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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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 사람
  • 2019.01.28 08:26
  • by 최윤정

제주에는 누가 살까. 어떤 이는 제주의 상징인 해녀를 들 수도 있겠고, 어떤 이는 귤을 따고 있는 농부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여행길에 마주쳤던 허리 구부정한 할망을 인상적으로 봤을 수도 있고, 해장국집에서 바쁘게 음식을 날라주던 종업원이 외국인이라는 사실도 발견했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제주를 다녀온 건 분명한데 셀카를 찍던 자신과 친구 외에는 그다지 기억에 남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상징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주 사람, 해녀. 골목을 돌아 바닷가로 나간다.

 

제주에는 사람 분류 방식이 있다. 제주는 인구인 69만 명 보다 20배 많은 1400만 명의 여행객이 오가는 ‘관광의 섬’이다. 그래서 우선, 도민과 비(非)도민을 주요하게 가른다.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 이주 열풍이 불었던 ‘대안의 섬’이기도 하다. 도민은 다시 원주인과 이주민으로 분류된다. 어쩌다 식당이나 미용실에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상황이 되면, “도민이세요?”나 “육지에서 오셨어요?” 같은 질문이 빈번하다.

 

도민에게 비도민, 1400만 관광객은 제주 산업의 근간이다. 사업체에서 일하는 전체 인구 중 약 42%가 숙박업, 음식점업, 도/소매업, 운수업으로 관광객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관광객과 연관이 적더라도 도로의 ‘허’, ‘하’, ‘호’ 번호판을 단 렌터카는 관광의 섬 제주의 숙명이다. 하여, 교통사고를 파악할 때 사고를 낸 사람이 도민인지, 비도민인지에 민감하며 해당 사고에서 도민이 다치기라도 하면 렌터카들의 운전 행태가 크게 공분을 산다.

 

도민 중 이주민은 ‘육지것’, ‘육지사람’으로 불린다. 이주민은 당연히 섬이 아닌 육지에서 오니 그러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한번도 육지와 섬을 구분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육지것’은 매우 생경한 호명이다. 게다가 ‘육지것’에는 아직 내 사람, 우리 사람으로 포함시키지 않는 거리와 경계가 전제되어 있다. 원주민에게 이주민은 섬에서 목적을 이루면 언젠가는 떠날 존재라는 이해와 오해 사이에 있다. 그러나, 제주 인구 69만 명 중 비교적 최근에 유입된 9년간의 이주인구가 약 7만8천 명, 전체 인구의 11%를 언제든 떠날 존재로 두는 것이 제주 입장에서 유익한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관광객들도 도민들에게 갖는 인상이 있다. 포용 가능한 범위라면 제주만의 문화와 특질로 이해하고, 불쾌한 경험이었다면 여러 비평을 하기도 한다. 그 중 많이 언급되는 부분은 ‘성정이 무뚝뚝해서 대체적으로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인식이다. 서울 사람은 어떻다, 경상도 남자는 어떻다는 이야기처럼 제한된 경험이거나 속설이긴 하지만 제주 사람의 ‘친절도’나 ‘서비스 마인드’가 자주 언급될 때는 좀 의아하기도 하다.

 

여행객은 여행지의 환대를 기대한다. 일상을 떠나온 설레임과 즐거움을 그곳이 일터고 삶터인 주민들에게 투여하다가 실망을 하곤 한다. 도민의 입장에서 여행객은 어느 정도 시일 안에 떠날 사람이다. 제주 사람들이 무슨 해피 에너자이저도 아니고 떠날 사람들에게 잦은 관심과 미소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거래를 한 손님이거나 환영해야 할 이해관계자가 아니라면, 불특정 다수에게 일상적으로 친절한 사람은 드물다.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다. 이주민도 마찬가지다. 원주민에게 이주민은 언제 떠날 지 모를 사람들이다. 원주민들이 모든 이주민들을 환영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전체 인구 69만 명, 2010년 이후 이주한 인구 7만8천 명, 연간 관광객 1400만 명이란 숫자들 뒤에 다시금 제주에 누가 살고 있는지 조금 더 떠올려본다. 제주의 할망과 하루방, 65세 이상 인구는 약 13%, 9만3천 명. 그들 중 31%는 혼자 산다. 약 3.6%인 2만5천 명의 등록된 외국인들도 있다. (한국 전체 외국인주민 비율 3.6%와 동률이다.) 중국인과 조선족이 1만1천 명을 넘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양어장, 식당 등에서 일하고 때로는 제주 사람과 결혼한 이주여성이다. 지인들 중엔 1년에 몇 번씩 제주에 오다 못해 도민만큼 제주를 잘 알고 아끼는 사람들도 있다. 멀리서도 제주의 현안에 많은 관심을 갖는 걸 보면 반(半)도민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주 사람들이라고 모두 한라산 경험이 있지는 않다. 서울 사람들이 63빌딩이나 남산타워를 드물게 가는 것과 동일하다. 사진은 한라산 정상의 다양한 사람들.

 

어디든 사람들이 산다. 그런데, 당연하게 떠올려지는 사람들이 있고, 조금 더 생각해봐야 떠올려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해와 입장들이 크고 작게 다르다. 어디를 가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떠올리고 싶고 그 속에서 나는 어디쯤에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끔은 생각하려 한다. 그들이 사는 섬을, 우리가 사는 섬으로 느끼기 시작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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