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사회적경제의 묘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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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사회적경제의 묘목장
[아프리카 소셜벤처 기행 ⑩] 전에 없던 사회적경제의 실험장으로 주목받는 아프리카 대륙
  • 2019.12.24 12:16
  • by 엄소희(키자미테이블 공동대표)

'아프리카 소셜벤처' 시리즈는 2019년 2월에 연재를 시작해 어느덧 연재 1주년을 앞두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매달 아프리카 소셜벤처 사례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1년 정도 안에 연재를 마무리할 생각이었지만, 사례를 발굴하고 공부하는 과정 중에 생각보다 방대한 숫자의 소셜벤처들이 아프리카 대륙 안에서 활동하고,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특별한 내외부적 요인이 생기지 않는 한, 시리즈를 더 길게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2019년을 마무리하면서 한 해 동안 관찰한 아프리카의 사회적경제 환경에 대해 정리해볼까 한다.

아프리카에서 소셜벤처 논의가 활발한 이유

2019년 하반기에 아프리카 현지에서 아프리카 소셜벤처를 다양하게 직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0월 르완다에서 열린 '아프리카 청년 정상회의', 10월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사회적기업월드포럼', 11월 아프리카연합 본부(아디스아바바 주재)에서 열린 '아프리카산업화주간'에 각각 참여했는데 각 행사의 주제 안에 소셜벤처 혹은 소셜벤처 사업가의 이야기가 다루어졌다. 이어 한국에서도 12월에 한∙아프리카재단의 주최로 '한-아프리카 청년포럼'이 열렸는데, 이 때 역시 혁신 사업 및 스타트업이 주요한 주제였다. 아프리카가 가진 물적, 인적 자원과 잠재적 시장을 고려했을 때 비즈니스에 관한 논의가 활발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필자가 이 논의를 소셜벤처와 연결 짓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스타트업 내지는 신규 비즈니스를 논할 때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소셜벤처와 유사한 기준을 적용할 때가 많다. '어떤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가', '어떻게 그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하는가'가 그것이다. 국내에서는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비즈니스 영역과 사회 가치를 추구하는 소셜 비즈니스의 영역을 구분하는데, 이것은 일반 비즈니스 영역이 '사회 가치'와는 일정 거리가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과 같은 소비 지향 사회에서는 소비자의 필요나 사회의 필요가 기업에 전달되는 속도보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 기업의 시장 확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가 먼저 생기고, 이를 판매하기 위해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떨어지는 소비자나 생산력이 떨어지는 인적 자본이 시장에서 소외되는데, 이를 보완하는 것이 사회적 경제의 영역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상황이 다르다. (각 나라나 지역별 산업 환경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신규 비즈니스는 사회 또는 소비자의 필요에서 시작한다. 최근 몇 년간 케냐, 남아공, 나이지리아 등을 중심으로 스타트업 육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이 배경은 '사회적 필요가 확실하기 때문에 시장이 확실하다. 부족한 것은 훈련되지 않은 기업가이다'라는 점이다. 사회적인 결핍을 채우고 이를 통해 공공복리를 달성한다는 점에서 아프리카 현지의 스타트업 대부분은 한국 기준의 소셜벤처에 부합한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이를 따로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벤처로 구분하여 부르지 않는다. 사회적 기업의 개념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도 있고, 이들의 비즈니스에 추구하는 것이 사회적 필요나 가치를 충족해야 한다는 점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한-아프리카 청년포럼' 중 'Co-Creation Hub'에서 발표한 아프리카 스타트업 지도. 노란색-파란색-녹색 순으로 스타트업이 활발한 국가를 나타낸다. ⓒ엄소희

앞서 소개한 국제 행사에 참여하면서 만난 사례들을 통해 2019년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소셜벤처들이 가진 특성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고액을 지불하는 소수 고객' 또는 '소액을 지불하는 다수 고액'
비즈니스 모델의 고객군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고액을 지불할 수 있는 소규모의 집단인가, 소액을 지불하더라도 숫자가 많은 대규모의 집단인가가 그것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공정무역 모델이다. 이같은 모델은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고, 이에 맞춘 품질 관리를 하는 것이 경쟁력이다. 최근에는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현지에도 중산층 그룹이 생기고 있어서 현지 거주 외국인을 비롯한 현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로컬 비즈니스도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소위 이야기하는 BOP(Bottom of Pyramid, 소득분위 하위에 위치한 사람들) 고객을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스이다. 저소득층도 지불할 수 있는 적정한 가격대를 제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제품의 효용이나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소액 대출 서비스나 모바일 기반 정보 공유 서비스 등이다.

