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책임을 묻다, 기후위기는 왜 '인권'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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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책임을 묻다, 기후위기는 왜 '인권' 문제인가?
22일 '기후변화 시대의 기업의 책임, 공급망실사법의 활용과 확장 토론회' 개최
  • 2023.08.24 23:14
  • by 노윤정 기자
▲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후변화 시대의 기업의 책임, 공급망실사법의 활용과 확장'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라이프인
▲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후변화 시대의 기업의 책임, 공급망실사법의 활용과 확장'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라이프인

최근 유럽 산업계를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있다. 바로 '공급망 실사'다.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를 말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의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기업 활동이 ESG 요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고려하는 'ESG 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 공급망 실사는 기업이 비재무적 요소까지 고려하는 체계를 갖추도록 의무화하는 개념이고, 이를 법제화한 것이 '공급망 실사법'이다. 유럽연합(EU)은 기업이 전 공급망 내 인권·환경 실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을 지난 6월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고, 2024년 시행을 목표로 입법 작업을 추진 중이다. 개별 국가의 경우를 보면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이미 독자적으로 공급망 실사 관련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 사례로서 독일이 지난 1월 스코프3(Scope3, 전체 공급망 탄소배출량) 관리에 특히 주목한 '공급망 실사법'을 발효했다.

공급망 실사법이 적용되는 대상은 단일 기업이 아니라 해당 기업의 공급망 내 있는 모든 기업이다. 즉, 국내 기업들 역시 영향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이에 이소영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장혜영 국회의원(정의당), 국가인권위원회, 녹색전환연구소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기후변화 시대의 기업의 책임, 공급망실사법의 활용과 확장 토론회'를 개최하고, 기후위기 시대 기업의 책임을 비롯하여 기업이 단순히 사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공급망 실사법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 이상수 서강대학교 교수. ⓒ라이프인
▲ 이상수 서강대학교 교수. ⓒ라이프인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후위기 문제가 '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인권' 문제라는 점에 주목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서강대학교 이상수 교수는 '기후변화 시대에 대한 기업의 책임: 기후실사의 대두'라는 주제로, 기후위기 문제는 인권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가장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기업이 야기하는 기후 영향 역시 인권 보호라는 관점에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책임연구소의 리처드 히데 박사는 2014년 발표한 논문(화석연료와 시멘트 생산업체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및 메탄 배출량에 대한 추적: Tracing anthropogenic carbon dioxide and methane emissions to fossil fuel and cement producers)에서 1850년부터 2010년까지 배출된 온실가스의 약 2/3가 90개의 오일, 석탄, 가스업체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회 역시 CSDDD 수정안에서 "1988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온실가스의 70% 이상이 단지 100개의 기업에서 나왔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처럼 기업이 기후위기에 가장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주체이기에, 기업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지 측정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로 탄소 배출량 감축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한 뒤 이 과정과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기후실사'(Climate due diligence)이며, 기업이 기후실사를 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기후실사 체제'다.

특히 이 교수는 기후위기가 인권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기후위기를 인권 문제로 바라보는 경향은 2000년대 중반부터 포착되는데, 일례로 국제연합(UN, 유엔) 인권 및 환경에 대한 특별 보고관인 데이비드 보이드는 2019년 보고서에서 "국제 인권의무를 준수하기 위해서, 국가는 기후변화와 기후행동의 모든 측면에 권리 기반의 접근법을 적용해야 한다"며 안전한 기후에 대한 권리가 인권 보장의 측면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파리협정 서문에서도 기후위기 대응 시 고려해야 할 것으로 '인권'을 명시했다. '우르헨다 판결'로 불리는 네덜란드 대법원 판결은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의무를 진다는 점을 명시하며 그 근거로 '유럽인권협약'의 조항들을 들었다.

