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이라 부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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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이라 부르지 말라
[라이프인ㆍ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임석영 (행동하는 의사회 전 대표, 가정의학과 의사)...영리추구와 의료공공성 양립할 수 없다
  • 2018.08.21 11:23
  • by 임석영


뉴스를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폭염에 나른해진 몸과 마음이. 박근혜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정부에서 "의료기기 규제완화"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의료기기 규제완화. 이는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新성장동력으로 의료산업을 지목한 후, 의료영리화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자본의 병원투자와 병원의 영리추구를 가능하게 하고, 민간보험사, 의료기기, IT산업과 연관되어 이윤추구를 제일 목적으로 하는 의료산업복합체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 제시하고 추진했었다.

의료기기 규제완화는 이러한 의료영리화정책의 하나였다. 이미 4년 전 박근혜정부는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신의료기기 허가절차를 간소화하려 하였다. 이와 함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및 '규제프리존특별법' 등을 제정하려 하였다. 이 중 규제프리존특별법은 말 그대로 의료, 보건, 환경, 개인정보 등 공익을 위해 제정된 현행법과 제도를 특정한 지역 안에서는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률로서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크게 훼손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의료기기 규제완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출처= 청와대]

문재인정부 출범이 1년이 지난 지 한 달쯤 되는 6월말,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 주재하기로 하였던 규제혁신회의가 미흡하다면 회의를 연기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필자가 보기엔 이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러더니 7월 19일 제일 먼저 의료기기 규제혁신안을 밝혔다. 주요내용은 선진입을 허용한 후 후평가 방식으로 바꾸어 신의료기술 및 관련 의료기기의 허가 소요시간을 대폭 줄이는 것을 하나로 하며, 두 번째로 연구중심병원에 산병협력단 설립을 허용하고, 의료기기 산업 육성을 위한 인프라 확충을 위해 '의료기기산업육성법'과 '체외진단기기법'을 각각 제정하여 바이오헬스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민주당은 4년 전 앞장서서 반대하였던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오는 8월 30일 여야3당 합의로 본회의 처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두 달 사이 벌어진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당혹과 분노가 교차한다.

필자는 문재인정부의 이러한 변화는 주요한 변곡점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인 점부터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의료규제완화란 표현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다.

'규제'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 의미가 많은 단어이다. 그렇다면, 의료규제라는 말에는 이미 잘못된 규제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실제도 그러한가.
한국의료의 특징 중 하나는 재정적 측면은 비록 보장성이 65%를 넘지 못하나 주로 공공체계가 담당하는 반면, 민간이 공급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최근 10여 년 동안 국민의료비가 2.5배 이상 증가하고, 건강보험 재정 역시 2배가 넘게 증가하였지만, 보장성은 늘어나지 않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비급여 항목에 대한 지출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료분야는 수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민간에만 맡겨서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법률과 제도로 '규제'하는 공공서비스 분야인 것이다. 

가까운 사례로 메르스 사태를 떠올려보자. 병원 감염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누가 몰랐겠는가. 민간병원이 법률과 제도가 없이도 알아서 당장 수익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많은 비용이 추가로 지출되는 병원 감염관리에 대해 투자하고 대비하였으면 좋으련만 실제는 그러지 않는 병원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빅5중 하나인 서울삼성병원은 메르스를 전국으로 확산시킨 원인을 제공한 병원이 되기조차 하였으며, 병원 내 추가 환자 발생을 막지 못해 폐쇄조치가 내려진 이후에야 겨우 메르스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었다.

시장의 논리에 맞길 때 훼손되는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자 만들어진 것이 공공분야에 대한 법률과 제도이다. 따라서 이러한 법률과 제도를 '규제'라는 단어로 줄여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사실상 시장과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공공분야 제도가 변화한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규제 '완화' 자체가 아니라 공공성의 어떤 측면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인가이다.

둘째, 이번 의료기기 관련 규제완화와 의료기기 육성정책은 시민의 안전을 더 확보하기 위한 제도변화가 아니다.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기술과 기기를 허가하는 것은 오히려 시민의 안전에 역행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 이득을 볼 집단은 누구인가. 그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기회사를 갖고 있으며, 병원을 운영하는 대자본, 세계 유력 IT회사를 갖고 있는 대자본, 더 나아가 민간보험사까지 갖고 있는 대자본. 바로 삼성이다.

병원 현장에서 필요한 필수 의료기기는 상당히 많다. 그리고 대부분 외국제품이며, 고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가장비 이용에 따른 의료비 부담은 결국 시민들의 몫이다. 문재인정부는 그리고 삼성은 국내의료기기산업을 육성하여 필수의료기기를 국산화하려는 것일까? 과연 정밀한 각종 의료기기들, 인공호흡기 등의 생명유지장치들, 각종 모니터링기기, CT, MRI 등의 검사장비, 수술시 쓰이는 각종 도구들을 국산화하여 국내 의료비를 낮추는 효과를 창출하려는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번 의료기기 규제완화가 내세우는 신기술의 대부분은 AI, 3D, 로봇 등 IT산업을 접목한 것이며, 일부는 오히려 의료비 부담을 상승시킬 가능성도 높이며, 또 일부는 원격의료와 직간접 연관되는 의료기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는 문재인케어와도 상충된다. 안정성과 그 효과가 입증되지 않는 신기술과 그에 기반한 의료기기를 선허용한다면 건강보험은 그에 대한 보험급여를 인정해야 한다. 그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다시 온전히 시민의 부담일 될 것이며 동시에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셋째,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대폭 후퇴시킬 규제프리존법은 30일 국회 통과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이미 이명박정부의 선박관련 규제완화가 세월호 참사를 낳은 한 원인임을 잘 알고 있다. 규제프리존법은 과연 몇 년 후 어디서 또다시 제2의, 제3의 세월호 사태가 일어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의료영리화정책의 물꼬를 튼 것은 노무현정부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지난 10년 동안 여러 차례 반성한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랬던 민주당이 집권 1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의료영리화를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추진하고 있다. 필자의 배신감은 매우 크다.

언제나 그러하듯 우리에게, 시민들에게 남은 건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다시 저항하고 또 다시 의료영리화를 막아야 한다.

다만 의료영리화를 막기 위해 나서면서 문재인정부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 의료규제 완화는 의료영리화 정책이 아니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길 바란다. 시민들을 위해, 시민안전을 위해서 의료규제 완화를 한다는 말도 제발 하지 않길 바란다. 의료영리화 정책을 반대하여 지난 십여 년 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싸웠고 결국 박근혜를 퇴진시켰던 시민들이 지켜왔던 가치, 문재인정부를 탄생시켰던 촛불혁명의 가치를 상징하는 언어만큼은 오염시키지 말길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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