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만 되면 해결 난다, 해결 난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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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만 되면 해결 난다, 해결 난다 했는데'
신고리원전5,6호기 건설 재개 결정 후 만난 밀양 할매
  • 2017.10.27 15:02
  • by 공정경 기자

딸그락딸그락 그릇 부딪치는 소리,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 솨아솨아 뜨거운 꼬막 식히는 소리, 쌕쌕 밥솥 돌아가는 소리. 부엌이 부산하다.

감자 넣은 부드러운 시래기, 물김치, 큼지막한 깍두기, 고추양파장아찌, 뜨끈뜨끈한 밥이 상위에 오른다.

순천, 부산, 울산, 창원, 남해에서 온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들이 23일 정임출씨(76) 집에 모였다. 2011년부터 연대한 어린이책시민연대는 일주일에 두 번 밀양(위양마을 용회마을)에 방문하고 있다. 밀양 방문뿐 아니라 밀양할매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함께 한다고 한다. 정임출씨는 "세상천지 이런 엄마들이 어디 있냐. 이 엄마들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왔다"며 연신 고맙다고 말한다.

김 모락모락 나는 꼬막과 시원한 홍합탕이 마지막으로 밥상에 오르고 덕촌할매(손희경 씨. 83)를 기다린다.

"할매가 콩 농사짓느라 엄청 바빠. "할매, 콩 농사 고마 지으소. 그 많은 걸 어째 혼자 다 하노. 그냥 다 내삐리삐라." 그랬더니 "그것도 자식인데 우째 내삐리노."그런다. 이게 부모 마음인 기라. 할매, 그래도 촛불은 가야지, 했더니 "아이고, 내가 시간이 없어서 못 죽겠다." 이런다."

"(다들 웃으며) 다행이네. 다행이야."

어린이책 시민연대 회원이 덕촌할매를 모시고 들어온다.

덕촌할매(손희경씨)와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찬이 별로 없다. 풀만 있다."
"이마이 많은데 뭐가 찬이 없어요. 엄마, 얼른 와 앉으세요."
"(모두) 잘 먹겠습니다~"
"엄마, 우리가 같이 모여 뭐라도 먹어야 기운이 나지."

밥상에서 이런저런 말이 오간다.

"목구멍으로 뭐가 안 들어간다. 욕만 나오고."
"우리랑 같이 있을 때라도 한술 드셔야 넘어가지."
"밥솥에 있는 밥 다 비우고 가야 한다."

"내 눈감으면 제일 편한데, 그 맘밖에 없고. 티비로 발표 봤을 때 ‘아이고 이제 끝났구나!’ 하며 휴지를 티비에 탁 던졌다. 문재인만 되면 해결 난다, 해결 난다 했는데... 보름달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 되게 해주이소, 되게 해주이소’ 그리 빌었다. ‘임금님예, 제발 우리를 지켜주이소, 제발 우리를 지켜주이소’ 그리 빌었는데...하늘도 무심치 어째 우리한테 이러노."

 
"내가 너무 믿었어. 너무 믿었어. 최소한 공약한 건 지키겠지, 라는 믿음이 있었지. 마지막까지 안 된다는 마음이 요만큼도 없었거든."

정임출 씨가 문재인 대통령 당선된 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일부다.

문재인 대통령님께 편지 올립니다. 저는 요즘 세상이 바뀌는 재미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습니다. 석탄발전소, 원전건설계획 중단 뉴스를 보고 너무 좋아 마을 주민에게 전화를 해서 좋아했답니다. 이렇게 바꿀 수 있는데 지난 12년 세월 정말 분하고 원통하고 억울하고...

"(한숨) 자다가 생각해도 뻘떡 일어나지. 아이고, 도둑놈아. 아이고, 도둑놈아. 이럴 수가 있나. 이래 실망을 시킬 수가 있나. 너무너무 아니잖아. 이건 진짜 아니잖아. 박근혜 같으면 밀고 나갔다. 뒤도 안 보고 밀고 나갔다."

"젊은 사람들 힘내소. 힘내면 내 따라간다. 이래 무너지면 너무 억울해서 안 된다. 자꾸 욕만 나온다. 눈물이 나와서 말을 못 하겠다."

어린이책시민연대는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할매들이 상경했을 때도 함께했다. 공론화위 발표에 오열하시며 “그냥 이대로 도로로 뛰어들란다. 나를 죽이고 원전을 세워라” 하시는데 ‘큰일 나겠다’ 싶어 21일 밀양에서 진행한 촛불문화제 자리에서도 옆에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르신들 마음 상한 게 너무 얼굴에 표가 나고 덕촌할매가 끝내 울음을 터트리셔서 아무래도 밥해달라고 귀찮게 하면서 얼굴 한 번 더 뵙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어린이책시민연대 한 회원은 지난해 추석이 제일 분위기가 좋았다며 지진을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지난해 경주 지진 났을 때는 시민, 언론, 정부가 지진과 원전에 대한 우려로 하나가 됐었는데 사람들이 왜 이리 빨리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정임출씨와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이 다음 주에 보자며 서로 안고 있다.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들이 덕촌할매를 집에 모셔다드리고 있다.


당일 같이 인터뷰한 이계삼 사무국장은 글이 잘 안 써져서 보도자료를 이틀 동안 썼다고 한다. 수많은 글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 이계삼 사무국장이 이틀 동안 글이 안 써졌다는 건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이나마 헤아려진다.

"숙의라 함은 ‘깊이 의논한다’라는 뜻인데 핵심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일체 배제하고... 이게 어떻게 숙의입니까. 최소한 제대로 한다고 하면 지역순회토론이든 4번의 토론회이든 공론장에 송전선로 당사자들 불렀어야죠. 신고리 원전 관련해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를 들었어야죠. 우리가 할 얘기가 얼마나 많았는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도, 대통령의 발표에서도 밀양송전탑 주민 등 당사자들의 문제는 철저히 배제됐어요.

보상과 이주 약속 등으로 사실상 한수원의 볼모가 된 서생면 지역 주민들과 현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의 당사자성은 그토록 인정하면서, 이 초고압송전선로로 인해 12년간 싸웠고 생존권을 빼앗긴 밀양 주민을 비롯한 송전선로 주민들의 당사자성은 왜 제대로 반영되지 않습니까.

시민참여단의 합숙토론 1개월 전인 9월 16일 실시된 2차 조사에서도 신고리 5·6호기의 위치를 아는 시민참여단이 30%에 불과했고 이후 1개월 사이 70%까지 상승하기는 하였으나, 끝내 최종 결정을 하게 된 4차 조사 때까지도 30%의 시민참여단이 신고리 5·6호기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했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지역과 당사자들에 대한 고려가 사실상 거의 없었다는 것의 반증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계삼 사무국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최소한 위로라도 해야 하고, 정부는 마을공동체 파괴 피해조사와 신고리5·6기를 포함해 신고리 사업에 대해서 밀양주민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계삼 사무국장의 마지막 말이다.

"떼쓰던 사람들이 또 떼쓰는 차원이 아니다. 밀양에 대한 총체적 배신이고 밀양의 총체적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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