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 하나도 길이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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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 하나도 길이 되어요’
대안학교 <느티울행복한 학교> 졸업식에 다녀와서
  • 2017.12.26 15:39
  • by 양영희 시민기자
희진이는 선배들의 졸업식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준비했다. 떠나 보내는 선배들이 아쉬워 결국 눈물을 흘렸다. 커다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희진의 모습에 청중들은 슬품도 잠시, 웃음을 터트렸다. 울다 웃으며 졸업식은 흘러갔다.

오래전 폐교가 된 건물은  2009년 ‘느티울 행복한 학교’라는 대안학교 아이들이 살게 되면서 다시 생기가 살아났었다. 8년여 동안 이곳에서 수 십명의 아이들이 배우며 성장했고 졸업해서 자신들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12월 23일 오후 7시경 졸업식 전날 느티울 겨울축제가 있다고 해서 어두워진 밤길을 운전해 학교로 갔다. 늘 한적했던 학교가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느티울을 졸업한 선배들, 학부모, 그리고 괴산지역의 중·고등학생 중 느티울 아이들과 연 2년 동안 극동아리를 함께 했던 친구들까지.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축제 분위기는 시작도 전에 즐겁다.

축제 타이틀이 ‘많아서 좋다’였다. 그 의미는 졸업식까지 참가한 후 따뜻하게 내게 각인됐다. 학생 한명이 학교에 들어오면 느티울은 온 가족을 식구로 맞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맺은 모든 인연들이 ‘느티울의 사람들’이 된다. 이번 축제와 졸업식에서 그 모든 인연의 식구들이 한명, 한명의 졸업과 성장을 지켜봐주고 축하하며 서로가 기꺼이 가 닿는 고리를 만들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지, 부모 외에 자신을 봐주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아이들이 상처와 한계를 어떻게 넘어서는지 보여줬다.
 
축제는 1기 졸업생인 배아람이 그의 친구들과 함께 국악공연을 펼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람이는 학교에 있을 때도 장구를 잘 쳐서 늘 인기가 많았었다. 아람이는 졸업 후 전국의 대안학교 풍물 동아리 출신들을 모아 자신들끼리 ‘대동’이란 전문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후배들의 대안학교 졸업식마다 찾아다니며 무료로 공연하고 있다. 그 까닭은 졸업 후 망막한 현실에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자신들처럼 길 찾기를 한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좋아하는 것을 해도 살 수 있다고’말하기 위해 직접 온 것이었다. 판소리부터 사물놀이와 여러 재주들을 연마한 실력은 모두를 감동시켰다. 무엇보다 그들이 찾아온 목적이 고맙고 보기 좋았다.

희진이의 초보피아노, 현빈이와 한결이의 기타연주와 노래·춤, 일반학교 친구의 무대까지 감동과 웃음은 계속 이어졌다. 괴산의 중·고등학교 다니는 연극동아리 친구들이 축제와 졸업식에 참여해 축하해 주면서 1박2일을 함께 지내는 장면도 참 보기 좋았다. 어떤 친구는 ‘반(半) 느티울’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식구처럼 지내왔단 얘기도 들었다. 축제가 끝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와 준비한 숙소에서 밤늦게까지 정을 나누고 다음날 졸업식에 참여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10시 30분, 느티울의 졸업식은 논문발표로 시작했다. 논문은 지난 5년을 스스로 정리하며 배움과 성장을 담아 정리해 낸다. 주제도 내용준비도 발표도 모두 자신의 몫이다. 눈물 많은 현빈이는 농사와 요리, 풍물, 문화학교 숲의 인턴을 통한 놀이수업 지도, 뜨개질 등등을 고민하다 뜨개질을 논문 주제로 정해 발표했다. 시작은 하되 마무리를 잘 못하는 습관을 뜨개질을 통해 바꿔볼 수 있다고 여긴 듯 했다. 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을 들기도 했다. 현빈이의 뜨개질 실력은 대단했다. 작품으로 보여준 커다란 방석은 탐이 날 정도로 예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이야기, 완성하며 느꼈던 기쁨까지 논문엔 다 실려 있었다.