이 교수는 "기업이 인권 보장의 책임을 진다면 기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가"라며 "탄소 배출 자체가 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기업의 인권 책임 문제가 기후 문제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실사의 필요성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기후실사는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및 공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및 공개 ▲현실성 있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 수립 및 공개 ▲온실가스 감축 성과 추적 및 결과 공개 등의 내용을 포함해야 하며, 효과적인 기후실사를 위한 지배구조(기후실사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 교수는 특히 기후실사 체제에서 기업을 감시하고 압박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국내 탄소중립기본법이 '녹색경영'이라는 기후실사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나, 실사의 강제성이 없고 간접배출의 정의가 협소하여 전체 공급망에 대한 실사는 방치됐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 김종철 어떤바람 농장 변호사. ⓒ라이프인
▲ 김종철 어떤바람 농장 변호사. ⓒ라이프인

이어 김종철 어떤바람 농장 변호사가 '기후실사 규범의 동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기업들이 기후위기에 큰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기후대응 활동에 소극적인 이유로 "기업의 기후 책임을 담보할 규범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란 점을 꼽았다. 이에 기업의 책임을 물을 핵심 수단으로 기후실사를 강조하고, 그와 관련된 규범의 변천을 살펴보았다.

김 변호사는 기후실사 규범이 ▲기존의 인권·환경실사 관련 규범의 확장 해석을 통한 기후실사 인정 ▲기후실사에 관한 연성규범 ▲기후실사에 관한 경성규범 등의 세 단계로 진화해 왔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 '유엔의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 지침'(UNGP)에 포함된 인권실사 규범과 프랑스의 실사의무법 등이다. 지난 6월 개정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 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이하 OECD 가이드라인)은 두 번째 사례에 해당하는 대표적 연성규범이며, 기후실사 의무를 명시한 경성규범은 아직 시행된 사례가 없으나 국제·국가적 차원에서 여러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관련하여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것이 바로 CSDDD다.

특히 김 변호사는 기존의 인권·환경실사 규범의 확대 해석을 추동한 것이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소송'이라고 말해, 앞선 이 교수의 발제에 이어 다시 한번 시민사회의 역할에 주목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실사의 확대 해석을 반영하여 기존의 공공기관 대상 인권경영 권고 개정 ▲국내 NCP(국가연락사무소) 개혁 및 개정 OECD 가이드라인 중 기후실사 내용 활용 등을 통해 국내 기업 대상 진정 제기 ▲CSDDD와 개정 OECD 가이드라인을 참고하여 국내에서도 인권환경실사 의무법 제정 등을 제안했다.

▲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 ⓒ라이프인
▲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 ⓒ라이프인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는 마지막 발제를 맡아 '기후실사에서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했다.

그는 우선 '기업의 비재무 요소 규제'와 관련한 공시들이 표준화되고 구체화되는 추세에 관해 언급한 뒤, 이것이 실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비재무 정보 공시 의무가 기업을 직접적으로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탄소 중립 비즈니스로 유도'하는 간접적인 규제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 변호사는 "공시 의무가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 의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스코프3의 규모가 방대함에도 측정하고 감축하고자 하는 노력이 미흡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동시에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참여시키고 소통하며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지 변호사는 기후실사 관련 규범을 정할 때 "구체적으로 '기후 영향'이 실사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기업의 기후 책임을 ▲스코프3까지 포함한 온실가스 측정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감축 목표 설정 ▲기후 대응 전략에서 인권 영향 고려 등으로 정리했다.

특히 그는 인권 영향을 고려한 기후 대응 전략에 대해 "기존 산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기업, 지역사회 등에 미치는 영향을 인권적 관점에서 고려해야 하고, 신생산업에 있어서도 공급망 투명성, 인권 등의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 등) 물리적 리스크에 적응하는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 차별적 결과를 유발한다면 공정한 회복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공급망상 협력회사 등 다른 기업, 시민사회단체 등이 기후실사에서 협력 이해관계자로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의 경우, 명확하게 기후실사가 명시된 규범이 나오진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실사가 작동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각 기업이 어떻게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고자 하는지 공개하고 있고, 환경단체가 소송 제기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라며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갖고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급망 실사법의 확장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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