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이후①] 기본소득, 공유부인가 포퓰리즘인가(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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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이후①] 기본소득, 공유부인가 포퓰리즘인가(上)
코로나 경제 활동 위축으로 기본소득 관심 높아져, 전 세계는 실험 중
  • 2020.03.12 01:17
  • by 김정란 기자
08:23

코로나19의 공포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우리는 전문가들의 제안에 따라 모두 '잠시멈춤'하고 있지만, 새로운 위협에 대한 대비까지 '잠시멈춤'이어서는 곤란하다. 감염병은 공포스러운 존재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필요한 변화, 이미 변화하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바로미터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스, 메르스처럼 코로나19를 극복한 이후 그 기억을 점차 잃어갈 것이다. 세계적인 바이러스 전문가 네이선 울프는 자신의 책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바이러스의 위협에 금세 무관심해진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면 그것이 처음 인지됐을 때만큼이나 인간에게 엄청난 위협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결국 이번 감염병을 극복하겠지만, 언제라도 이 위협은 다시 닥쳐올 수 있고, 그때는 이번에 드러났던 문제들을 개선한 상태에서 새로운 위협과 맞서야 한다. 이는 방역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라이프인은 코로나19로 인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변화가 필요한 곳을 들여다보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는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편집자 주]

 

▲ 코로나19로 인한 소득 감소에 대한 불안감으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기본소득 관련 청원. ⓒ청와대

코로나19 확산에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감염병 확산세를 진정시키는 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지만, 문제는 경제활동의 위축이다.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기피가 심해지면서 식당, 학원가 등 줄어든 소득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와중에 주목받는 개념이 있다. 바로 '기본소득'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8일 "국민들에게 100만 원 씩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말했고,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득 지원추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타다'의 이재웅 대표는 국민청원을 통해 "50만 원 씩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했고, 보수 정당인 미래통합당의 황교안 대표도 이 제안에 "기본소득급의 과감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오는 4월 열릴 총선에 '1인당 기본소득 60만 원씩 지급' 정책을 들고나온 '기본소득당'은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 원을 제안한 정당 '시대전환', 민생당·미래당·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생계위기 극복을 위해 재난 기본소득 지급을 촉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책으로 기본소득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홍콩은 만 18세 이상 성인 영주권자에게 1인당 현금 약 150만 원, 마카오는 현금카드 약 4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위의 사례들은 일시적 '재난기본소득'이지만, 이것과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실험 중인 기본소득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을 "정치공동체가 심사와 노동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주기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현금"이라고 정의한다. 국민들의 손에 직접 돈을 주고 쓰게 하겠다는 기본소득에 대해 누군가는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고, 누군가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합한 정책"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허무맹랑한' 제안을 넘어 어느새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 들여다본다.

■ 우리 곁에 어느새? 낮은 단계 기본소득은 대한민국도 실험 중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이사이기도 한 백승호(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본소득이 처음 소개됐던 10년 전쯤만 해도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정책"이라고 했다고 회상한다. 일도 안 하는데 정부가 돈을 준다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10년 사이에 이 허무맹랑한 정책은 어느새 전 세계적으로 실험 중인 대안 정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핀란드는 지난 2017년부터 2년간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고, 스위스는 2016년 기본소득 지급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친 바 있다. 결과적으로 핀란드는 현재 실험을 중단했고, 스위스는 부결됐지만, 이는 현재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완전한 의미의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이를 일부 충족하는 '낮은 단계의 기본소득'은 우리나라에서도 지급되고 있다. 노령연금과 아동수당 등도 일정 연령에 해당되면 소득 구분 없이 지급된다는 점에서 넓은 범위의 기본소득에 해당된다. 이재명 현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시작한 청년배당금에 이어 경기도에서도 청년기본소득 지급을 시작했고, 서울시도 만 19세~34세에 매월 50만 원을 최대 6개월간 지급하는 청년수당을 실시한다.

