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농부들의 기후행동②] 기후불평등이 케랄라 농부들에게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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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농부들의 기후행동②] 기후불평등이 케랄라 농부들에게 미치는 영향
  • 2024.03.20 12:00
  • by 이미옥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박사수료)

1980년 남인도 케랄라 산악지역의 향신료 재배 소농들과 젊은 가톨릭 신부가 설립한 비영리조직 PDS(Peermade Development Society)는 관행농법의 폐해와 산업화된 대규모 농식품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 속에서도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며 살고 있다. PDS가 위치한 서고츠(Western Ghats)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곳이며, 생물다양성을 기반으로 고대부터 후추, 카다멈, 생강, 강황 등 향신료의 원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들은 쉽지 않은 유기농법 전환과 인증 및 모니터링 체계, 전체 가치사슬의 규모화와 전문화, 혁신적인 리더십, 선진국 소비자단체들과의 공정무역, 장기적인 파트너십 등을 쌓아왔다.

본 기획기사는 공정무역과 협동조합 분야에서 연구하고 활동해온 두 명의 연구자가 인도 최남단 케랄라 지역을 방문하고 연구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2022년 6월~23년 7월). 이를 통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향신료 농부들의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소개하고, 여러 도전과제 및 어려움 속에서 이를 극복하며 도전해 온 노력의 흔적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전 세계인의 과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케랄라의 향신료 농부들과 같은 농식품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이해와 공감, 적극적인 협력과 연대가 필요함을 알리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인도 유기향신료 생산지를 향해가는 길, 낯설다

인도 서남부 인도양을 따라 길쭉하게 자리 잡은 지역이 케랄라(Kerala)주다. 중고등학교 지리시간을 통해 들어봄 직한 데칸고원(Deccan Plateau)이 인도의 중부에 크게 자리잡으면서 북인도와 남인도를 가른다. 그 아래 서고츠산맥, 동고츠산맥이 우리나라 태백산맥처럼 등줄기 역할을 하며 인도 최남단 역삼각뿔에서 교차한다. 케랄라주는 최남단 좌측에 위치한 곳으로 3천 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향신료 재배의 심장'으로 알려지며 로마와 중동, 유럽 등의 다양한 나라들과 향신료 무역을 해온 지역이다.

커피, 카카오,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부들과 낮은 판매가격, 중간 상인들의 횡포, 단일작물재배와 농약, 살충제 남용, 거대 농식품기업들의 높은 수익률과 고성장 뒤에 존재하는 공정하지 않은 거래조건, 그리고 산림파괴와 기후위기의 이야기가 처음엔 일부에 한정된 것들인 줄 알았다. 10여년 간 공정무역업계에서 일하면서 경험하고 생산지를 방문하며 듣고 보고 읽으며 알게 된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이슈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작물과 상관없이 많은 저개발국의 농부들이 유사한 삶의 조건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커피를 재배하는 브라질, 베트남, 네팔, 르완다 등 지역을 방문하고 농부들은 만나면서, 바나나, 카카오, 사탕수수, 쌀과 각종 열대과일, 생강, 강황 등을 함께 농사짓는 자급자족 농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늘 맛보면서도 막상 실제 살아있는 작물일 때의 모습이 어떤지, 어떻게 재배하고 키워서 가공하는지, 어떤 향을 내뿜는지 알지 못했던 후추, 정향, 카다멈, 넛맥 같은 향신료들을 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멀리 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정말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여행 3일 차 되는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농가 방문, 해발 1000m부터 400m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깎아지를 듯한 경사도를 따라 드디어 마을과 농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녹차꽃의 은은한 향을 지나, 재스민과 아카시아를 뒤섞어 놓은 듯한 커피꽃 향기가 창문 틈을 뚫고 강하게 들어온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각종 향신료를 수확하고 가공하는 시즌이라 어딜 가든 탐스럽게 매달린 후추열매들과 정향꽃, 카다멈꽃과 넛맥 열매를 볼 수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창문을 열어젖히니 생전 처음 맡아보는 다양하고 풍성한 향기가 혼합된 상태로 황홀하게 밀려 들어오면서 당황스러움과 행복감에 그야말로 강타당한 느낌이다!! 

