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NA, 함께 밥 먹자④]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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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NA, 함께 밥 먹자④]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한국·필리핀 청년 봉사자들의 이야기
  • 2020.02.06 17:33
  • by 공정희·이민준 한양대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석사과정
따갈로그어로 카이나(KAINA)는 '함께 밥 먹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가족을 식구(食口),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듯 필리핀에서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일상적인 친밀감의 표현이다. 필리핀 소도시 나가(Naga City)에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필리핀의 취약계층 여성들을 나나이(Nanay, 어머니)라고 부르며 함께 한식당 '카이나'를 운영하고 있다. 한류 열풍이 한창인 필리핀에서 한식 보급을 수단으로 취약계층 여성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카이나프로젝트>와 필리핀 개발협력분야의 현장 소식을 전한다.

새해가 밝았고, 카이나에는 한국에서 새로운 대학생 봉사자들이 파견되었다. 업무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이들에게 곧 파견이 종료되는 학생들이 응원과 걱정을 동시에 담아 인수인계를 했다. 함께 일하는 나나이(Nanay, 어머니)들도 올해의 목표와 계획에 대한 의지를 한껏 드러내며 새로운 학생들을 환영했다. 이로써 카이나에 파견되어 힘을 보탰거나 보태고 있는 한국의 청년은 어느덧 누적 16명이 되었다.

▲ 한국에서 파견되는 대학생들은 현지에서 언제나 큰 환영을 받는다. 좌측부터 한양대학교 장준태·이영남학생, 협력파트너 아테네오대학교 학생처장 소니교수 ⓒ공정희

카이나를 운영하는 대학생들은 창업이나 요식업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가'보다는 '봉사자'라는 표현이 가까운 이들의 노력이 쌓여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필리핀 작은 도시의 취약계층 여성 6명이 일자리를 갖게 되었고, 그 가족들은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제 카이나는 필리핀에서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을 마친 어엿한 사업체가 되었다. 그 다음단계는 협동조합 형태로의 법인 전환이다. 이를 통해 파견학생들은 나나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운영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향후 1,2호점의 수익으로 형성된 기금으로 점포수를 늘려 더 많은 취약계층 여성들과 그들의 가정에 혜택을 나누기 위한 규모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카이나가 사업초기에 마주했던 여러 가지 위기상황을 결국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에서 파견된 대학생들의 고군분투 덕분이다. 그동안 카이나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학생들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두려워하지 않은 덕분에 카이나는 짧은 시간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늘 필리핀 현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도움이 있었다.

카이나에서 일하고 있는 여섯 명의 나나이들 중 영어로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둘 뿐이다. 다른 나나이들은 보통 짧은 영어로 눈치껏 대화를 이어가거나 비교적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셜리'와 '아미'가 다시 현지어로 통역을 해주곤 한다. 몇몇 나나이들은 직접 소통하는 것이 거의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들과 중요한 대화를 나누거나 회의를 해야 할 때도 영어와 현지어(따갈로그어)에 모두 능통한 현지 대학생들이 동행하곤 한다.

▲ 봉사자들이 나나이들과의 업무미팅 후 결의를 다지고 있다. ⓒ공정희

한국의 학생들은 필리핀의 취약계층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제한을 받는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현지의 행정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과 파견학생들의 생활‧안전에 대한 부분은 특히 필리핀 봉사자들의 크고 작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필리핀 대학생으로 구성된 봉사자그룹은 한국에서 파견된 학생들에게 현지의 다양한 문화를 설명해주고, 파견학생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카이나의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 그 외에도 매장에서 필요한 물품이나 식자재들을 현지 온라인 쇼핑으로 저렴하게 구매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한국어교실에 스태프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카이나에 기여하고 있다.

▲ 노선 안내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필리핀의 교통수단은 현지 봉사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활동을 마치는 날까지도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측부터 대학생 봉사자 Glowsy와 Rachel. ⓒ공정희
▲한국어교실을 마친 후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남겼다. 좌측부터 Eric, Karl, Cars, Rachel. ⓒ공정희

