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협의 궤적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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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협의 궤적을 돌아보며
  • 2020.02.14 18:34
  • by 이은정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국 최초의 소비자협동조합은 1920년대 '목포소비조합'으로 알려졌다. 1932년 경에는 국내 협동조합이 300여 개가 넘었다고 추정되지만 일제의 탄압,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파산하였고 해방 이후 1960년 풀무생협, 노조 소비조합, 신협 등이 생겨나 소비조합의 모태가 되었다. 최근 30년간 한국 생협의 양적 질적 변화가 컸는데, 한국 생협 운동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4개 생협연합회는 각각 30주년, 20주년을 맞아 그간의 사업과 활동을 공유했다. 각 생협(두레생협, 아이쿱생협, 한살림, 행복중심생협)의 고유한 사업 방향과 정책이 어떤 성과를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에서 지난 1월 '리뷰 : 한국 생협의 궤적'를 발표했다. 연구를 진행한 이은정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객원연구원이 그 내용을 간략하게 라이프인에 공유한다.

 

▲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1995년 창립 100주년 기념 총회에서 정의된 협동조합의 가치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리뷰 : 한국 생협의 궤적'은 두레, 아이쿱, 한살림, 행복중심연합회로부터 총회자료집과 10주년, 20주년, 30주년 자료집을 공유 받아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처음 이 연구 주제를 받아들었을 때 느꼈던 것은 '무거움'이었다. 물론 객관적인 데이터 기반의 정리라는 연구 주제의 방향이 있었지만, 30여 년간의 한국 생협 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어렵고도 무거운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막상 연구 과제를 시작하고 맞닥뜨린 첫 번째 문제는 '자료 구하기'였다. 초기에 생협들이 열악하고 영세한 규모로 사업을 시작하였고, 화재나 잦은 물류센터 이전 등 갖은 부침이 있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초기부터 자료를 모으고 축적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문제는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자료정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총회자료집 내용의 일관성이 부족한 점, 그리고 수치가 서로 다른 경우였다. 어떤 자료를 선택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고, 왜 그 자료를 선택했는지 설명과 주를 달아야했다.

세 번째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자료를 정리할 것인가'였다. 협동조합 7원칙은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고 어떤 정책을 시행하느냐를 비춰주는 방향표시 같은 존재이고, 일반기업들과는 다른 협동조합만의 사업적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고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생각에 7원칙을 등대 삼았다.

▲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협동조합 7원칙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차별 없이 조합원으로서 책임을 질 의지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조합원 가입제도는 '자기책임'이라는 협동조합의 가치에 기반 한 1원칙의 실행 제도라 할 수 있다. 한살림 창립 정관에는 '매년 1좌 이상을 증자'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다른 생협들도 초기 정관에 증자를 명시한 경우가 있었고, 협동조합의 취약점 중 하나인 자본 형성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매년 사업 계획에 증자액을 명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증자 정책이 지속적으로 실행되지는 못했다.

2000년 아이쿱생협이 공급출자금제도를 도입하고 다른 생협들도 이용출자금제도를 실시하게 되면서 일상적인 증자제도가 정착되었다. 아이쿱은 지속적인 증자 정책을 펼쳐 이용출자금, 가입출자금을 인상했고, 14년 책임출자금운동을 시작한 이후 매년 출자금 증가율이 조합원 증가율의 3배가 넘었다.

사실 가입 제도가 변화하면 조합원 증가율은 바로 영향을 받았는데 91년 한살림과 행복 중심이 가입출자금을 올렸을 때, 아이쿱이 2012년 가입출자금을 인상하고 가입 전 교육 전면실시를 시행했을 때 조합원 증가율이 낮아졌다. 조합원의 책임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입제도가 변경되었을 때 가입율이 급격히 낮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높은 가입문턱이 높은 관여를 이끌어내어 출자금, 조합 사업 이용 등 경제적 참여도가 높아졌다. 1원칙과 3원칙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한국 4대생협(두레생협, 아이쿱생협, 한살림, 행복중심생협) ⓒ라이프인

레이들로 보고서에 따르면 조합의 규모가 조합원의 참여를 낮추는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해외의 대규모 조합들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계속 단위조합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쿱이 단위조합 수가 가장 많고 규모가 작았으며 비수도권 지역 조합원 수가 65.9%(2017년)로 비수도권이 수도권에 비해 2배 정도 많았다. 한살림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조합 분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비수도권 조합원 수는 28.7%(2017년)로 수도권 집중이 크다. 두레나 행복중심은 수도권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지역에 단위조합을 설립하고자 시도를 해왔다.

초기 생협들에게 취약한 자본과 외상매출금 문제는 큰 과제였다. 외상매출금은 조합 재정을 압박하는 큰 숙제였고 신용카드 도입은 외상매출금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지만 카드수수료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그래서 2000년 한살림을 시작으로 CMS 제도를 도입했다. 결제 방법 외에도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실천했다. 