자동차에서 내려 마을을 향해, 농가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에는 알록달록한 꽃과 열대과일, 그 사이로 후추, 정향 등 향신료 나무들이 내뿜는 향들과 어우러져 매콤, 달콤, 새콤하면서도 뭔가 짙은 내음이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자세하게 그때의 느낌과 향기를 전달하고 싶지만, 이건 정말 직접 가봐야 알 수 있는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할 낯선 경험이라고 감히 말할 만하다. 우리는 이렇게 향신료의 심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후추덩굴이 망고나무를 휘감고 주렁주렁 열매가 열렸다.
▲ 후추덩굴이 망고나무를 휘감고 주렁주렁 열매가 열렸다.

기후위기는 불평등하게 다가온다!

[공정무역 농부들의 기후행동]이라는 테마로 연재되고 있는 이 글에서는 케랄라 농부들의 자연친화적인 농법과 삶의 방식, 그리고 이것과 대조되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직면한 이들의 상황을 다루려고 한다. 필드 리서치를 하며 방문한 농가와 농부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가족 수 혹은 얼마간의 부유함을 보여주는 살림살이에 따라 약간씩의 편차가 있었다. 하지만 전업농부로 살아가는 일상과 자신들의 유기농법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라는 면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케랄라주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티아 센(Amartia Sen)이 높은 인간개발지수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바로 그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 농부들의 92%가 1960년대 이후 주정부의 토지개혁을 통해 소규모이긴 하지만 (평균 1~1.5헥타르) 자신들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높은 문자 해독률과 기초적인 건강보험 적용, 시민들의 적극적인 사회활동과 정치참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우리가 방문한 비영리법인 PDS(Peermade Development Society)는 2500명의 유기농부들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곳이다. 1990년대에 심각한 농약중독과 수질오염, 동식물들의 죽음을 경험한 농부들은 유기농법으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수천 년을 자연농법으로 살아온 전통이 대를 이어 농부들의 지식과 노하우 속에 남아있어 이러한 전환을 어렵지 않게 여긴 분들도 여럿 만나볼 수 있었다. PDS 향신료 농부들의 유기농법은 농장 내 완벽한 순환농법을 목표로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후에 별도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이들은 경사도가 높은 산비탈에 집을 짓고 소, 염소, 닭을 키우며 후추와 커피, 넛맥, 강황, 생강 등을 재배한다. 가축의 사료나 식수, 농사용수, 거름 등도 기본적으로는 농장 내에서 키우고 자라는 재료들로 모두 조달하는 구조다. 외부에서 들여오는 유기비료나 살충제, 농기구 및 사람들의 출입 등에 의해 유기농 재배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꼼꼼히 관리한다. 이 때문에 농부들과 가족들의 일상과 먹을거리도 농장 내 순환구조에 맞추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과 자연의 흐름에 맞춰져 있다. 빈곤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소박하고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로 채워진 삶이 느껴진다.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 케랄라 농부들에게 기후위기는 쉽지 않은 도전을 요구한다. 인도는 기후위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들 중 7위에 위치한다. 아래 표는 국가별 기후이슈를 평가하는 글로벌 기후리스크 지표 중 위협요소가 심각한 10개국 순위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발생, 인명피해, 경제적 손실, 인간개발지수 등 여러 요소를 포함해 큰 영향을 받는 국가들을 꼽은 것이다. 이 중에서 2018년 대비 순위가 껑충 뛴 국가들은 최근에 급작스러운 기후 이슈가 발생한 국가들이다. 반면 일본과 인도 두 국가는 이미 한참 전부터 기후위기에 심각한 영향을 받는 곳들로 분류된다.
 

▲ 기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가 Top 10, Global Climate Risk Index 2021.
▲ 기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가 Top 10, Global Climate Risk Index 2021.

또한 지도로 확인해 보더라도 아래와 같이 검붉은색에 가까울수록 기후로 인한 위협이 큰 지역에 속한다. 6월부터 9월 초까지 이어지는 인도의 몬순시즌이 2019년에는 한 달 더 길게 연장되면서 폭우로 인한 홍수피해가 커지고 14개 주에서 1,800명이 사망했다. 총 1,180만 명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100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인도 서해안은 북인도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매우 심각very severe' 단계의 저기압이 많이 출현하면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증가하고 있다. 폭염의 빈도와 강도도 증가하고 있어서, 2022년 3, 4월 기온이 섭씨 최고 50도에 육박하는 등 1901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도 정부의 지구과학부(Ministry of Earth Sciences)는 1901년부터 2018년까지 인도 평균기온이 0.7°C 상승했고, 21세기 말까지 4.4°C 상승에 폭염강도는 3~4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 2000~2019년 글로벌 기후리스크 인덱스.
▲ 2000~2019년 글로벌 기후리스크 인덱스.

