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방식으로 공동체가 살아나야 농촌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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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방식으로 공동체가 살아나야 농촌이 산다"
진안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한명재 센터장 인터뷰
  • 2023.08.16 10:23
  • by 정화령 기자

농촌과 도시에서 사회적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어떤 점이 다를까?

인구 감소로 지역 소멸의 위기를 겪는 농촌지역에서는 시장은 물론 공공분야의 메커니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활에 필수적인 돌봄‧의료‧보육과 교육은 물론 생활 서비스도 도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열악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지난 7월 국회에서는 '농촌지역 공동체 기반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약칭 농촌사회서비스법)'이 통과됐다. 농촌사회서비스법을 통해 지역 주민이 연대‧협력하여 서비스 공동체를 만들어, 부족한 서비스를 취약계층에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사회적 농장의 지원 토대도 마련됐다. 서비스 제공 주체가 늘어나면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공동체를 기반으로 수행 인력과 사업 기반을 잘 준비하는 것 또한 남겨진 과제이다.

물론 도시에서도 빈곤과 소외로 발생한 문제를 공동체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마을공동체 지원 조례를 폐지하고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를 지원 중단한 후, 대부분의 자치구에서 지원센터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그간 이뤄졌던 사업은 행정에서 일부 대체하거나, 참가자가 불편을 감수하는 선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은 막을 내렸다. 도시에서 마을공동체의 역할은 주민 간 소통과 네트워크의 주요한 창구 기능이었기에 그 여파가 적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농촌의 경우는 다르다. 만약 모처럼 시작한 수많은 공동체 사업이 정책적인 이유로 일시에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소통이 아닌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었을 것이다. 행정이 모든 것을 수행하지 못하고 영리 기업이 올바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공동체와 사회적경제가 농촌의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전라북도 진안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한명재 센터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진안군사회적경제청년창업센터 앞에서. 앞으로 이곳에 진안의 사회적경제 조직 다양한 상품들이 입점 예정이다. ⓒ라이프인
▲ 진안군사회적경제청년창업센터 앞에서. 앞으로 이곳에 진안의 사회적경제 조직 다양한 상품들이 입점 예정이다. ⓒ라이프인

진안군 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2022년 진안협동조합연구소에서 민간 위탁받아 정식으로 출범했다. 전국 지자체 중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 설립으로는 늦은 시작이다. 지난 2020년 전라북도에서 중간지원조직 공모사업으로 70%의 지원이 확정됐으나, 군에서 나머지 예산을 승인받지 못해 설립이 무산됐다. 이후 군 의회 의원과 행정을 만나 사회적경제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은 귀농귀촌지원센터, 마을공동체지원센터, 도시재생지원센터와 함께 4개 중간지원조직이 모여 진안의 행정과 마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일방적으로 사업을 하청받아 수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한정된 예산을 효율화하기 위해 여러 센터의 중복되는 내용의 프로그램은 통일하고, 시민을 교육하고 의회를 설득하는 등 앞으로도 과제가 많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아직은 행정과의 파트너십을 쌓아가는 단계로 보였다.

농촌 지역에서 사회적경제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묻자, 한 센터장은 "농촌에서 사회적경제만을 따로 떼서 설명하기란 애매하다. 농촌의 경제가 지속가능해지려면 사회적경제 모델이 움직여야 하고, 그게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에서처럼 기존 경제의 부족한 부분을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보완하는 게 아니라, 전체 시스템에 사회적경제 개념을 도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캐나다 동부의 노바스코샤주를 예로 들었다. 면적은 남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인구는 92만 명 남짓이다. 인구 2~3천 명 마을에서 필요한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급자족하는 방식을 보고, 우리나라의 농촌이 모델로 삼아야 하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또한 퀘벡의 CDR(Coopérative de développement régional,지역개발협동조합)과 같이 협동조합 모델을 지역사회에 전파하는 방식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2021년 연구에 참여한 '진안군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을 보니, 시민의 역량을 키워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사회적경제의 성공이라는 그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진안의 협동조합 수는 2019년 28개에서 현재 53개로 늘어났으며, 8개가 설립 준비 중이다. 한 센터장은 "진안에 협동조합이 120개 정도 생기면 경제가 자립할 수 있을 정도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판단하고 있다.

 

ⓒ라이프인
ⓒ라이프인

진안은 금강과 섬진강이 흐르고 전국에서 저수량이 다섯 번째로 큰 용담호가 있다. 그리고 산림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지리적 특징도 있다. 천혜의 자연을 활용하여 사회적경제도 힐링과 치유를 중심으로 한 조직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소 생소하지만, 생태를 파괴하지 않는 친환경 낚시 방법인 '플라이 낚시'나 산림 부산물인 '우드칩'을 활용한 무경운 농법 등이 그 사례이다. 

그리고 2024년에 생기는 국립지덕권산림치유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연 농법의 생산자 조직과 치유 식단 레스토랑, 숲 해설사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조직이 구성되고 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진안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종합적인 안정감을 제공하겠다는 생각에서다. 
 

▲ 국립지덕권산림치유원 조감도. ⓒ산림청
▲ 국립지덕권산림치유원 조감도. ⓒ산림청

이런 과정에서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풀뿌리에서 사람을 조직하고 공동체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공동체가 해체돼야 시장이 형성되니 자본주의는 항상 그 틈을 파고든다.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아무리 돈을 투자해도 시장 논리만 남아있고 공동체성이 결여되면, 지원이 끝나는 시점에 실패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한 센터장은 "여기는 산 하나 넘어가야 마을이 나오는 고립된 지역이지만 그 안에서 주민 간의 끈끈함이 있다. 그건 하나의 계기만 있으면 큰 동력이 작동한다는 장점이기도 하다. 원주민도 귀농인도 지속가능한 경제가 없으면 떠날 수밖에 없기에, 사회적경제를 통해 지역과 공동체를 회복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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