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배신
상태바
총체적 배신
밀양에서 만난 성미산학교 학생들과 인터뷰
  • 2017.10.25 16:47
  • by 공정경 기자

10월 23일 오후 1시, 성미산 학교 학생들이 4박 5일 농촌 활동을 하기 위해 밀양에 막 도착했다. 12학년 유예, 지미, 거북(모두 예명)에게 청소년의 눈으로 본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대해 들어봤다.

성미산 학교 학생들이 "우리가 밀양이다" 라고 외치고 있다.

 
공정경 기자(이하 공) : 언제부터 밀양에 왔나요?

지미 : 학교 차원에서는 밀양을 7년째 오는 거고 저희는 5년째 오고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뵙지만 해마다 할매들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게 느껴져요. 일 년에 한 번씩 뵈니까 오히려 그 차이가 확 느껴집니다. 처음 뵐 때는 투쟁에 대한 열정이 마을 전체에 있는 게 느껴졌어요. 할매들이 움막에 올라가서 투쟁하고 계시면 따뜻한 거 드시라고 아침부터 어묵탕 끓여서 갖다 드리고, 움막에 같이 있다가 경찰, 한전과 싸움이 나면 피하라고 하셔서 내려오다가 체증 카메라 들고 있는 경찰 앞에서 째려보고...

송전탑이 들어서고 나서 분위기가 많이 변했어요. 합의하신 분들도 계시고...내년에도 만나자고 안으면서 헤어졌는데 올해는 못 가게 되고. 송전탑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시고 그냥 본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작년부터는 일상적인 이야기만 하세요. 2~3년 전에는 갈라졌다는 느낌만 있었는데 최근에는 얼굴을 아예 안 보신다거나 관계가 많이 틀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송전탑 문제가 끝나더라도 마을 주민들과는 계속 같이 사셔야 하는데...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 주민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안 좋아진다는 게 젤 속상해요.

반겨주시고 즐겁게 얘기하면서 일 도와드렸었는데 이런 시기에 직접 만나 뵀을 때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하면서 왔어요. 걱정도 많이 되고요.

공 : 지속적으로 연대 오는 모임이 '어린이책시민연대' 한곳밖에 없다고 해요. 그래서 고립감도 굉장히 많이 느끼고 계시고요.

지미 : 두 가지 다 굉장히 힘드실 것 같다고 생각해요. 송전탑이 지어지기 전에는 많은 연대자들이 있었는데, 다 지어지고 나니까 연대하던 사람들도 없어지고. 연대자들은 행사 있을 때나 서울에 올라올 때나 보지 일상적으로는 그 마을 안에 계시는 거잖아요.

공 : 이번 공론화위원회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거북 : 공약으로 건 사항이었는데... 공약으로 걸었지만, 탈핵에 대해서 한 번도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았기 때문에 공론화위원회 자체에 대해서는 잘못됐다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나라도 첨예한 문제에 대해서는 투표를 하니까요.

그러나 그 규모나 선정과정에서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민참여단 1차 조사 때에는(결정 1개월 전) 30%만 신고리5·6호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고 마지막 4차 조사에서조차 70%만 그 위치를 알고 있었어요. 30%가 여전히 신고리5·6호기의 위치도 모르고 결정을 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성실도도 문제가 있고 그런 사람을 뽑아놨다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시민참여단은 관심 가져야 할 사람, 적극적으로 관심 가지겠다고 모인 사람들이잖아요. 또한, 그 과정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지점입니다.

구성에서도 인원수, 지역별, 세대별 비율로 봤을 때 이 공론화위원회가 진짜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기구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유예 : 신고리 5·6호기 위치는 저희가 수업시간에 5-10분만 배워도 알 수 있어요.
공론화위원회가 잘 되는 나라로 영국의 예를 드는데요, 영국 공론화위는 보통 기간이 일 년 넘게 진행하고 지역별로 몇천 명이 강당에 모여서 토론하고 또 다른 그룹이 모여서 토론한다고 합니다.

거북 : 애초 500명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밀실 토론을 한 후 국가 대소사를 결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지와 재개 측의 표 차이가 19%인데 19%가 움직인 게 아니라 10%가 움직여서 20% 차이가 난 거니까 50명만 움직여도 그만큼 차이는 납니다. 유명한 사람 나와서 연설을 하건 현란한 말솜씨로 하건 그 정도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는 쉽다고 생각합니다. 겨우 50명도 안 되는 사람의 마음 바꿔서 국가의 이런 중대한 결정을 한다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투명하게 TV 토론회처럼 하는 형식도 아니었고 국민 전체 중 공론화위원회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관심도가 낮은 상황에서 진행했고 어떻게 설득하고 설득됐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애초 공론화위원회의 역할을 시민참여단과 학습/토론을 하면서 중요한 소스를 제공해주는 정도로 하고 언론은 여기에 살을 붙여 더 많은 국민이 알게 한 후, 정부는 공론화위의 권고를 듣고 정부의 결정안을 국민투표로 부쳤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어느 부분에서 어떤 점으로 토론했고 어떤 내용이 마음에 와닿아서 그렇게 결정하고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차후에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공 : 지역토론회 할 때 건설재개 측으로 나온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지진 나는 거 걱정하지 말고 당신 집과 우리 집 걱정을 해야 한다. 원전 안 지으면 전기료 엄청나게 올라가서 에너지 양극화가 심해진다. 지금도 전기료 못 내서 촛불 켜고 지내다가 불나서 죽은 사람들도 있다고.

