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모교수, ‘청부과학자’인가? ‘단순 용역수행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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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조모교수, ‘청부과학자’인가? ‘단순 용역수행자’인가?
[강찬호의 위험사회 아웃(5)] 검찰·1심, 수뢰 후 부정처사 등 유죄 vs 항소심, ‘단순 용역 수행자’로 석방...피해자와 시민단체, 재판부가 ‘청부과학 용인’ 규탄
  • 2017.05.10 18:32
  • by 강찬호
2017년4월27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음날 서울대 조모교수를 석방했다.

돈을 받고 거짓된 내용을 작성해서 제출해 주는 과학자에 대해 ‘청부과학자’라고 부른다. 영혼이 없는 과학자를 일컫는다. 국립대 교수가 무고한 사람을 죽인 기업의 편에 서서 기업에게 유리한 보고서를 제출했다면, 이는 전형적인 청부과학자의 사례가 될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사건과 관련해 서울대 조모교수가 이러한 혐의를 받고 전격 구속됐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해당 교수의 행위를 규탄했다. 청부과학자라고 비판했다.

온 국민이 대선에 관심을 돌리고 있을 때인 4월28일 서울대 조모 교수가 석방됐다. 조모 교수는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가해기업인 옥시 측에 유리하게 조작해 시험결과보고서를 제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 결과 1심에서 징역2년, 벌금 2,500만원, 추징금 1,2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수뢰 후 부정처사, 증거위조, 사기혐의가 적용됐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혐의 중에서 수뢰 후 부정처사와 증거위조를 인정하지 않았고, 사기혐의만 인정했다. 형량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해졌다. 진실게임이 되어버렸다. ‘그는 청부과학자인가. 아닌가.’

서울대 조모교수가 구속될 당시 국립대 교수가 억울한 피해자들의 편에 서지 않고 돈을 받고 보고서를 조작해 가해기업에게 유리한 결과를 전달했다는 사실에 대해 여론은 따가웠다. 지식인의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했다. 호서대 유모 교수도 비슷한 사유로 함께 구속돼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특히나 조모교수의 경우 공무원에 해당되는 국립대 교수가 그런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이냐며, 시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반면 항소심은 검찰 수사와 1심 재판부의 판단과 달리 고의적으로 보고서를 조작해 제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사실관계를 달리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유해화학물질 관리의 실패로부터 비롯됐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원인이 존재한다. 서울대 조모교수 사건은 가해기업이 피해자들의 소송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로부터 파생된 사건이다. 국립대 등 대학사회의 연구 윤리, 지식인의 책무 등 우리 사회 도덕적 불감증과 관련된 또 다른 이슈로 불거졌다. 항소심의 판결대로라면 검찰이 조모교수에 대해 무리하게 혐의를 적용해 ‘엮어 넣었다’고 볼 수 있다. 1심 판결도 검찰의 수사 내용만을 적극 인용하는 ‘편향된’ 재판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그런 것일까. 항소심 판결문의 쟁점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2011년 8월31일 당시 보건복지부는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지목했다. 이어 그해 11월11일 동물실험 중간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를 재확인했다. 옥시 측은 서울대 조모교수에게 9월30일경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성 평가’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다. 연구비는 2억5천2백만원이었고, 연구기간은 2011년10월1일부터 2012년9월30일까지였다. 이와 별도로 2011년 10월, 11월, 12월에 매회 4백만원을 자문료 명목으로 지급했다. 총 1,200만원이다.

