살아서의 1만원이 죽어서의 1억보다 절박하다. 그것의 실현에서 투쟁전략 못지않게 유의미한 것은 개입전략이다. 정부도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누구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개입전략을 거부했던 민주노총에 변화 흐름이 있다. 일자리위에 들어갔다. 노사정위를 대체하는 경제사회노동위에도 들어갈 듯싶다. 국민연금 등의 운영에 노조가 참여하는 유럽식 겐트시스템을 당위에서 현실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노조의 산업정책 참여도 실제로 구상한다.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 노조는 노동이사에 참여했다. 

정부와 정치 등에 진출하는 것을 개인 선택으로 한정해선 안 된다. 변절로 치부하고 방치해도 안 된다. 노동정치를 투쟁 수단으로 한정해도 안 된다. 운동은 더 많은 활동가를 정부와 정치 등에 파견해야 한다. 경영에도 참여해야 한다. 운동이 주어가 돼서, 더 많이 더 넓게 개입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경제전략이다. 노동운동이 대안 실험으로 사회적경제를 바라본 적이 잠시 있기는 했다. 90년대 중반에 몬드라곤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전략으로 시도하지 못했다. 투쟁만으로도 벅찼다. 그 뒤로는 무시하고 거부했다. 자본주의 체제 안의 개량이라는 이유였다. 자본주의의 착취 본성을 가리는 개량주의 운동이라는 이유였다. 그러고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희미하다. 

사회적경제는 이윤 중심으로 운영되는 자본경제보다 나은 시스템이다. 사회적경제는 기업민주주의를 확장하는 매개다. 공동으로 소유·분배하는 실험이다. 연대의 가치를 확장하는 경제운동이다. 무엇보다 극단의 양극화에 절망한 밑바닥의 팍팍한 당장의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생활운동이다. 한참 전부터 긴 일상에 적응한 노동운동이 밑바닥의 긴 일상을 방치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노동조합과 사회적경제는 노동운동의 한 배에서 나온 핏줄이다. 사회적경제는 다시 노동운동의 핵심전략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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