인프라, 없길래 내가 만들었다
해외 기업들이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인프라의 부족을 꼽는다. 도로 및 교통의 미비, 불안정한 에너지와 자재 수급 환경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프리카는 산업의 불모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눈 밝은 사업가들에게는 사업의 기회가 된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아프리카 스타트업 사례들은 기술 기반 대안 에너지 사업, 적정 기술 적용 제품이다. 태양열이나 바이오가스를 활용한 그린 에너지 발전이나 재활용, 재사용 물질을 활용한 제품들이 선개발 사회에서는 '의식적인 소비'를 기반으로 성장하는데 비해, 아프리카에서는 현지와 지역에 적정한 '필요 기반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주요 비즈니스가 수도를 비롯한 도시를 중심으로 시작하고 자리 잡는데 비해, 대안형 인프라 제공 서비스는 지역에서부터 성장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도시보다는 시골에 에너지가 부족하고 물자가 부족한 탓이다.

빠르고 간편한 모바일 지불 방식
일반 대중을 고객으로 하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스타트업들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가장 빠르게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는 대륙이며 동시에 모바일 금융 활용 비율이 가장 높은 대륙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급격히 발전한 모바일 머니와 모바일 거래 환경이 비즈니스가 생겨나고 성장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대륙별 성인인구 모바일 계좌 보유 비율과 실 사용 계좌 수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 모바일머니산업현황보고(2017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판에서 재인용)

경제력이 높아지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소비 수준이 높지 않은 아프리카 대륙 안에서, 즉각적인 결제 시스템은 매우 중요한 전제 조건 중 하나이다. 케냐, 남아공 등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확산된 모바일 머니는 기존에 은행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했던 저소득층들에게 새로운 거래 환경을 만들어줬을 뿐 아니라, 사업가들에게도 안정적인 판매의 기초를 제공했다. 여전히 모바일 머니가 생소한 나라에서는 모바일 거래 환경을 만드는 것 자체가 신 사업 아이템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으며, 이미 잘 자리잡은 나라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상거래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혁신이란

앞서 정리한 몇 가지 요소 중에서는 혹자에게 '이게 왜 혁신이라는 거지?' 또는 '이게 왜 소셜벤처라는 거지?'라는 지점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거나 일반적인 비즈니스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이, 왜 아프리카에서는 혁신이 되고 소셜벤처가 되는 걸까.

서두에 언급했듯, '사회적 필요'에 의한 것이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모바일 머니는 편리함과 기술 발전의 대명사이지만, 아프리카에서 모바일 머니는 기존 은행을 이용하지 못했던 소외계층들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혁신이었다. (관련 기사 참조 : 아프리카 모바일 시장의 성장과 '사우티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는 앰뷸런스 서비스가 사회적기업에 의해 제공된다. 남아공에서는 지역 사회 컴퓨터 교육을 사회적기업에서 한다. 공공의 영역에서 수행되어야 할 서비스가 민간 기업에서 이루어지고, 이것이 비즈니스로써 작동한다. 엄연히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소셜벤처다.

소규모 농부들에게 농업 정보나 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는 각 국에서 다양한 모델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한국으로 치면 일반 온라인 서비스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다국적 기업이나 대규모 농장주에 밀려 시장 접근이 어려운 소농들의 정보격차를 해보하고 빈곤을 벗어나게 해주는 일이다.

아프리카 땅에서는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접근과 과감한 시도를 통해 사회적경제가 실현되고 있다. 이는 유럽의 모델과도, 한국의 모델과도 다르다. 하지만 오히려 현실적이고, 빠르고, 직접적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적경제의 미래가 이런 것이 아닐까. 모든 경제 활동이 자연스럽게 사회적가치를 내포하고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아프리카의 비즈니스를 사회적경제 관점에서 지켜봐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엄소희
케냐와 카메룬에서 각각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좋아하는 것(먹는 것과 관련된 일)과 하고 싶은 것(보람 있는 일), 잘하는 것(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의 접점을 찾다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아프리카 음식점을 열었다. 르완다 청년들과 일하며 '아프리카 청춘'을 누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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