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의 불닭볶음밥, 졸로프 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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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의 불닭볶음밥, 졸로프 라이스
[아프리카 음식 기행 ⑨]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별미
  • 2020.01.21 16:04
  • by 엄소희 (키자미테이블 공동대표)

당신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가? '한국 사람들은 매운 맛을 좋아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사실 한국 음식에 매운맛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한반도에 고추가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 즈음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다수의 '매운 음식'들은 근대화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진 음식이다. (사실 한식의 대부분은 근대화를 거치며 다양해졌고, 현대 한국 사회의 많은 한식 메뉴는 한국 전쟁 이후에 개발된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외국 유튜버들 사이에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유행한 적이 있다. (사실 정말 유행이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유행이다'라고 소개한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했었다.) 그 덕에 '한국 음식은 맵다'라는 인식이 더욱 견고해진 듯 하다. 한국인 스스로도 그 부분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많은 한국 음식이 매운 맛을 담고 있고, 최근 더욱 매운 맛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매운 맛을 즐기는 것은 비단 한국인 뿐이 아니다.

매운 음식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이 손꼽는 요리는 중국의 사천 지방 요리, 멕시코 요리, 태국 요리 일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춥고 건조한 대륙보다는 덥고 습한 지역에서 매운 맛의 요리가 더 발달했다. 매운 맛을 내는 향신료가 높은 기온에서 잘 자라기도 하고, 향신료를 통해 음식의 보존성을 높이고 입맛을 돋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운 맛을 내는 대표적인 식재료인 고추도 더운 지방에서 잘 자라며, 가장 매운(스코빌 척도가 높은) 고추들은 인도, 멕시코, 태국 등이 원산지이다.

▲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 중 하나인 레드 사비나 하바네로. 멕시코가 원산지이고, 매운 맛을 측정하는 지표인 스코빌 치수가 최대 57만에 이른다. 참고로 청양고추는 약 1만 스코빌 정도 ⓒamazon

아프리카 대륙에서 재배되는 고추는 식민 시대에 전해졌으며, 남미 지역에서 나는 매운 고추인 '레드 사비나 하바네로(red savina habanero)'종이 보편적이다.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 강렬한 매운 맛을 좋아하고, 대부분의 스튜나 기름 요리에 곁들인다. 동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스튜를 끓일 때 고추를 통째로 넣거나 오일의 형태로 활용하며,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이 고추를 베이스로 한 소스를 만들어 음식에 넣거나 곁들인다. (참고 기사: 아마존에 입점한 아프리카의 맛)

하바네로 고추 특유의 매운 맛이 살아있는 메뉴를 꼽자면 수도 없을 테지만, 대표적인 음식은 누가 뭐래도 서아프리카의 졸로프 라이스가 아닐까 싶다. 졸로프는 나이지리아, 가나, 세네갈 등 많은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흔히 먹는 매운 볶음밥이다. 조리 방식을 생각하면 볶음밥보다는 리조또나 빠에야에 가깝다. 각종 향신료와 채소를 갈아 만든 소스에 쌀을 넣고 졸이듯 익혀낸 음식이다.

▲ 키자미테이블의 졸로프 라이스. 고추기름으로 양념한 구운 닭요리와 함께 나온다. ⓒ키자미테이블

졸로프라는 이름은 세네갈과 감비아 등지에 퍼져있는 월로프 민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월로프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 전파되어 서아프리카 전역의 인기 메뉴로 등극한 것이다. 각 국가와 지역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 방식이 다르다. 많은 지역에서 졸로프를 대표음식으로 꼽고 있기 때문에, 어느 지역의 졸로프가 더 맛있냐를 가지고 경쟁을 하거나 설전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나이지리아와 가나는 각자의 졸로프 라이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며, 서로 비교하며 우위를 가리는 이벤트를 꾸준히 열고 있다. 마치 모로코와 튀니지의 쿠스쿠스 원조 논쟁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참고 기사: 음식 평화사절단, 북아프리카 쿠스쿠스)

▲가나의 졸로프 라이스(좌)와 나이지리아의 졸로프 라이스(우) ⓒthenigerianvoice

각 지역에서 졸로프 라이스에 대한 자존심을 내세울 정도로 졸로프는 특색이 강한 음식이다. 하바네로 고추의 매운 맛 외에도 마늘, 생강, 양파, 올리브 잎 등 적게는 5가지에서 많게는 10가지의 향신료가 들어가 특유의 풍미를 만든다. 나이지리아에서는 파티 음식의 대명사로, 커다란 솥을 장작 위에 걸고 직화 방식으로 졸로프를 끓여내는 것이 그들의 문화이다. 가나에서는 졸로프에 곁들이는 사이드 디쉬에 많은 공을 들인다. 튀긴 바나나를 간단히 곁들이기도 하지만 대개 단백질 보충을 위해 닭고기나 소고기, 생선을 곁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 가나에서는 졸로프에 곁들이는 사이드 디쉬에 많은 공을 들인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한국에서도 졸로프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이태원에 2~3군데의 아프리카 음식점에서 졸로프를 소개하고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맛보길 권한다. 매운 맛을 즐기는 당신이라면, 분명 졸로프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미리 이야기해둘 점은, 불닭볶음면 챌린지처럼 도전 의식을 불태울 만한 강렬한 매운 맛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음식으로 치면 낙지볶음이나 김치 전골 정도의 매력적인 매운 맛이랄까. 한국인의 매운 맛을 아는 당신, 이번에는 아프리카의 매운 맛에 도전해 보시라.

 

엄소희
케냐와 카메룬에서 각각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좋아하는 것(먹는 것과 관련된 일)과 하고 싶은 것(보람 있는 일), 잘하는 것(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의 접점을 찾다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아프리카 음식점을 열었다. 르완다 청년들과 일하며 '아프리카 청춘'을 누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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