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주 이야기] 가장 제주다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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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가장 제주다운 것은
  • 2019.05.16 18:06
  • by 최윤정

용을 그릴 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찍어 완성하는 화룡점정(畵龍㸃睛)이란 말이 있다. 눈이란 가장 그것답게 하는 정체성, 핵심적인 특징을 의미할 것이다. 어떤 풍경화가 눈 앞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풍경에 무엇을 더하면 그 풍경이 제주다워져 ‘여기는 제주’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 즉, 제주의 여러 소재 중 가장 핵심적인 제주다움을 보여주는 ‘그것’은 무엇일까.
 

흔히 제주를 ‘삼다도(三多島)’라 한다.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뜻이다. 많다는 것은 때론 중요한 특징이 되기도 한다. 먼저, 바람. 풍경화에 바람을 잘 담는다 해도 한국에 바람 많은 곳은 제주 외에도 여럿이다. 하여, 바람은 한라산이나 제주의 나무나 꽃 같은 다른 요소들과 더불어 표현되어야 제주 풍경이다 싶을 것이다. 또한, 제주의 대표적인 돌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검은 현무암이다. 그렇다면,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곳은 모두 비슷한 계열의 돌들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바람과 돌은 제주 자연의 큰 특색이지만, 이것만으로 가장 제주답게 하는 정체성, 핵심적인 특징이기는 어렵다.
 

해안을 따라 놓인 환해장성. 바다와 가까워 바람이 몹시 세지만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았다.


제주의 독특한 자연과 문화 요소가 결합될 경우, 제주의 핵심 정체성에 닿을 가능성이 높다. 제주의 삼다(三多) 중 여자, 그 중 해녀가 있는 풍경을 보자. 물론 독특하고 제주다운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제주 해녀들은 출가물질로 전국 곳곳에서 활약을 했을 뿐 아니라 그 중 일부는 아예 이주하여 살고 있다. 일례로 경상남도 통영의 미수동 지역은 제주의 출가해녀들이 ‘통영나잠제주부녀회’를 설립하고 아직 통영 바다에서 활동하고 있다. 즉, 제주는 해녀문화의 본원이지만 굳이 따져보면 제주에만 있지는 않다.


제주하면 떠오르는 감귤 역시, 제주다운 풍경이긴 하다. 감귤농업과 제주가 동일시 되지만, 사실은 제주만의 풍경은 아니다. 지구 온난화로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서도 재배되고 있으며, 충청도까지 두루 재배될 날이 머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의 생성, 그 자체인 한라산과 제주를 둘러싼 바다도 제주의 상징이지만, 이들은 어떤 근원이거나 배경적 요소이다. 다시 한번 질문을 정리한다. “최신식 타운하우스든, 둥글고 낮은 구릉이든, 시골 공통의 파랑과 주황의 슬레이트 지붕 집이든, 그 곳을 제주라고 확신하게 하는 가장 제주다운 정체성, 핵심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돌담”이다. 새로 지어진 타운하우스에 돌담을 한 두 겹 둘러주면 전국 어디에서나 비슷했던 고만고만한 타운하우스가 적어도 ‘제주에 지은 집’ 같아진다. 한국의 아기자기한 자연인 구릉이나 숲에 돌담이 있다면 그 곳은 제주가 맞다. 집과 집 사이는 물론, 마을길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돌담들이 있다면 아무리 시골 공통의 파랑과 주황 지붕이더라도 그 곳은 제주다. 밭, 집터, 초지에서 솎아낸 돌들은 그렇게 구불구불한 담이 되었다. 바람에도 끄떡 없는 틈새가 숭숭한 담이 되었다. 이는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의 눈을 통해서도 또렷이 느껴지는 ‘제주다움’이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도로변의 돌담, 집과 집을 구획하는 울담, 밭과 밭을 구획하는 밭담 등은 제주만의 명물’이라고 평했다.
 

제주의 흔한 밭담. 이 모습을 흑룡만리(黑龍萬里)라 일컫기도 한다.

 

중산간지역 귤밭과 귤밭 사이에도 물론 돌담이다.


돌담은 용도와 위치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때로는 기능 보강을 위해 다른 재료를 섞기도 하지만 본질은 ‘제주도 어디에나 있는 가장 흔한 자연물을 사람과 생활에 이롭게 발전, 유지시킨 것’이다. 척박한 땅의 돌을 골라내어 만든 <밭담>, 집의 울타리 격인 <울담>, 집의 벽이거나 집 주변의 방축인 <축담>, 마을길에서 집으로 이어 드는 <올렛담>, 무덤의 경계인 <산담>, 중산간 초지나 숲에서 기르는 말들이 마을이나 밭으로 들지 못하도록 쌓아둔 <잣담/잣성>, 밀물에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에 나가지 못하도록 바닷가 언저리에 원형으로 둘러둔 <원담>,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쐬는 <불턱>, 외세 방어용으로 바닷가에 두른 <환해장성>을 비롯한 각종 방어유적의 돌담들이 있다. ‘발’에 채이는 ‘돌’을 일일이 ‘손’으로 유용하게 쌓은 ‘담’은 제주처럼 종합적인 돌담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에서, 우리가 파괴만 하지 않으면 과거부터 미래까지 현존할 유산인 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제주다움이다. 게다가, 쓸모는커녕 방해만 되던 돌을 쓸모 있게 변화시키고 문화로 이어온 제주인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하여, 어떤 풍경에도 돌담이 있다면 단박에 제주 풍경 같아진다.
 

제주의 전통 초가를 재현한 돌문화공원의 모습. 골목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사이의 올렛담은 제주의 주거문화의 큰 특징이다.

 

오름이나 낮은 구릉에 무덤을 만든 후 산담을 두른다. 산담의 굵기는 모두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방목중인 말이 무덤에 접근하여 훼손하지 못하도록 쌓는다.


제주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돌담을 유심히 느껴보면 어떨까. 어떤 마을에 들어도, 어떤 중산간에 들어서도, 하물며 바다를 따라서도 돌담들이 있다. 돌담과 동행하여 길을 걷다 보면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이보다 가까이에 있는, 이보다 친근한 길동무가 없다는 것을. 돌담을 눈으로 길게 쫓고, 발로 나란히 걷고, 손으로 은근하게 만져보자. 가장 제주다운 것이 여기 있으니.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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