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 필즈의 <의사>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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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 필즈의 <의사>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
[미술로 보는 세상(3)] 조양익 (미술평론가, 대륙으로 가는 길 문화예술위원장)
  • 2018.02.21 17:25
  • by 라이프인

그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일 또는 이런 배경도 있었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업에 따라 좋아하는 그림도 있습니다. 이 그림은 의사들이 직업면에서 좋아하는 그림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루크 필즈, <의사> 1891, 캔버스에 유채 166.4 x 241.9 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병상이 아닌 의자에 지금 죽어 가는 어린 아이가 누워있습니다. ​왕진을 온 의사는 턱을 괴고 어린 환자를 보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시들어가는 어린 생명을 보는 의사의 얼굴에는 아이를 위해 더 이상 해볼 방법이 없다는 한계와 인간으로서 울분이 느껴집니다. 19세기 후반은 아직도 많은 치료약이 개발되기 전이었으니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뿐입니다. ​오른쪽에는 그 죽어가는 아이를 차마 바라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습니다.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어둠 속의 아버지도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날이 점차 밝아 오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잔인한 아침입니다.


이것은 화가인 필즈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필즈는 1877년에 첫째 아이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어 <의사>를 그렸습니다. 필즈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상과 왼쪽의 따뜻한 빛의 석유등과 오른쪽의 어둡고 희미한 새벽빛의 대비를 통해 가슴시린 장면을 그려냈습니다. 절망 속에 희망이 남는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비평가들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루크 필즈, <의사> 부분


판화로 제작되어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많이 팔린 판화 중 하나가 되었고, 20세기에도 달력, 우표그림 등에 많이 등장했습니다. 1940년대 말 미국에서는 포스터 그림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루크 필즈의 ‘의사’를 보면 가족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이로운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떤 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나는 삶과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유지할 것이다’라고 했던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생각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묵묵히 제 할일을 하는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루크 필즈(Luke Fildes, 1843–1927)는 리버풀 태생으로 열일곱 살에 위링턴 미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장학금을 받고 런던에 있는 사우스 캔싱턴 미술학교(South Kensington Art School)와 로열 아카데미(Royal Academy)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만큼 미술 실력이 출중했던 모양입니다. ​런던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영국 사회적 사실주의 화풍의 지도자였던 프레데릭 워커(Frederick Walker, 1840–1875)의 작품에서 깊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1869년 스물여섯이 된 필즈는 ‘그래픽 (The Graphic)’이라는 신문사의 삽화가로 활동하였습니다. 이 신문사는 영국의 사회개혁가 윌리엄 토마스(William Luson Thomas, 1830-1900)가 편집자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루크 필즈, <노숙자와 굶주리는 사람>, 수채, 17.5 x 24.8 cm

필즈는 ​런던의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사회적 사실주의 기법의 흑백 삽화로 묘사한 그의 작품으로 가난과 불의, 계급적 불평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나아가 사회개혁론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원하는 사회의 변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870년 초, 필즈는 신문의 흑백 삽화에서 유화로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합니다. 특히 1874년에 발표한 이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둡니다.

루크 필즈, <임시 수용소 입소 허가를 기다리는 지원자들> 1874, 캔버스에 유채 137.1 x 243.7cm, 런던 로열 홀러웨이

흰 눈이 내리는 겨울밤입니다.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습니다. 긴 겨울밤을 지내야 할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수용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합니다. 아마 수용인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추운 골목에서 밤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 겨울바람을 맞으며 줄을 섰습니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겨울밤인데 여름옷을 입은 아이들이 보입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언니와 체온을 나누고, 엄마의 옷깃을 잡고 있는 어린 소녀 모습에 가슴이 멍해집니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산업혁명이 절정을 있던 시기입니다. 초기 자본주의는 복지가 없었습니다. 실업과 가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산업혁명의 성과가 빛날 때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이 작품으로 필즈는 영국 사실주의의 중심인물로 부상합니다. 그의 작품은 평론가들과 대중들 사이에서 회자되었습니다.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필즈의 삽화는 영국의 여러 신문에 게재되었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영국 서민들의 삶을 담은 그림으로 그에게 영향을 준 프레데릭 워커보다도 더 강렬한 작품입니다. 물론 워커는 단명했기에 직접적 비교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워커보다 필즈에게 더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할머니라고 합니다.

필즈의 할머니 마리 필즈(Mary Fildes, 1789-1876)는 대단한 여성이었습니다. 노동자와 민중들의 선거권 획득을 위한 차티스트운동(Chartism)이 본격화하기 전인 1820년 전부터 여성운동에 헌신한 여성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서프러제트(Suffragette, 여성 참정권론자)인 마리 필즈는 맨처스터 여성개혁회(Manchester Female Reform Society)의 의장이었습니다. 초기 차티스트 운동에서 중요한 사건인 피털루 학살(Peterloo Massacre) 당시 집회를 주도한 주요 인사 중의 한사람입니다.

루크 필즈, <홀아비> 1875, 캔버스에 유채 168.9 x 248.3 cm, 영국 사우스 웨일즈 미술관

등불도 없는 어두운 방입니다. 아이가 다섯이나 있습니다. 이제 바닥을 기어 다니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빠의 무릎 위에 있는 아이는 축 늘어져 있는 게 어딘가 아픈 것 같습니다. 아빠의 모습이나 얼굴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식탁 옆에 서 있는 큰 아이는 이미 세상 이치를 알고 있나 봅니다. 이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을 남겨두고 엄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식탁에 놓인 빵 덩어리가 이 식구들을 위한 마지막 빵일까요? 엄마의 부재가 너무 커 보이는 장면입니다. 남은 사람들,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루크 필즈의 <의사>는 1949년,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 AMA)가 포스터로 65,000장이나 제작하여 한 번 더 유명세를 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최근에도 ‘오바마 케어(Obama care, 공식 명칭 The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PPACA)’란 말이 자주 들려왔기 때문에 미국 의료보험제도를 둘러싼 정쟁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이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민주당 출신인 트루먼,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트루먼은 10년 플랜을 통해 전 국민 의료보험실시와 병원의 전국적인 증설, 그리고 의료인력 100% 확대를 계획했습니다. 트루먼은 2차 세계대전이 전쟁이 끝나자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공공의료보험 제도 도입을 제안했고 여론도 호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공공의료보험 제도가 도입될 경우 직원들의 의료보험료를 강제로 부담해야 할 기업들의 단체인 상공 회의소(Chamber of Commerce), 진료비에 대해 정부가 간섭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병원협회(American Hospital Association)와 의사협회(AMA)가 반대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결국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이때 포스터 사진으로 쓰인 것입니다.

이들은 먼저 <의사>를 1947년 자신들의 단체 창립 100주년 기념우표에 사용하여 의사들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트루먼의 공공의료정책을 반대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구호가 인상적입니다. "Keep Politics Out of this Picture" 21세기를 사는 우리야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뉴딜정책이 시행되던 수정자본주의 초기라 먹혔나 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속지 않을 자신이 있죠? 그림 하나에 담긴 이야기지만 늘 세심하게 그리고 누구를 위해 그렸는지 알아야 그림의 제 맛을 알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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