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만능 치트키,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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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만능 치트키, 바나나?!
[아프리카 음식 기행 ⑦] 아프리카에서 식량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바나나
  • 2019.09.03 12:24
  • by 엄소희(키자미테이블 공동대표)

아프리카를 알려면 바나나를 알아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바나나가 많이 수확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뿐만은 아니다. 

바나나는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국가에서 주식으로 소비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소득원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역사 속에서 바나나는 공동체 생성의 큰 요인이었으며, 곳곳의 전통 문화에서 다양한 바나나의 쓰임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밀가루와 버터를 섞은 것처럼 아주 맛있고…부드럽게 씹힌다. 장미향 같은 냄새도 무척 좋지만 맛은 더 좋다.”  -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존 리더 저)


네덜란드의 여행가 피터르 데 마레이스가 1601년 서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바나나를 처음 맛보고 남긴 글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바나나가 무척 흔한 과일이어서 바나나에 대한 특별한 인상을 가지지 않는 편이지만, 바나나를 처음 접했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상은 피터르가 말한 것과 대개 유사할 것이라 생각한다.

두껍지만 결을 따라 잘 벗겨지는 껍질, 부드럽게 씹히는 촉감, 달콤함과 향긋함을 겸비한 과일 바나나는 많은 사람들이 호불호 없이 즐기는 과일이다. 한국에서 접하는 바나나는 단일 품종이지만, 사실 바나나의 종류는 수십 여 가지에 이른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재배된다.

바나나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인데, 아프리카 대륙에 전래된 이후 60여 종류로 변종, 확산되었다. 바나나가 아프리카에 이르러 번성(?)하게 된 것은 아프리카의 열대 우림 기후가 바나나의 생육에 적합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바나나를 잘 이해하고 활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일을 60여 종류나 변종을 시킬 이유가 있나? 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아프리카에서 바나나는 주식 작물 중 하나이다. 물론, 우리가 아는 그 바나나와는 다르다. 바나나는 크게 ‘요리용 바나나’와 ‘디저트 바나나’로 나뉠 수 있는데, 우리가 먹는 과일 바나나는 ‘디저트 바나나’에 속한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디저트 바나나의 변종도 다양하게 있지만, 그보다 더 발달한 것은 요리용 바나나이다. 요리용 바나나는 탄수화물 함량이 높아 에너지원으로 적합하며, 디저트 바나나와는 달리 열을 가하지 않고는 먹을 수 없다.
 

다양한 종류의 바나나 ⓒ www.beytoote.com

바나나는 동아프리카, 서아프리카,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재배되는데, 가장 많은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나라는 동아프리카의 우간다이다. ‘아프리카의 진주’라고 불리는 우간다는 일년 내내 안정적인 온도와 충분한 강우량, 비옥한 토지로 가장 생산성이 좋은 나라 중 하나이다.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바나나를 많이 재배하는 나라이지만, 국내 바나나 소비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출은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우간다의 대표적인 주식인 ‘마토케’은 동일한 이름의 바나나를 익힌 음식인데, 우간다 뿐만 아니라 르완다나 탄자니아 등 주변 국가에서도 이 음식을 많이 먹는다.

요리용 바나나도 종류가 다양해서 익혔을 때 각각 담백한 맛, 새콤한 맛, 달콤한 맛 등을 낸다. 각각의 앞서 소개한 마토케와 같이 한 그릇 음식으로 요리하기도 하고,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삶거나 구워서 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모 마트 체인에서 요리용 바나나인 에콰도르 산 플랜틴 바나나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너무 생소한 식재료여서인지 몇 달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마토케 바나나를 주원료로 하는 요리 마토케 스튜. 부드러운 식감과 자극적이지 않은 맛으로 이방인들에게도 거부감이 없는 음식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바나나는 식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바나나 열매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되는데, 음식으로 섭취하는 것 이외에 음료로써의 변주도 다양하다. 특히 르완다에서는 전통사회에서 왕이 ‘바나나술’을 관리하는 사람을 따로 두었을 정도로 바나나 음료에 대한 의미를 각별하게 생각했다. 

르완다 사회에서 바나나술은 귀한 손님을 대접하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치를 때 필수적으로 준비하는 음료였다. 좋은 품질의 바나나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바나나와 이를 가공하기 위한 인력, 저장 및 숙성을 위한 안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바나나를 재배할 수 있는 재력과 인원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바나나술의 품질을 좌우한다. 바나나술은 르완다 사회에서 관계의 핵심이며 사회성의 상징이었다. 르완다에서는 전통 사회와 공동체 문화를 이야기할 때 바나나술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르완다의 바나나 와인 ⓒ NIRDA

먹고 마시는 것 뿐일까. 바나나잎은 요리 부자재와 식기, 건축 재료로 활용되고, 바나나 줄기에서 나오는 섬유는 옷, 바구니, 공예품으로 만들어진다. 그야말로 의, 식, 주 모두가 해결되는 작물인 셈이다. 아프리카의 맥락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이야기한다면 단연 바나나를 꼽아야 할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바나나가 공동체 발생과 발달의 요인이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생활의 근간이며 산업의 축을 이룬다. 일견 바나나의 활용이 과거의 것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바나나를 활용한 먹거리와 생활용품이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다. 최근 캔으로 출시된 바나나 맥주나 현대적인 디자인을 접목한 친환경 바나나 섬유 상품 등이 이에 해당된다. 아프리카의 바나나가 사회와 환경의 변화에 맞게 더욱 다양하게 변주되고 활용되길 기대해본다.

 

엄소희
케냐와 카메룬에서 각각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좋아하는 것(먹는 것과 관련된 일)과 하고 싶은 것(보람 있는 일), 잘하는 것(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의 접점을 찾다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아프리카 음식점을 열었다. 르완다 청년들과 일하며 '아프리카 청춘'을 누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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