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생의 죽음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상태바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라이프인.생명안전넷 공동기획 안전칼럼] 김혜진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2017.12.08 14:06
  • by 라이프인

이민호님들의 죽음

제주 제주용암해수단지 내 음료제조업체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이민호님이 제품 적재기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11월 9일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포항지역 수험생을 걱정하여 수능은 연기되었다. 하지만 수험생들과 같은 나이, 사고를 당한 후 10일 동안 사투를 벌이다 결국 숨진, 이민호님의 삶은 누가 걱정하고 있는가? 지금도 산업체에서 일하고 있을 6만 명의 이민호님의 생명과 안전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민호님이 전공과 관련이 없는 곳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이름은 현장실습이었지만, 프레스 안전센서 등 안전장치도 달려있지 않은 상태로 자주 오작동하는 위험한 기계를 홀로 다루었다. 3학년 2학기 교육과정의 2/3 이상을 이수해야 산업체파견현장실습이 가능하지만 7월부터 현장실습을 나갔다. 하루 12시간 노동을 해서 표준협약서에 위배되었는데도 관리감독은 없었다. 감독과 상담을 담당하는 취업지원관은 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된 상태였다.

이민호님이 경험한 일터는 산업체파견현장실습생 대부분이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학교는 취업률을 높이겠다고 전공과 상관없는 일자리에 학생들을 내보냈다. 표준계약서와 다르게 위험업무에서도 일했고 장시간 노동도 많았다. 야간업무도 했다. 학교와 고용노동부 모두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학교의 압박 때문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첫 일자리는 심각한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똑같은 대책들, 고쳐지지 않는 현실

올해 1월 홍00님의 죽음 이후 산업체파견현장실습 대책이 발표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산업체파견현장실습생들이 쓰는 ‘현장실습 서약서’가 ‘양심의 자유와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므로 중단·폐지하고, 취업자 게시 등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교육부도 현장실습이 ‘근로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학습중심’으로 현장실습체제를 개편하는 개선안을 내놓았다. 실습기간을 1개월로 한정함으로써 저임금 노동력 공급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교육부의 개선안 안내 자료에 의하면 현장실습 기간 1개월은 언제라도 3개월로 늘릴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결국 ‘산업체파견’의 형태를 바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개선안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한 ‘현장실습 서약서’도 그대로 담겨있었다. 현장실습생을 ‘노동자’가 아니라 ‘학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따른 임금을 지급할 의무도 없앴다. 저임금 노동이 더 심각해질 위험도 있었다.

‘산업체‘로 학생들을 넘기는 한 제대로 된 실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는 산업체에 ‘직업훈련’의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에 학교 자체적으로 시설과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다. 산업체파견현장실습이 사실상 조기취업이므로 직업계고 학생들에 대한 직업교육과 취업을 위한 상담도 준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직업계고 학생들은 전공과 연관된 직업을 구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제출된 수많은 ‘산업체파견현장실습 개선방안’은 한 번도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

죽음의 원인을 생각한다

교육부는 이민호님의 죽음 이후 12월 1일 ‘산업체파견현장실습 폐지’를 발표했다. 이제야말로 근원적인 대책이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교육부 발표 내용을 아무리 뜯어봐도 “폐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홍00님 사망 이후에 교육부가 마련한 개선안과 내용이 같기 때문이다. 똑같은 정책을 놓고 제주 현장실습생 사망 이전에는 ‘개선안’이라고 내놓고, 사망 이후에는 “폐지안”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교육부 안을 보면 여전히 3개월간 산업체로 학생들을 내보낸다. 물론 ‘교육프로그램에 따라 실습지도 및 안전관리를 하는 경우에만 허용‘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이 단서는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이 시작된 이래 계속 붙어있던 것이다.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았을 뿐. 우수 현장실습 기업 후보군을 학교에 제공하고 기업에 다양한 행정적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데, 제대로 된 ‘실습 프로그램’을 갖춘 기업은 없다는 사실을 교육부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교육부에 묻는다. 교육부가 똑같은 정책을 재탕하면서 ‘산업체파견현장실습’을 유지하는 것은 ‘직업계고 학생들 일자리는 이 정도면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 아닌가. 문제가 있는 현장을 바꾸기보다는 개인이 적응하도록 하자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진로교육과 직업훈련, 취업 지원을 통해 안정적 일자리로 연결하는데 게으른 것 아닌가. 이미 망가진 직업계고 교실을 다시 살리는데 힘을 투여하기보다는 나쁜 일자리라도 빨리 내보내자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산업체파견현장실습 폐지와 권리를 위한 교육을 말한다

‘현장실습’이라는 교육과정 중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위험이 상존하는 일터에 가장 힘이 약한 ‘현장실습생’들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폭풍이 이는 날 배에서 일하다 사망했거나, 72시간 노동을 하다 아직도 사경에 처해있거나, 눈이 내리는 날 야간작업을 하다가 지붕에 무너져 사망하거나, 일터 괴롭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콜센터 욕받이부서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이제 이런 일은 중단시켜야 한다.

산업체파견이 아니어도 학교와 고용노동부, 지자체가 함께 안전한 실습장을 만들고 현장실습 교사를 배치하면 된다. 전공과 관련 없는 산업체로 학생들을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안에 진로탐색을 위한 과정을 넣고, 직업계고 학생들을 위한 전문 직업상담원을 배치해야 한다. 말로만 청년취업을 걱정하지 말고 많은 재정을 투여해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정부가 최선을 다하면 직업계고도 더 많은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될 수 있다.

물론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일터의 노동권과 인권무시에 맞설 수 있도록 직업계고 교육과정에, ‘노동인권 교육’이 담겨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권리를 알아도 홀로 저항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산별노동조합은 직업계고 학생들을 예비 조합원으로 가입시키고 일터에서 조합원이 되어 권리를 위해 나설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일터를 안전하게 변화시키는 또 다른 길이기도 하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