옥시 측 의뢰로 진행된 흡입독성시험 도중 2011년 11월경 ‘생식독성’이 확인됐다. 3주 독성시험에서 임신한 쥐의 태자가 사망했고, 생존한 쥐에서는 기형이 발견됐다. 조모교수는 이를 옥시 측에 보고했고, 그해 12월경 생식독성시험과 일반흡입독성시험을 분리해 진행했다. 2012년 4월 18일경 제출된 ‘최종 시험보고서’에서 생식독성시험 결과는 제외됐다. 옥시 측은 이 보고서를 2014년 12월19일 강남경찰서에 제출했다. 최종보고서에서는 생식독성 시험결과 외에도 2주, 4주 일반흡입독성시험의 조직병리검사 결과에서 확인된 ‘간질성 폐렴’ 항목이 삭제된 채 제출됐다. 검찰과 1심은 조모교수가 받은 자문료가 대가성이 있었고, 그 결과로 생식독성시험결과 등 불리한 결과를 제외한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서울대 조모교수가 연구를 의뢰받아서 용역을 수행하는 입장에 있는 만큼 ‘연구용역의 목적과 의사를 반영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다. 3주 흡입독성시험에서 생식독성이 확인됐고, 그 결과를 옥시에 보고했으며, 옥시의 요구로 생식독성시험과 일반흡입독성시험을 분리한 것인 만큼, 이를 두고 부정행위에 해당된다고 볼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즉 ‘최종보고서’(2012.4경) 제출에 앞서 2012년2월경 서울대 수의대에서 독성시험 ‘최종발표회’를 진행했는데, 이 때 조모교수가 생식독성시험 결과를 포함해서 발표했으므로 불리한 결과를 은폐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옥시 측에서 최종보고서 제출당시에 생식독성시험 결과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출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하나의 다른 쟁점은 최종 결과보고서에서 “왜 ‘미만성 간질성 폐렴 항목’이 제외되었는가?”이다. 2주, 4주 반복흡입독성시험 조직병리소견기록지에는 4가지 항목이 기재되었고, 여기에는 미만성 간질성 폐질환(이하 간질성 폐질환)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이 불거진 2011년 8월 당시에, 피해자들과 언론에서는 해당 병명을 ‘원인미상 간질성 폐렴’ 등으로 호칭하고 있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간질성 폐렴’이 불리한 항목으로 판단될 수 있었다. 검찰과 1심의 경우는 조모교수와 옥시 측이 불리한 항목을 제외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간질성 폐렴에 대한 조직병리소견에서 대조군과 시험군 모두에서 이 질환이 나타났고, 투여물질로 인한 독성학적 변화로 볼 만한 병변이 발견된 경우가 아니므로 옥시 측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러한 판단에 대해서 학문적 혹은 ‘과학적 재량행위’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질환에 대한 명칭도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8월31일 발표에서는 ‘급성 간질성 폐렴’으로 거론했고, 2012년 5월경에는 ‘원인미상 중증 폐렴(폐질환)’, ‘원인미상 폐 손상’으로 명명하고 있어 ‘간질성 폐렴’ 항목이 불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조모교수가 옥시 측에 제출한 최종 결과보고서에서는 2주·4주·13주 반복흡입독성시험 결과, 독성학적 병변이 관찰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4주·13주 흡입독성시험 결과 체중 감소, 혈액 및 혈액생화학적 결과 유의미한 변화가 관찰되었으므로 전신독성 유발 가능성이 있기에 원인을 확인하는 추가 시험의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최종보고서 결론에 대해 항소심은 ‘체중 감소 등 유의미한 영향이 나타났다’라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서 시험결과 보고서가 옥시 측에 유리한 내용이 아님에도 있는 그대로 기술한 경우에 해당된다며, 조모교수가 고의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은폐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항소심은 조모교수에 대해 옥시 측 요구에 따른 연구수행자의 위치이고, 그에 따른 의무를 다한 것일 뿐이라고 봤다. 반면 검찰과 1심은 조모교수가 생식독성시험 결과를 보고하고 옥시 측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리한 결과를 은폐한 이해당사자로 판단했다.

무엇이 맞는 것일까. 연구용역에 따른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의 요구에 을이 주어진 책무를 다한 것이냐, 아니면 대가성을 매개로 사전 협의를 한 것이냐가 쟁점이다. 자문료는 사전 협의의 대가로서 받은 ‘부정수뢰’라는 것이 검찰과 1심의 판단이다. 반면 항소심은 정당한 자문의 대가라고 판단했다. 자문료에 대해 소득세 신고를 했다며, 부정한 수입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항소심 판결이 있었던 4월28일 당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대책 활동을 해오고 있는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항소심 판결을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연구자로서 독성실험을 하고 그것이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실험 결과를 모두 확인하고 보고서를 제출했어야 한다. 흡입독성 실험과 달리 생식독성 실험결과는 옥시에만 보고하고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은 실험결과가 드러나지 않게 함으로써 결국 옥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과 다를 바 없고 1심 재판부도 그렇게 판단했다.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허용 가능한 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게다가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 증거와 달리 새로운 증거를 토대로 판단하지도 않았다. 또한 옥시 연구원 최모씨는 1심에 증인으로 출석해 ‘실험을 의뢰한 것이 2011.11.경 피해자들이 민형사상조치를 취하겠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대응하기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 ‘전체적으로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증언한 바 있었다. 한마디로 오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과 판결내용은 매우 황당하다. 옥시의 요구에 따른 서울대 조교수의 보고서 조작은 그대로 당시 민사재판부에 제출됐고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에게 합의를 종용해 결과적으로 쌍방과실의 교통사고 처리와 같은 방식과 수준으로 합의되고 말았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민사재판결과가 나온 직접적인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서울대 조교수의 엉터리 보고서였던 것이다.”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또 “오늘 나온 항소심 판결은 ‘연구자가 외뢰기업의 요구대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옥시 사건의 경우 ‘동물실험을 의뢰받은 서울대교수가 실험결과 중 중요한 독성결과내용을 삭제해달라는 살인기업 옥시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자문료 명목으로 연구비와 별도로 거액을 받은 일’이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한마디로 청부과학은 정당한 것이라는 시각에 다름 아니다.”라며, 검찰이 즉각 상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소송을 맡고 있는 민변 소속의 황정화 변호사는 “(항소심의 경우처럼) 재량행위를 넓게 인정할 경우 청부과학에 대해서도 용인할 여지가 높아질 우려가 있다”며, 검찰이 상고를 통해 대법원에서 다시 다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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