▲ 매월 누구에게나 일정 금액을 지급하자는 정책을 내건 '기본소득당'이 출범하기도 했다. 이들은 '공유부'를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기본소득당

■ 왜 일부가 아닌 모두인가? 선별적 복지에서 모두의 권리로

왜 기본소득일까? 각국의 정부는 취약계층이나 일부 연령을 위한 복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 등의 수단을 통해 돈을 벌고, 세금을 내고, 자신이 복지 정책의 대상이 될 때 그 혜택을 입는다.

기본소득은 다르다. 자신의 소득, 연령 등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기본소득은 좀 더 적극적인 부의 분배의 개념을 담는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는 시혜적 측면이 아니라 사회에 발생한 부를 공정하게 분배한다는 측면이다. 기본소득당 측은 기본소득은 왜 모두를 대상으로 하느냐는 라이프인의 질의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돈을 주자는 구래의 선별적 복지제도 개념을 넘어 기본소득은 하나의 '권리'"라고 답했다. "천연자원과 자연환경 등을 사적으로 소유해서 그동안 개발 이익을 독점해왔던 소수에게서 공통의 몫을 되돌려주자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시작된 것은 노동과 산업환경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이윤 추구가 목적인 대신 노력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3차산업 시대까지만 해도 열심히 한 사람이 많이 벌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현대는 또 다르다. 노력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걸 경험한 사람들은,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고 믿게 됐다.

고용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2019 고령자 통계'(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퇴직한 55~64세 취업 경험자 중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는 비율은 9.6%에서 2019년 12.2% 지속적 상승하는 동안 정년퇴직 비율은 8.2%(2016년)에서 7.1%로 지속적 하락하고 있다. 평생 직업은 운 좋은 사람의 이야기가 됐다. 지금 직업이 있는 사람도 언제 중단해야 할 지 예측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재난 상황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위축된 경제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등 각종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대출을 위해 은행을 찾은 한 소상공인은 "기존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이 안 된다더라"며 선별적 지원대책의 실효성을 지적했다.

원해도 노동을 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커진 시대, 고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낮아진 시대에 기본소득은 신용등급이 높건 낮건, 나이가 많건 어리건 지급되고, 비상 상황에도 국민들이 생존권과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 증세할 거잖아! vs 현대의 인간은 존재 자체가 부 창출의 요소

커지는 불안감에도 오히려 아직 대중은 기본소득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원 마련에 대한 의문이 크다. 정부가 주는 돈이 결국 자기 주머니에서 그대로, 혹은 더 많이 나가는 세금의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기본소득 실현 가능성이 현재 당장 높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백승호 교수(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는 "경제관료들의 경우 '증세 프레임'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로 인한 반발이 큰 것이 기본소득 실현의 장애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본소득 연구자들은 '공유부'라는 개념으로 이런 우려가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백 교수는 2017년 한국사회정책에 실은 '기본소득논쟁 제대로 하기'라는 자신의 논문에서 "기업이 초과이윤 극대화를 위해 개발한 알고리즘을 공개해 플랫폼을 만들고 많은 이들이 그 속에서 활동하게 하는 이른바 플랫폼 경제 과정에서 축적된 지대는 현재 지대 형성에 기여한 일반지성에게 분배되기보다는 플랫폼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썼다. 이렇게 일부 플랫폼 기업들이 독점하는 막대한 부를 기본소득을 통해 재분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 연구자들은 이렇게 특별한 증세보다는 인간 모두가 참여해 구축한 인프라를 이용해 창출한 부에 대한 분배를 주장한다. 기본소득당 측은 "천연자원이나 자연환경처럼 원래 있었던 것 또는 기술발전이나 지식발전 또한 뛰어난 개인이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연구개발을 위한 인프라는 이전 사회에 살아가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구축한 것이기에 기술발전이나 지식발전에 따른 이익을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나누어 가질 자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자신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발생시키는 데이터를 이용해 돈을 벌면서도 다국적기업이어서 세금을 피하는 대형 기업에 매기는 소위 '구글세' 등이 기본소득의 재원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2017년 2월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지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인간과 같은 일을 하는 로봇에게 매기는 '로봇세'를 주장하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지대의 비정상적 상승 등을 통해 일부에게만 돌아간 부를 이용한 분배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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