행복중심은 1991년에는 쌀 선수금을, 2011~2013년 수매자금 차입과 출자운동을 펼쳤다. 두레는 2000~2002년 토종밀가루, 무농약쌀 선수금 제도를, 한살림은 2001~2002년 쌀 선수금제도, 2017년부터 매장선수금제도를 시행했다. 아이쿱은 2002년부터 수매자금 출자운동을 시작한 후 수매자금, 클러스터기금 차입 등을 지속했고 2011년 수매선수금운동을, 2013년에는 선결제시스템을 전면 실시했다. 행복중심도 14년 매장과 온라인에 선결제 시스템을 도입했고 한살림도 16년에 매장선수금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외에도 생산안정기금, 가격안정기금 등 각종 기금을 통해 연대의 힘으로 협동조합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 한국 생협들은 수매선수금, 생산안전기금, 가격안정기금 등 각종 기금을 통해 연대의 힘으로 협동조합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을 지속해 오고 있다. ⓒ아이쿱생협

한국 생협운동은 법과 제도가 미비함에도 먼저 실천을 단행했다. 생협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임의단체나 사단법인형태로 사업을 했고, 1999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하 생협법)이 제정, 시행되기까지 생협법 제정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제정된 생협법이 현실에서 사업과 활동을 실행하는데 제약이 컸기에 바로 생협법 개정 운동을 시작했다. 

4개 생협연합회는 법‧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사업을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 초기부터 자회사를 설립했는데, 한살림은 98년 ㈜농업회사법인한살림유한회사, 2002년 ㈜한살림사업연합을, 두레는 97년 ㈜생협수도권사업연합을 설립했고, 아이쿱도 2004년 ㈜우리농업(한국유기농산물도매시장)을, 행복중심은 2014년 협동물류를 설립했다. 이후에도 공정무역사업 등 필요에 따라 자회사를 설립‧운영하는 한편, 지속적인 법 개정/제도개선 운동을 통해 협동조합 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 영역의 발전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4개 생협연합회들은 시기에 따라 변화가 있지만 조합원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훈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또 사회 문제에 많은 목소리를 내고 참여해왔고 특히 식품안전 문제와 학교급식 문제에 적극 참여해 한국 사회 전체의 식품안전 기준을 높이고 친환경 무상급식을 확대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생협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공정무역을 통해 국외 농민/노동자들의 더 나은 삶에도 관여를 하고 있었다.

1998년 4개 생협연합회 전체 조합원 수는 30,396명이었고, 2018년 4개 생협연합회 전체 조합원 수는 1,187,899명이었다. 20여 년간 조합원 규모로는 40여 배 성장하였다. 국내 친환경 농업의 기반을 튼튼히 지켜왔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의견을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거래 방식으로 생산자와 관계를 맺고 사업을 운영해왔다는 것이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할 일이라 생각한다. 환경 문제에 의견을 내면서 친환경적인 물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 부당한 거래를 비판하며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하는 것, 협동조합의 힘은 의견을 외치는데 그치지 않고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에 있음을 보고서를 정리하면서도 느끼게 되었다.

▲ 4개 생협연합회 조합원 수 증가와 매장 수 증가 현황(리뷰:한국생협의궤적 中)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조합원에 의해 소유되고 조합원의 필요에 따른 사업을 한다는 것은 확실한 수요층이 확보된 사업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생협계에 '생협의 위기'라는 말이 들려오고 있고 실재 매출과 조합원 가입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장에서의 경쟁, 빠른 외부 환경의 변화 등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조합원의 관여가 줄고 조합원의 요구와 멀어지면 협동조합사업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4개 생협연합회를 비롯한 한국 생협들은 초기에는 조합원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작은 규모와 헌신적인 활동가, 직원, 생산자들의 힘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이 지속될 시기에 조합원의 참여와 관여를 높이기 위한 정책을 적절히 시행하지 못했고 조합원 참여가 증가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회 변화가 크다고 하지만 조합원은 왜 생협에 가입 하였는지, 조합원이 조합에 더 깊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사업을 펼쳐야할지 돌아본다면 작은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자료가 지속되지 않아 담지 못한 자료도 많아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해서 하나 사족을 붙이자면 어떤 자료를 기록하고 남길지, 어떻게 자료를 축적하고 공유할지 함께 고민하고 모색해보는 기회가 있다면 앞으로의 협동조합 운동과 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0여 년의 시간동안 한국 생협들은 많은 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변화를 거듭해왔다. 당위에 의한 것도 있었을 것이고 필요에 의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 갈 발자국(궤적)은 조합원들과 함께 만들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미래에 적절한가?'라는 레이들로 보고서의 마지막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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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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