한결이의 논문발표는 감동과 눈물로 범벅이 됐다. 자신이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으로 논문발표를 한 한결이는 처음 느티울에 왔을 때 부끄럼이 많아 대답도 잘 못하는 아이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혼자서 생각말기’라는 노래를 알게 되면서 음악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기타를 잡기 시작했고 즐거워서 자주 치다보니 기타실력이 늘었다. 그 후 작곡을 하고 싶어졌고 뮤지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작곡 순서와 구도 잡는 법을 배운 후 혼자서 줄곧 노래를 만들고 부르게 됐다. 연극과 노래를 하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은 무대를 즐기며 자신의 생각을 곡으로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는 걸 행복해한다고 말하는 한결이에게 모두들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작곡을 하면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고통과 즐거움을 느꼈고 노래를 처음 만들 때는 고통이지만 곡이 완성되면서 고통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걸 경험했고, ‘좋음과 나쁨이 한 끗 차이’라는 걸 몸소 느꼈다고 논문에 밝혔다. ‘아이의 성장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기쁨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 힘으로 얻은 자신감은 그 다음 삶을 살게 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했다. 한결이의 발표 중 느티울 식구들이 모여 참여해 만든 노랫말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아이의 노래들은 모두 느티울이란 삶터가 얼마나 좋은 배움터였는지를 보여준다.

오늘이 벌써 졸업식이래요 말도 안되죠 나 꼬꼬마 였는데
지금 이 자리 주인공이 되버렸죠 믿기지 않아 나 왜 이러고 있죠.
단지 공부가 싫어 들어왔던 꼬꼬마가 벌써 이렇게 커 노래하고 있죠.
말수도 적고 소심했던 꼬꼬마가 어느새 무대를 즐기고 있죠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죠 일반학교 갔으면 가능했을까요
불가능 했을 거라 확신하며 항상 느티울에게 감사해요

느티울에서 배운 게 참 많아요 자립, 목공, 예술, 에스페란토
그 외에도 셀 수없이 많은 소중한 가르침들을 받았죠.
이렇게 많이 배웠는데도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받음 가르침에 부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게요.

솔직히 졸업이 무섭기도 해요 하지만 기대도 많이 되는걸요.
무섭다고 피할 수 없으니까 나를 믿고 한걸음씩 나아갈 거에요.
힘들 때면 항상 생각할게요. 즐거웠던 느티울의 추억들
나 이제 꼬꼬마가 아닌 걸요 밖에서도 행복하게 살게요

저에게 얼만큼의 기대를 걸었든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큰사람이 되어 돌아올게요. 나란 사람 기억해주세요
저 이제 졸업해봐도 될까요 .(졸업, 작사 . 작곡 : 최한결)


정이 많은 희진이는 형들의 졸업식 준비를 거의 다 할 정도로 애를 쓴 흔적이 보였다. 형들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희진이는 폭풍눈물을 쏟았다. 편지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울면서 주머니에서 커다란 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기도 해서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아이들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교사들과 학부모, 졸업생들 곳곳에서 같이 울었다. 느티울의 졸업은 졸업생의 지난 5년과 그전의 학교의 이야기가 다 담긴 축척된 식구들의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졸업식, 사랑이 확장되는 순간을 경험한 어느 멋진 날

느티울의 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게 없는데 ‘많이 배웠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모습은 공립학교와 참 대조적이란 생각을 하게 했다. 일반학교는 끝없이 아이들을 뒤쫓아 가며 시간마다 다른 지식을 집어넣어 주려고 애쓰는데 정작 아이들은 긴 시간 학교를 다니고 배운 게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 적은 아이들과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하다 학교 밖의 아이들과 넘나드는 것으로 연극을 했고, 2년이 되면서 좋은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일반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게도 느티울을 통해 다르게 살며 배우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좋은 기회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느티울은 줄 세우지 않고, 비교하지 않으며, 덜 다그치고, 기다려주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밥 짓기, 빨래하기, 청소하기, 여행, 농사, 그림, 기타, 연극, 풍물, 에스페란토, 목공, 뜨개질 등등 여러 영역을 만나며 산다. 몸으로 만나는 체험들과 삶의 가치들을 연결해주는 긴 시간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오늘 일반학교와 다른 졸업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래 품어주고 보듬어준 그 터를 다 누린 후 변한 아이들이 보기 좋다. 그 결과는 아이가 가진 본성을 스스로 찾아내 잘 닦아 빛을 내게 한 것이다.
 
‘느티울에 진 빚이 많다며 선생님들께 큰 절을 올리는 졸업생의 부모님’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볼 때마다 아이들이 달라지는 걸, 서로 더 사랑하게 되는 걸 알게 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느티울 졸업식에서 우린 함께 그걸 느꼈다. 졸업식도 사랑이 확장되는 순간이란 걸 경험한 멋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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