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의 동력은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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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의 동력은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리더의 서재] 메뚜기와 꿀벌 / 김병권(서울시 협치 자문관)
  • 2018.06.15 10:49
  • by 라이프인

김병권 정책 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NPO활동을 해왔고 그 중에서 최근에는 협치와 혁신정책에 관심이 많다. 그 맥락에서 서울혁신센터 센터장, (사)사회혁신공간 이사를 거쳐 현재는 서울시 협치 자문관으로 일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작은 혁신과 협치 사례들을 어떻게 발전시켜 거시적이고 시스템적인 혁신으로 전환시킬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사회적 관계와 우정의 의미를 일깨우는 사회혁신 교과서

사람들은 혁신이라는 단어는 흔히 ‘기술혁신’이나 ‘조직혁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혁신은 대체로 기업경영을 하는 분야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혁신, 또는 공정혁신이라는 개념으로 자주 사용되었고, 가끔씩 정당이나 사회단체들이 조직을 새롭게 강화시키기 위해 조직혁신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해왔던 탓이다. 때문에 혁신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기업에서 첨단기술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거나, 조직의 면모를 일신하는 과정을 연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혁신라는 단어가 ‘사회’라는 단어와 어울리면서 사회혁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고 정책과 운동, 비즈니스 영역에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정의 핵심철학을 협치와 함께 ‘사회혁신’이라고 내걸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청와대에 ‘사회혁신수석실’을 신설하고 서울시 혁신정책을 전국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혁신이라는 정책 개념이 여전히 일반인은 물론이고 활동가나 식자들에게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회혁신으로 글로벌하게 공인된 대표 전문가가 한사람 있다. 바로 영국의 진보적 정책가로서 토니블레어 내각에서 전략기획관을 역임한바 있고, 현재 영국의 대표 사회혁신재단 네스타(NESTA)를 이끌고 있는 제프 멀건(Geoff Mulgon)이 그 사람이다. 제프 멀건은 서울시 사회혁신 국제자문단 주요 구성원이기도 하다. 제프 멀건의 여러 저서 가운데 2007년 저서 <사회혁신이란 무엇인가>는 일찍 번역되어 국내에도 알려지기는 했다. 그러나 이 저작은 사회혁신에 관해 쉽고 간명한 해설을 담고 있는데 비해서 그 기초가 되는 이론적 배경이나 사회구조에 대한 접근 방법론 등이 빠져 있어서 정작 사회혁신의 체계적인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은 되지 않았다.

메뚜기와 꿀벌 | 저자 제프 멀건 | 역자 김승진 | 세종서적 | 2018.04.30

그런데 제프 멀건이 가지고 있는 사회관과 역사관,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 접근, 그리고 이에 기초해서 그가 사회의 변화를 위한 전략으로서 왜 사회혁신을 채택했는지에 대한 종합적 틀을 제공하기 위해 2013년에 저술한 책 <메뚜기와 꿀벌(The Locust ant the Bee)>(세종서적 출판)이 최근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필자가 볼 때 사회혁신에 관한 기초 교과서로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저술된 것이라서 그런 탓인지 저자는 처음부터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글을 연다. “자본주의는 창조하는 시스템이기도 했지만 약탈하는 시스템이기도 했다. 창조력과 노동력을 동원하는 시스템이기도 했지만 강탈하는 시스템이기도 했다. 생산적이기도 하고 파괴적이기도 했다. 협업을 고도로 촉진했지만 이는 경쟁을 통해서였으며, 효율성을 고도로 촉진했지만 이는 낭비와 중복을 통해서였다.” 한마디로 자본주의를 양면적인 체제로 인식하는 것인데, 책의 제목에서 상징된 메뚜기는 약탈의 상징으로, 그리고 꿀벌은 창조의 상징으로 표상한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저자는 자본주의를 약탈과 착취의 시스템으로만 인식해서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방식의 사회변화 방식이나, 반대로 자본주의의 창조적 측면만 부각시켜서 시장경제를 무작정 옹호하는 사회인식 방식을 모두 비판한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약탈적 본성을 어떻게 적절히 통제하면서 자본주의의 창조적 긍정성을 살려낼 것인가 하는 길을 찾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사회혁신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 기초하여 그는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요인을 1) 성장, 2) 집단지성, 협동, 공감, 3)완전한 시장과 완전한 공동체, 4) 우정과 관계의 극대화, 5) 가치, 측정, 낭비, 6) 기업 활동을 넘어서는 기업가 정신, 7) 돈보다 시간이 목적인 경제 등의 다소는 생소한(?) 배열로 재구성해보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나간다.

이러한 분석에서 가장 차별적으로 돋보이는 대목은 그가 사회변화의 핵심요소로서 ‘관계’를 매우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이미 그는 영국 노동당의 정책으로 ‘관계국가론’을 제안한 바도 있는데, “오늘날 떠오르고 있는 경제는 상품보다는 관계, 소유보다는 경험, 생산보다는 유지”가 더 중요하다면서 관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의 가장 절실한 요구는 이제 더 많은 물건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절실한 욕구는 우정, 동료애, 사랑, 돌봄, 더 나은 환경, 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이다.”

특히 이 대목은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청년들의 고립과 은둔, 노인들의 고독사 등이 사회문제의 전면에 부상하는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형성을 통해 삶의 풍요로움을 회복하고자 하는 방향과 잘 조응하고 있다. 더욱이 돌봄이나 간병 등 복지시스템이 시설중심에서 이른바 ‘커뮤니티 케어’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 왜 필요한지를 잘 설명해주는 논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 책은 450쪽 정도의 짧지 않은 분량인데다가 경제와 사회, 정치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종횡무진 주장들을 편다는 점에서 쉽게 읽기가 좀 부담스럽다는 첫인상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량에 비해 복잡한 도식이 없이 간결한 문체로 기술하여 읽어 나가기가 의외로 수월하다. 더욱이 번역도 한두 가지 불편한 점을 빼고는 읽기 편하게 되어 있어 부담을 줄여주는 이점도 있으니 용기를 낼만하다. 무엇보다도 사회혁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많지 않은 참고도서 가운데도 종합적 관점을 보여주는 드믄 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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