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의 맛을 찾으십니까
상태바
[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의 맛을 찾으십니까
  • 2019.01.16 18:35
  • by 최윤정

제주에 살면 지인들로부터 “현지인이 가는 진짜 맛집”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나는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기가 좀 주저된다. 질문 속의 “현지인”, “진짜”, “맛”이란 것이 모호하고 상대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답을 피할 순 없어 많이 회자되는 식당들을 일러준다. 그러나, 식당의 음식에 크게 만족했다고 한들 그 이유가 전적으로 “현지인이 가는 진짜 맛집”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여행자의 당시 “요구”, “기호”, “상황”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동문시장 포장 딱새우회. 일상을 떠난 여행지에서 소중한 사람과 먹는 끼니는 대체로 맛있다. 맛은 “무엇”도 중요하지만 “누구와”도 중요하니까.

 

여행자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제주의 맛은 무엇일까. 제주의 맛은 제주라는 여행지에서 경험한 여러 맛과 제주도민들이 오래 유지시켜온 향토적인 맛이 있을 것이다. 분식, 카레, 라면, 파스타 등에 제주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이 전자에 속할 것이고, 각종 해장국, 몸국, 생선국, 물회 같이 제주도민들 오랫동안 먹어온 음식이 후자일 것이다. 그럼 제주 음식은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제주 음식은 제주의 환경에서 얻어진 재료와 제주의 생활상이 반영된 요리방식으로, 오랜 기간 역사와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우선, 재료로는 메밀, 돼지, 해산물이 주요하다. 몸을 쉴 틈 없이 놀려야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특히 여자들이 밭일에 물질에 몹시도 바쁜 섬이었으니 빠르게 후다닥 낼 수 있는 요리법이 주효하다. 이를 테면, 생선을 썰어 넣은 된장물회(자리물회), 육수를 따로 낼 필요가 없는 생선국(각재기국, 갈치국), 동네 잔칫날 나눈 돼지뼈 국물에 말은 국수나 모자반을 더한 몸국, 내장을 넣은 순대국 같은 것들이다. 제주의 특산물인 흑돼지, 전복, 옥돔 등은 특별한 날에 챙기는 귀한 식재료였고, 제주가 관광지로 명성을 날리면서 대표 먹거리가 되었다. 이 역시, 제주의 특별 재료이니 제주 음식이다.

 

돼지뼈 국물에 메밀가루를 풀어 만든 접짝뼈국은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제주에서 만난 뉴질랜드 친구는 말고기를 먹는 사람과는 상종할 수 없다며 말고기를 야만적인 음식으로 결론 냈다. 그녀에게 제주의 말고기 식당은 먹어선 안될 것을 파는 비윤리적인 곳이다. 이처럼 식재료에 관한 역사와 문화적인 맥락이 없다면, 이전에 보고 듣고 경험해본 바가 전혀 없다면, 사실 음식을 음식으로 대하기도 어렵거니와 맛을 느끼기도 쉽지 않다. 식재료와 요리법은 상식과 비상식, 익숙함과 생경함 사이의 어느 쯤에 놓여 있고 개인이 경험하거나 용인하는 바가 모두 다르다. 당연히 맛 역시, 모두가 동의하는 절대적인 별미란 없다. 맛은 사회문화의 영향 아래 취향이 더해진 개별적인 맛이자 음식을 둘러싼 상황, 같이 먹는 사람, 이전 경험이 어우러진 사회적인 맛이다.

 

이렇게 개별적이고 사회적인 맛에 표준화된 입맛을 상정하고 카페/블로그/유튜브의 품평을 너무 쫓는 현상이 ‘유명 맛집’ 아닌가 싶다. 하여, 이에 기반한 제주 별미와 맛집을 찾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역사가 상당한 노포에서 지역민들이 오랫동안 좋아했던 맛을 느껴보자. 용기가 있다면 생경한 재료로 만든 음식에 도전해도 좋다. 제주 현지의 제철 재료로 단순하고 깊게 만든 음식을 경험하자. 새로운 지역엔 새로운 맛이 있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맛의 경험치를 쌓아 자신의 미각 지평과 현지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면 어떨까. 노포, 현지만의 재료, 제철 재료를 키워드로 간단히 조사해서 지역의 식당들을 경험해보기를 권한다.

 

제주에서는 멸치를 ‘멜’이라고 한다. 멜국을 주문하면 멜조림, 멜젓과 쌈채소를 함께 주는 제주도청 근처 식당. 멜을 만나는 3가지 방법이다.

 

사실 맛집도 변한다. 우선 맛집을 대하는 우리의 입맛이 고정불변이 아니다. 맛집의 상황도 변한다. SNS 소문으로 손님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이전처럼 재료, 품질, 서비스를 제대로 챙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주방장이 나이가 들며 입맛이 변하기도 하고 식당 주인이 아예 바뀌기도 한다. 가족 내에서 대를 물리는 경우도 있지만 권리를 좋게 쳐주는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기도 한다. 식당도 생로병사가 있는 것이다. 유명 맛집이라 알고 갔는데 맛이 없다고 크게 실망하는 여행자들을 많이 봤다. 그 집은 애초부터 맛집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맛집이었을 수도 있고, 맛집이었지만 변했을 수도 있다.

 

그간 제주에서 느낀 맛은 현지 재료와 낯선 요리방식이 주는 신선한 미각 경험, 일상을 떠난 여행의 즐거움이 혼재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내밀한 제주의 맛을 경험을 하고 싶다면 유명 맛집들을 찾는 수고와 시간을 거두자. 대신, 마음에 드는 마을에서 과일이나 주전부리를 사고 읍내 거리를 거닐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라. 물론, 대단한 환대와 맛을 기대하지는 말고. 그렇게 여행지의 작은 식당을 소소히 방문하는 것은 맛이 없다 해도 그것 자체가 이색적인 경험이고, 맛이 있다면 비교적 제주의 맛에 가까울 것이다. “유명 맛집”에 대해 조금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