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버리지마] 자원순환체계 구축을 위한 멸균팩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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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버리지마] 자원순환체계 구축을 위한 멸균팩 재활용
"멸균팩 사용 늘었는데…재활용은 더 안 돼"
철저한 분리 배출 NO...재활용은 쉽게 쉽게
  • 2023.10.05 17:04
  • by 이진백 기자

기술과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지구의 자원이 마치 무한하다는 듯이 사용해 왔다. 그 결과로 오늘날 망가진 지구 환경을 목도하고 있으며, 지구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따라서 선형경제에서 벗어나 순환경제로 나아가고,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원의 소모와 폐기, 폐기물의 환경 영향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가장 핵심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잘 분해되지 않고 유해 물질을 유출하여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라이프인은 플라스틱 재활용과 미세플라스틱, 탄소 절감 효과가 뛰어나 플라스틱의 대체재로 주목받는 멸균팩 활용 등을 둘러싼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은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알려진 플라스틱은 제작부터 폐기 단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기후변화의 핵심 원인인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썩지 않는 채로 남아 지구의 복원 능력을 해친다. 화석연료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석유 및 가스 추출·정제, 분해, 소각 등 모든 단계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미국 환경단체 '비욘드 플라스틱'은 '기후변화를 주도하는 데 석탄을 제친 플라스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2030년까지 플라스틱이 석탄화력 발전소보다 기후변화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플라스틱 물병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라는 석유 제품으로 제조된다. 분해되는데 최대 1000년이 걸릴 수 있는 플라스틱 물병의 85%가 결국 폐기물이 된다. 또한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양 생물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생명다양성재단과 영국 캠브리지대 동물학과가 공동 조사한 '한국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동물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현존하는 바다거북의 모든 종(100%), 그리고 해양포유류(54%)와 바닷새(56%) 전체 종의 절반가량이 바다 쓰레기를 먹거나 엉켜 고통받는다"고 밝히고 있다. 

환경에서 플라스틱 물병은 미세 플라스틱이라고 하는 작은 입자로 분해되어 식수에 침투하여 인체 건강에 잠재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토양, 해양, 대기 등 환경을 오염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모유, 혈액, 태반 등에서도 발견되며 체세포를 손상시키고, 병원체를 운반해 신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멸균팩은 플라스틱 환경 오염에서 지구를 구할 대체 포장재로써 그 자체로도 플라스틱보다 탄소배출 절감 효과가 있으며, 미세 플라스틱의 위험도 없다. 

멸균팩은 종이팩에 알루미늄을 접합해 산소나 자외선을 막아주어 우유, 두유, 주스 등을 장기유통하게 해주는 플라스틱을 대체할 가장 신용할 수 있는 포장재이다. 일반(종이)팩은 3겹의 내부코팅으로 되어있는 반면 멸균팩은 종이, 알루미늄 포일, 폴리에틸렌(PE) 등 총 6겹의 소재를 겹쳐서 만든 복합재질 구조를 갖추고 있어 외부 산소나 미생물, 빛, 습기를 완전히 차단해 주기 때문에 개봉 전에는 냉장 보관이 필요 없고 30℃ 안팎의 높은 온도에서도 내용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PET보다 다양한 패키징 디자인이 가능하고 사계절이 있는 날씨 특성상 유통과 보관이 용이하여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 국내 멸균팩 출고량. ⓒ(사)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
▲ 국내 멸균팩 출고량. ⓒ(사)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

 

(사)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
ⓒ(사)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

실제로 살균팩 출고량은 2014년 66,082톤에서 2022년 67,826톤으로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멸균팩 출고량은 2014년 16,744톤(종이팩 출고량의 25.3%)에서 2021년 29,288톤(종이팩 출고량의 42.9%), 2022년 32,128톤(종이팩 출고량의 47.4%)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오는 2025년이면 멸균팩의 출고량이 전체 종이팩 51.3%를 차지하며 일반 종이팩 출고량을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선진국에선 멸균팩을 활용해 물, 음료, 식용유, 세제 등을 담는다. 멸균팩 종이는 생활필수품, 유통·건축 자재 등으로 다양하게 재활용된다. 우리나라도 멸균팩을 회수하면 종이는 페이퍼타월로, PE나 알루미늄 소재는 유통자재, 생활용품 등으로 재활용한다. 100%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멸균팩은 재활용의 어려움이 있다. 멸균팩의 75%는 종이로 이뤄져 있지만, 이밖에 알루미늄 포일, 폴리에틸렌(PE) 등 총 6겹의 소재를 겹쳐서 만든 복합재질 구조를 갖추고 있으므로 재활용 공정이 까다롭다. 재활용이 쉽지 않은 이런 부족한 경제성 때문에 멸균팩 재활용 체계 구축에 대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었다.
 

▲ 한솔제지는 9월 8일 (사)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및 국내 12개 식음료 생활용품 제조업체와 '멸균팩 재활용을 통한 순환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한솔제지
▲ 한솔제지는 9월 8일 (사)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및 국내 12개 식음료 생활용품 제조업체와 '멸균팩 재활용을 통한 순환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한솔제지

멸균팩 재활용해 '자원 순환모델' 구축

지난달 8일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의 주최로 멸균팩 제품을 생산하는 다수의 기업이 '멸균팩 재활용을 통한 순환체계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정부의 순환경제 활성화를 통한 산업 신성장 전략에 발맞춰 멸균팩을 고부가가치 종이로 재활용하고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마련됐다. 협약에는 한솔제지, (사)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을 비롯해 ▲남양유업 ▲대상웰라이프 ▲동원F&B ▲롯데칠성음료 ▲매일유업 ▲빙그레 ▲삼육식품 ▲서울F&B ▲서울우유협동조합 ▲LG생활건강 ▲이롬 ▲정식품 등 12개사가 참여했다.

