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에 부쳐-전태일은 사회적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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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50주기에 부쳐-전태일은 사회적 경제다
  • 2020.11.15 23:42
  • by 한석호(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직무대행)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전태일을 알고 있는지 물었는데, 응답자의 81%가 알고 있다고 했다. 높은 수치였다.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궁금했다. 전태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 대부분 분신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평화시장 청년노동자 정도를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확인한 점이기도 하다. 대다수는 전태일을 분신한 노동자로 알고 있다. 

전태일의 풀빵과 모범업체를 봉인에서 해제해야 한다

분신은 그 자체로 매우 충격적이다. 스스로 죽는 것도 충격인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는다는 것은 더욱 충격이다. 뇌리에 강렬하게 남는 행위다. 그래서 전태일을 분신으로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거기에 1980년대 학생운동과 이후 노동운동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한국의 운동은 전태일을 분신으로 상징화했다. 그리고 노동의 울타리에 묶어두었다. 

전태일이 분신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전태일을 분신으로 기억한다고 해서 탓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제 넘어서야 한다. 분신을 따르자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전태일의 삶과 죽음에 담긴 정신에서 분신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숭고한 헌신이 분명하지만, 분신은 전태일의 한 부분이다. 전태일에게는 배우고 실천하며 따라야 할 더 많은 정신이 있다. 

80년대 체제변혁운동과 이후의 노동운동은 전태일 정신 중에서 실천정신만 호명했다. 동료 재단사를 규합해서 바보회·삼동회를 만들고, 근로기준법이 지켜지는 평화시장을 위해 실천하고, 해고되고, 집회하고, 끝내 나를 모르는 모든 나까지 품어 안으며 산화한 불굴의 전태일. 그 전태일을 호명한 것은 정당했다. 국민을 죽인 군사독재정권 치하였고, 노동자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던 시대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 호명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전태일의 다른 정신을 외면하고 봉인했다는 점이다. 운동은 풀빵정신을 외면했고, 모범업체정신을 봉인했다. 80년대 운동에 인적 맥을 두고 있는 사회적 경제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다. 

전태일처럼 나누면서 연대해야 한다

아동노동이 용인되던 시대였다. 주로 가난한 가정형편의 어린 소녀가 아동노동으로 내몰렸다. 돈을 벌어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에 보태라는 이유였다. 집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니까 입 하나라도 덜자는 이유도 보태졌다. 평균 열서넛 또래였다. 평화시장 시다로 하루 14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면서도 늘 배가 고팠다. 서러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전태일은 외면하지 않았다. 자신의 버스비를 탈탈 털어 풀빵을 사줬다. 그러고서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창동 판잣집까지 12킬로 넘는 거리를 걷고 뛰며 퇴근했다. 자신 또한 장시간 노동에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으로 밤 12시 임박해서 허청허청 걷고 뛰며 퇴근한 것이다. 그러다 야간통행금지에 걸려 파출소에서 쪼그려 자기도 했다. 전태일은 가진 것이 많아 나눈 것이 아니었다. 전태일 호칭 앞에 아름다운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전태일의 풀빵정신이다. 

▲전태일 ⓒ전태일재단
▲전태일 ⓒ전태일재단

각자도생, 오로지 나뿐인 나쁜 세상으로 흐르려고 하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정신이다. 상위 10% 중심부 노동과 하위 50% 주변부 노동이 휴전선만큼 분단된 상황에서 절박하게 필요한 정신이다. 내 것을 나눌 수 있을 때 연대는 접착제처럼 강력해진다. 상층에 진입한 내 몫 꾹 움켜쥐고, 또 내 몫만 계속 늘리면서 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 몫을 움켜쥐고 늘리는 만큼 밑바닥의 누군가는 제자리를 맴돌거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국공 사태의 슬픈 현실이다. 한국은 미국처럼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를 점유하는 불평등 국가다.

사회적 경제가 전태일을 받아야 한다

분신항거 1년 전, 전태일은 야심 찬 기획을 구상했다. 성공했다면, 아마 전태일은 분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지금은 사회적 경제의 대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정당한 세금을 물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서도, 제품 계통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경제인에게 입증시키고, 사회의 여러 악조건 속에 무성의하게 방치된 어린 동심들을 하루 한시라도 빨리 구출하자는' 목적이었다. 8시간 노동으로, 월 1만 원 선의 미싱사에게는 3만 원, 1천 원 선의 시다에게는 8천 원을 지급하는 계획이었다. 지방 출신을 위한 단체 기숙사 생활제도로써 단체 생활의 이점을 살려 협력 정신을 기르려고 했다. 졸업생이 사업을 할 경우는 근로기준법 준수를 전제로 하려고 했다. 노트 30쪽에 빽빽하게 구상을 했다. 

표현은 투박하다. 지금의 사회적 경제처럼 세련된 용어도 없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전태일이 구상한 모범업체 태일피복의 정신은 사회연대경제다. 

미싱 50대, 종업원 157명, 자본금 3천만 원. 문제는 자본금이었다. 전태일은 가난한 집의 자식이었다. 학교라고는 국민학교 1년에 공민학교 1년, 합쳐서 겨우 2년이었다. 인맥도 학맥도 없었다. 전태일은 3천만 원을 마련하려고 한쪽 눈을 팔려고 했다. 사람의 눈을 신문 광고로도 사고파는 시대였다. 팔겠다고 편지까지 썼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편지는 반송됐고, 눈을 팔지 못했다. 전태일의 태일피복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전태일의 모범업체정신은 미완으로 남았다. 그 꿈을 사회적 경제가 실현하고 있다. 이제 당당하게 또 정당하게 전태일의 모범업체정신을 노래해야 한다. 자본가계급은 타도 대상이라는 노선으로 과거의 운동이 봉인했고 지금도 봉인에서 자유롭게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전태일의 모범업체정신을 풀어야 한다. 훨훨 날게 해야 한다. 

202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실천과 풀빵과 모범업체를 들고 세상에 다가온 지 50년 되는 날이다. 그동안의 전태일은 노동 전태일, 청년 전태일이었다. 앞으로의 전태일은 사회적 경제 전태일이 되어야 한다. 전태일은 사회적 경제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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