이들은 종교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자원봉사활동이 비교적 생소한 필리핀에서 이미 상생의 가치를 공감하는 청년들이다. 종교적인 이유 또는 급여나 대가 없이 타인을 돕는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왜?'라는 호기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곳에서 봉사자그룹의 Rachel은 카이나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내가 가진 시간을 사회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에 사용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봉사자 Xavier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얻는 경험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봉사활동은 생각의 범위를 넓혀 줄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면, 봉사자들의 이런 가치 중심적인 태도와는 달리 오히려 현지 협력파트너인 아테네오대학교 측에서는 대학생 봉사자들이 카이나의 운영을 지원하는 것을 학생들의 실무체험의 기회로 삼고자 하며, 심리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참여 동기가 될 무언가를 제시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에서 파견된 학생들은 일정기간이 지난 후 언젠가는 한국으로 복귀한다. 그들이 한국에서 배운 리더십과 사회혁신을 위한 아이디어 등을 현장에 적용하고 나면 결국 장기적으로 현장을 지키고 취약계층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개발도상국 현지의 인적자원이다. 그렇다면 보다 많은 현지 청년들이 개인의 물리적인 보상이 아닌 사회적인 가치를 우선하는 일에 참여하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카이나의 청년봉사자 Eric, Xavier, Rachel에게 봉사활동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Q1. 봉사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ric :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을 참여자들 스스로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Xavier : 사람들을 계속해서 참여하게 만드는 방법은 그들이 환영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전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만약 내가 참여한 활동에서 환영받는다는 것을 느낀다면 난 늘 그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활동을 계속할 것이다.
Rachel : 일부 봉사자들은 그들이 활동에 항상 출석해야한다고 강요받을 때 낙담하기도 한다.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Q2. 필리핀의 청년들이 사회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기여하려면 그들이 어떤 가치에 공감해야 할까?

Eric :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일원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작은 행동일지라도) 결국 청년들이 사회에서 좀 더 나은 지위를 가지는데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Xavier : 청년세대가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스스로 고민하여 문제를 해결했을 때 결국은 그것이 그들 자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사회에서 청년은 그들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주체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청년들이 사회를 이끌 것이다.
Rachel : 우리는 우리가 사회의 일부임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사회 구성원을 돕는 것은 결국에는 우리 스스로를 돕는 것이다.

Q3. 필리핀 청년들의 봉사활동 참여가 보편적으로 확산된다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Eric : 청년들이 사회에 참여하면 훨씬 큰 임팩트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와 비교해서 그들은 좀 더 새로운 것에 대한 지식이 많고 쉽게 배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Xavier :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다른 청년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사람들은 확실한 동기부여가 없이는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동기가 부족하다면 그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참여하지 않고 있는 많은 청년들이 "난 저들처럼 되고 싶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어떤 롤모델을 찾지 못한다면 그들은 그저 먹고 자는 일상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좋은 리더십이 청년들에게 동기를 줄 수 있는 이유이다. 보는 대로 배운다.
Rachel : 청년들은 의견과 생각을 자신 있게 외부에 표현하고, 새롭게 등장한 기술을 쉽게 다룰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래의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인터뷰에 응해준 현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 좌측 세 번째와 네 번째가 각각 Eric, Rachel, 우측 두 번째가 Xavier이다. ⓒ공정희

필리핀의 청년 봉사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자발적인 사회참여의 동기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그로부터 오는 성장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들이 카이나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는 결국 한국의 파견학생들이 보여주는 리더십, 카이나를 통해 모인 사람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유대감과 소속감이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아무리 거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일을 진행하려고 할지라도 결국 변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며, 청년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분명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카이나와 함께하는 현지 대학생들의 참여를 늘리려면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오히려 봉사자들에 대한 공동체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필자의 가치관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한국과 필리핀의 봉사자들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서로에게 배우며 시너지를 만든다. ‘청년’들이 느낄 수 있는 공감대는 문화와 관습의 차이보다 강력하다. ⓒ공정희

카이나가 만들어가는 변화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았던 희망과 이 모든 과정 가운데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나와 타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감이다. 진심은 늘 통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봉사자들 사이의 국경과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었다. 카이나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모든 국제개발협력의 이해당사자들이 이 청년 봉사자들만 같다면 세계는 더 평화롭고 행복한 곳이 될 것이 틀림없다.

 

공정희
몽골 파견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쭉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했다. 주로 봉사자들과 현장 사이의 다리가 되어 운동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느낀 변화와 성장에 감동하여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현재 필리핀 ‘카이나’프로젝트에서 한양대학교 파견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민준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대학생활을 보낸 후 또래의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사회적경제를 통해 해결하는 일에 열정을 갖게 되었다. 사회문제 해결의 주인공은 청년 세대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여러 청년활동가들과 함께 도서산간으로 교육봉사를 다니던 중, ‘카이나’프로젝트에 파견되어 필리핀의 청년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혁신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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