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주 이야기] 기원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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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기원하는 일
  • 2019.03.25 17:57
  • by 최윤정

굿을 보기 위해 제 발로 굿판을 찾아간 것은 처음이었다. 주관단체에 전화해서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니 "해 뜰 때부터 준비하는데 그 준비가 다 되면 시작하니 아침에 와보라" 한다. 도대체 아침 어느 중에 오라는 건지 애매하여 "그럼 8시쯤 가면 될까요" 물었더니, 조금 망설이다 대략 9시 전후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굿은 정확한 개시 시간이 없고 이른 아침에 모여 준비를 하고 성원이 되었다 싶음 시작하는 건가 보다. 그렇게 칠머리당 영등굿을 보게 되었다. 

 

제주에서는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고 한다. 바람의 여신, 영등 할망이 2월 초하루에 서풍을 타고 제주에 들어와 보름께 북풍을 타고 동쪽으로 떠난다고 한다. 영등 할망은 제주에 머무는 그 2주 동안, 밭에는 곡식을, 바다에는 어패류 씨앗을 뿌려준다. 풍요와 안전을 위해 힘써주는 영등 할망을 잘 대접하고 즐겁게 놀리는 것이 바로 영등굿이다. 제주시 사라봉의 칠머리당 뿐 아니라 바닷가 마을 곳곳에서 영등 할망을 위한 굿을 벌인다. 바다를 생업터전으로 삼는 해녀와 선주들이 주요 참여자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인 칠머리당 영등굿은 음력 2월 초하룻날 환영제와 열나흗날 송별제로 2번에 걸쳐 진행한다.

 

△ 음력 2월 초하루(지난 3월 7일)의 칠머리당 영등굿 환영제의 모습, 제주항 수협 어판장.

 

환영제는 제주항 수협 어판장에서 진행되었다. 해녀와 선주들 외에 수협/어촌계 관계자, 도의원, 경찰서장, 기자, 연구자들이 보였다. 인간문화재 김윤수 심방(당굿의 진행자)이 타악기 장단에 맞춰 이런 저런 의식을 한참 진행했다. 이색적인 것은 굿의 말미에 수협 임원들이 의복을 갖춰 입고 유교식 제사도 함께 지냈다는 점이다. 분위기가 엄중하거나 집중력이 고조된 행사는 아니었지만 관람객들은 끼어들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나는 처음에는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어느새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자세가 되었다. 굿에 압도되어서가 아니라 기원의 장소에 함께 있는 사람으로서 예의를 차리고 해녀와 선주들의 기원에 힘을 더하고 싶었다.

 

△ 음력 2월 열나흗날(지난 3월 20일)에 지내는 칠머리당 영등굿 송별제의 모습, 제주시 사라봉 칠머리당.

 

노련한 여성 심방이 주도한 송별제는 환영제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노래 대목도 많고 즉흥적인 대화나 우스갯소리도 자주 있었다. 짚으로 만든 작은 배에 선주나 선박의 이름을 달아 놓았고, 상차림도 매우 크고 화려했다. 관람객들의 대답과 웃음이 자연스러웠고, 동그랗고 납작한 떡도 함께 나눠 먹는 등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분위기였다.

 

고작 두 번의 굿을 본 것으로 굿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영등굿을 보며 마음 속에 떠올린 것은 '경외와 감사' 였다. 인간보다 더 큰 세계에 대한 공경심, 두려움, 그리고 주어진 것에 조화롭게 순응하며 살겠다는 다짐들을 느꼈다. 선주들과 해녀들의 간절한 손짓을 보며 기원하는 일은 어떠해야 하는가도 생각하게 된다.

 

다시, 환영제의 제주항 수협 어판장. 환영제가 마무리 될 즈음 야외에서는 돼지고기와 순대 몇 점, 간단한 찬으로 식사가 준비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환영제는 송별제와 달리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어판장의 관리자였을까, 선주였을까. 어떤 중년 남성이 멀리 있는 누군가를 계속 부르길래 돌아봤다. 어색하게 쭈뼛쭈뼛 다가오는 이들은 바로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굿의 뒤풀이자리에 식사를 같이 하자고 부르던 중이었다. 남성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상차림이 완성되었고 그들은 둘러 앉아 식사를 함께 했다.

 

△ 사고를 당해 죽거나 다친 해녀들을 위로하며 올해 해녀들의 안전을 특별히 기원하는 중이다.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는 영등굿과 어울리는 장면이지 싶었다. 밥 한 끼의 풍요, 일터의 안전 같은 것들은 우리가 노력하고 조금은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기원하는 일은 그러하다. 우리가 결코 할 수 없는 것은 영등 할망이든, 당신(堂神)이든, 우리가 믿고 따르는 신에게 청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기꺼이 하는 것이 기원하는 일의 마음가짐이다. 영등 할망이 숙제로 가지고 간 풍요와 안전 외에도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작은 풍요,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안전도 있다. 그런 것들을 실천해야만 기원하는 일에도 명분과 힘이 생길 것이다.

 

♧ 영등신과 굿에 관한 정보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영등송별대제> 안내 팜플릿을 참고하였습니다.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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