반면 인도는 2021년 중국,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온실가스의 9%를 배출한다. 14억 인구, 7%의 높은 경제성장률, 증가하는 소비 등으로 인도의 온실가스 배출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인당 배출량(CO2e)은 최빈국들의 평균치와 유사한 2.4톤으로 미국의 7분의 1, 중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옥스팜은 2020년 '탄소 불평등에 직면하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구의 온도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인들의 1인당 탄소배출량을 최빈국 수준에 가까운 2.1톤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서고츠 산맥아래 험준한 골짜기 굽이굽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향신료 농부들은, 이러한 인도의 탄소 배출량 중에서도 정말 미미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고츠 지역 천혜의 자연환경이 주는 60도, 70도에 가까운 기울기와 울창한 열대 숲, 전형적인 몬순기후, 독특한 동식물의 식생 등은 농부들에게 오랜 역사를 통틀어 다양한 향신료들이 자생하는 쾌적한 재배지역을 제공해줬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온도상승과 썸머시즌에 적게 내리는 비, 건기시즌의 갑작스러운 강우 등 이전에는 없던 날씨 패턴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잦은 병충해와 질병의 발생, 낙화 및 낙과로 인한 수확량 감소, 늦가을 홍수로 인한 토양침식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부들은 농장에 그늘막을 설치하고 빗물관리와 관개, 토양에 덮개식물을 더 두텁게 만들어주는 등 농사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수확량은 들쭉날쭉하고 홍수로 흙이 휩쓸려 내려가기라도 하면 열심히 가꿔온 건강한 토양이 순식간에 유실되는 일을 겪는다고 말한다. 

▲ 탄소배출 Gap 리포트, Emissions Gap Report 2022, 유엔환경계획.
▲ 탄소배출 Gap 리포트, Emissions Gap Report 2022, 유엔환경계획.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서고츠 일대 39개 지역에는 국립공원, 야생동물 보호구역, 보호림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케랄라주 19개, 카르나타카주 10개, 타밀나두주 6개, 마하라슈트라주 4개 등 여러 주에 걸쳐 있어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각종 개발 프로젝트로 인한 산림벌채와 과다한 비료와 농약 투입, 토양 파괴 및 높은 인구로 인한 압력 등으로 인해 서고츠의 독특한 생물다양성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 중에 칸남파디(Kannampady) 마을은 일반인들의 왕래가 제한되어 있어 현지 부족민들과 출입이 허용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보호구역에 위치한 곳이었다. 서고츠지역의 자연이 갖는 가치는 생물다양성과 경관, 생태적인 보고로서의 가치뿐만이 아니다. 인도 전체 수자원의 40%와 서고츠 몬순기후의 조절 역할, 이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생계 등 수치화하기 어려운 항목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많은 전문가가 주요 탄소흡수원으로서 서고츠의 엄청난 잠재력을 언급한다. 
 

▲ 칸남파디 숲속마을 주민들이 가장 아끼는 것들: 커피나무와 열매, 수공예 빗자루 등.
▲ 칸남파디 숲속마을 주민들이 가장 아끼는 것들: 커피나무와 열매, 수공예 빗자루 등.

기후위기는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인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는 이것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쉽게 돌아올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빈곤하고 소외된 계층들이 훨씬 더 근본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우리는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다.

옥스팜 보고서에서는, 오늘날의 극심한 탄소 불평등이 지난 2~30년 동안 행해진 정치적 선택의 결과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경제 사상과 엘리트 정치가 지배하던 이 시기 동안, 대부분 국가에서 소득 불평등과 빈부격차 문제가 급증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대가로 일부 사람들의 지배와 풍요를 우선시하는 풍토가 반영된 것이라고.

오늘도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케랄라의 농부들은 변화하는 기후에 살아남을 수 있는 후추와 각종 작물의 품종을 실험한다. 향신료가 자생했던 예전의 숲과 유사한 형태의 혼농임업(Agroforestry)을 조성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들 농부가 재배한 농작물 가격에 이러한 노력과 가치, 의미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 소비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 칸남파디 마을에 다녀오는 길, 아름다운 강가 풍경.
▲ 칸남파디 마을에 다녀오는 길, 아름다운 강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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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옥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박사수료)
이미옥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박사수료)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박사수료
이미옥은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사회혁신융합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공정무역 및 협동조합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분야는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 기후위기, 공정무역, 커먼즈, 사회적자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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