거북 : 정부가 전기료 올리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런 거 알고서도 사기 치는 거잖아요. 재개 측은 돈이 많으니까 잘 먹히는 시나리오에 대해서 수십 가지, 수백 가지 분석을 해봤겠죠. 전반적으로 봤을 때, 이게 무슨 숙의 민주주의입니까.

공 : 실질적으로 밀양이 직접적인 피해당사자이니 공론화위 토론 과정에 참여해 발표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미 : 토론회에서는 피해당사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번에 그런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피해당사자의 목소리조차 듣지 않은 과정과 결정에 어떻게 ‘숙의 민주주의의’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까요?

공 : 숙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색하죠.

유예 : 신고리5·6호기 시민참여단에 청소년이 없습니다. 10대들이 직접 떠안을 문제이고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대상 선정과정에 10대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건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따로 청소년공론화모임을 만들었고 저도 참여했습니다.

청소년공론화위에 참여한 대부분이 중지를 원했어요. 많은 인원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2시간 동안 첨예한 토론을 했습니다. 좋은 의견교류도 오갔고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구나’라는 지점들도 청소년의 입으로 나왔어요. 나이가 어려서 토론을 못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공 : 그중 어떤 내용이 기억에 남나요?

유예 : 전체적으로 핵발전의 문제에 대해서는 공유가 많이 돼 있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재생에너지에 대한 토론이 제일 많이 진행됐습니다. 재생에너지도 어딘가에 지어야 하고 그 어딘가에 살고 있는 주민이 있을 거고 송전하는 과정에서 송전탑을 짓게 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또한 완벽한 대안이라고 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기억에 남아요.

공 : 역시 예리한 질문이 나왔군요.

2011년부터 지금까지 일주일 단위로 꾸준히 연대하고 있는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들이 23일 위양마을 정임출 씨 댁에 모여 점심상을 차리고 있다. 어린이책 시민연대 회원들은 큰 상실감에 휩싸여 있는 정임출(76), 손희경(83) 씨가 걱정돼 "같이 모여 뭐라도 먹어야 기운이 난다"며 이럴 때일수록 서로 얼굴 보고 함께 있고 밥해달라고 귀찮게 해드리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임출 씨의 반찬에 순천 회원이 가져온 꼬막과 홍합탕을 더하니 이보다 더 귀하고 따뜻한 밥상이 없었다.

거북 : 할매들 상실감이 엄청 크실 거 같아 걱정이에요. 이제 딱히 하소연하실 때도 없는 거잖아요. 돈 있는 사람들, 힘 있는 사람들이 카르텔 해서 밀양을 못살게 굴었는데 정치마저도 밀양 할매들의 고통이나 염원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밀양을 고립시키고 나쁜 짓을 했던 것보다 정치를 통해 갈등을 승화시키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고 지지하고 피켓 들어서 ‘이제 됐다!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했는데... 그런데도 밀양송전탑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상실감을 크게 만들 거예요.

지미 : 이젠 진짜 뭘 믿어야 되지? 이런 마음.

공 : 공론화위 발표날 너무 낙담하셔서 "그냥 이대로 도로로 뛰어들란다. 나를 죽이고 원전을 세워라." 그러셨다고 하더라고요.

거북 : 전 정치 무관심이나 정치 혐오를 두려워하는 사람인데 이런 상황에서 할매들한테 ‘기다려보시라. 그래도 탈핵은 하겠다고 했으니까 5년 안에 뭔가 바뀔 거다’라고 지금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물론 바뀌긴 바뀌겠죠. 원전 몇 기가 폐쇄될 테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더 앞을 내다보고 더 큰 뜻이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큰 상실감이 있습니다. 실제로 20년 후에 탈핵이 되든 안 되든 그것과 상관없이 지금 상황에서 뭔가 하나라도 해야죠. ‘이것도 해결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더 큰 걸 하겠어.’ 그런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 수밖에 없어요.

지미 : 사실 밀양을 시작으로 해서 더 큰 길로 가야죠.

공 : 총체적 배신. 아까 이계삼 사무국장이 그러시더라고요.

모두 : 완전 그 말이 딱! 이에요.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이 손희경 씨(83)를 집에 모셔다드리며 작별의 인사를 하고 있다. 손희경 씨는 젊은 사람들이 힘을 내면 자신도 힘을 내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