협약내용은 회수된 멸균팩을 한솔제지가 종이(백판지)로 재생산 후 제조사가 해당 종이를 제품 포장재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우선 투입하는 원료의 10%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멸균팩 재활용을 추진할 예정이며, 이는 멸균팩의 수거량에 따라 일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이를 통해 생산한 종이를 협약에 참여한 12개사가 6개월간의 시범운영기간 동안 포장재로 사용함으로써 '소비-수거-재활용-생산-재사용'으로 이어지는 자원 선순환 모델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협약에 따라 제조사들은 제품 등에 재활용이 까다로운 멸균팩을 재활용한 종이 포장재를 적용해 순환경제사회 조성을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함은 물론 지속가능한 재활용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 개선에 기여할 방침이다. 특히 순환체계 구축 시 재활용이 부진한 멸균팩을 백판지 원료의 일부로 사용해 2차 포장재 등으로 활용한다. 

LG생활건강은 치약, 화장품 포장재로 '멸균팩 재활용지'를 적극 활용한다. 멸균팩을 재활용한 종이는 이달(10월)부터 페리오, 죽염 등 LG생활건강 치약 브랜드의 낱개 상자 포장지로 우선 활용할 예정이다. 이후 신제품 화장품 세트와 내년 설 명절 선물세트 포장에도 멸균팩 재활용지를 적용한다. 이를 통해 연간 최대 1081톤(t)의 종이 포장재를 멸균팩 재활용지로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LG생활건강은 MZ세대 10명 중 6명이 친환경 소비를 중시하는 '그린슈머(Greensumer)' 성향이라는 고객의 선호를 반영하고 고객 경험을 혁신하고자 멸균팩 자원 순환 모델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멸균팩 재활용지를 제품 패키지에 적용하는 건 국내 화장품·생활용품 업계에서 LG생활건강이 처음이다.

또 정식품도 이달부터 재활용 종이를 활용한 박스 패키지를 생산할 예정이다. 정식품 관계자는 "멸균팩이 제품군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만큼 이번 협약을 통해 지속적인 멸균팩 재활용 순환체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한솔제지 최승용 부사장은 "한솔제지는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멸균팩 자원 순환모델 구축에 참여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재활용공제조합 및 국내 주요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멸균팩의 재활용 및 순환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멸균팩을 재활용한 '자연드림 보드'.
▲ 멸균팩을 재활용한 '자연드림 보드'.

철저한 분리 배출 NO...재활용은 쉽게 쉽게

멸균팩은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산소와 빛이 닿지 않도록 해 열과 균에 강하고 폴리에틸렌으로 코팅해 물이 새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살균팩의 경우 천연펄프로 만들어져 화장지로 재활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알루미늄이 섞인 멸균팩의 경우 재활용 과정에서 알루미늄 입자가 펄프에 박히거나 황변 현상을 일으켜 원료의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멸균팩이 100% 재활용되기 위해서는 멸균팩으로부터 종이와 알루미늄, 폴리에틸렌을 분리할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있는 재활용 업체에 보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 멸균팩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제지 업체는 보기 드물다. 멸균팩 재활용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은 업체의 경우 인건비를 들여 멸균팩을 분리해야 하고 비용을 들여 폐기하는 일이 발생한다.

환경부는 2024년부터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시행한다고 고시했다. 지난 2021년 2월 24일 환경부가 '분리배출표시제에 관한 지침' 개정안 행정예고를 통해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하겠다고 발표한 후 관련 시민 사회 단체와 전문가들이 반대 의견을 수차례 개진했으나 별도 개정 없이 강행한다는 태도다. 

'재활용 어려움' 표기는 소비자들에게 재활용이 불가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재생 휴지, 건축 판넬, 백판지 등으로 재활용이 충분히 가능한 자원임에도 일반쓰레기로 버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원의 재활용률을 높여야 하는 시대적 흐름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행태다.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멸균팩을 '일반쓰레기'로 취급해 소비자에게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밝힌바 있는 아이쿱자연드림은 그동안 '기픈물'의 포장재인 종이 멸균팩을 회수해 종이타월과 화분을 만들었다. 건축판넬(panel)로 '자연드림 보드'를 개발했고 상용화를 준비했다. 자연드림은 2020년부터 축적한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통해 멸균팩을 재활용한 산업용 건축판넬 '자연드림 보드'를 개발, 생산하고 있다. 자연드림 보드는 멸균팩에 있는 뚜껑, 알루미늄, 종이를 소재 분류 없이 통째로 분쇄하고 열을 가한 뒤 성형하여 완성한다. 이처럼 재활용 과정을 단순화하고 비용을 줄여, 환경부가 우려하는 분리배출의 어려움을 해결했다. 기존의 복잡한 멸균팩의 공정을 간소화하는 동시에 목재판넬(MDF)과 같은 소재보다 우수한 강도를 갖추는데 성공했다. 기존 멸균팩 재활용 제품인 화분, 화장지 외에 현재 '자연드림 보드'를 활용한 꽃병, 액자, 거치대, 반려동물 집 등 다양한 시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자연드림 관계자는 "멸균팩은 충분히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환경부는 멸균팩의 분리배출 제도 개선과 재활용 공정 투자 등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재활용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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